퇴사를 미루자고요?

by 은조

사실 계속해서 매일을 신경 쓰고 있었고 매일이 궁금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퇴사 통보를 받고 그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아 가는데 이상하게도 원장님의 모습에선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같이 일하는 쌤과 나는 원장님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게 되었고 작은 행동, 말투,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해 각자의 생각을 나누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현타가 오기도 했지만 진짜 끝나는 건지, 아닌지 쉴 새 없이 생각하며 넘겨 짓기를 이어나갔었다.


그러던 중 이번에 확실히 답을 들을만한 사건이 생겼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접종 예진표가 거의 떨어진 것이다.

전에 떨어질 때쯤 말씀드리니 주문하진 말고 떨어지면 프린트를 해준다고 하셨었다. ( 그땐 퇴사라는 큰 뜻이 숨겨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며칠 전 프린트를 해달라고 말씀드리니 그냥 어떻게 될지 모르니 주문을 하라는 것이다. 보통 주문할 때 낱장으로만 할 수 없어 세트로 해야 하는데 주문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퇴사가 미뤄졌다는 것을-


원장님께 말씀드리기 전, 내가 먼저 직원쌤에게 말을 했다. 만약 주문하라고 하신다면 5월 퇴사는 없게 되는 것이라고-원장님의 주문 오더를 듣는 순간 나와 마주 보고 있던 직원쌤과 나는 눈이 딱 마주쳤고 서로 좋기도싫지도 않은 미묘한 표정을 짓게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원장님이 입을 떼시며 말씀하셨다.

지금은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인수받을 사람을 알아보고 있다 하시며 하는 데까진 해보겠다며 마무리를 지으셨다. 그러니 있는 동안은 있으라는 뜻을 품은 이야기였다.


그 후 조금 지나서 원장님에게서 쪽지가 날아왔다.(채팅)

“쿠키 드실 분” 하고 말이다-

원장님은 종종 간식이 있으면 나눠주시곤 했는데, 한동안은

아마 퇴사 이야기를 꺼내시곤 무언가를 친밀히 나눠먹을 만한 상황이 생기지 않았었는데 오랜만에 기회가 만들어진 것


함께 쿠키를 먹으면서 원장님께선 아까 마저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으니 힘을 내서 하는 데까진 해보겠다, 그러니 있는 동안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우라며 진짜 마무리를 지으셨다.


이야기를 듣고 나와 자리에 앉았더니 마음이 쿵쾅 거리는듯한 기분이 감돌았다. 기쁘기도 하고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게 맞는 건가 싶어 황남편에게 바로 문자를 날렸다.

그리고 이어서 많이 걱정하고 계시던 엄마에게도 당장은 잘리지 않을 거 같고 문자를 보내니 다행이라며 좋아하시는

엄마의 답장을 받을 수 있으니 내 마음도 진정되어갔다.


물론, 언제까지라는 정확한 끝이 있지 않았다.

말씀처럼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정해지면 다시 바로 하루아침에도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기약 없음이었다.


그러니 기분이 상쾌하지만은 않았나 보다.

한 달이라는 기약이 정해져 있던 시간에서 이젠 그것보단 긴, 그렇지만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아무것도 시간 속에서 살게 되었고 정을 떼려고 노력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던 나도, 직원선생님도 이래저래 허탈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허탈함을 담아 “짐 싼 거나 풀어야겠네요” 그러면서 어정쩡한 웃음으로 지었다. 그러고부턴 처음부터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똑같은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다 기력이 없으시던 원장님은 다시 어느 정도 활력을 찾아가셨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진료를 하시며 환자들에게 알레르기 검사와 필요한 검사를 권유하는 등 시끌 복잡해진 상황이다.


그 덕분에 나는 IV 샘플링을 할 기회가 많아졌고 아직 많이

부족하고 한 번에 하지 못할까 봐 내가 해야 하는 상황이 다 가 오면 순간순간 두려움이 피어오르기도 하지만 자꾸 해보고 경험해 봐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배우고자 하는 마음과 이곳에서 언제 나가야 할지는 모르지만 나갈 땐 나가더라도 배울 건 다 배워야겠다는 욕심이 생겨났다.


자꾸 해보지 않으면 내 것이 절대로 될 수 없다. 지금은 불편한 상황과 마음이 생겨나지만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한 단계 더 발전하며 나아갈 수 없다는 걸 항상 명심하여 겁 내지 말고 그 순간만큼은 온 신경을 집중해해 보기로 했다.


그냥 지금 마음은 딱 그렇다.

또 언제일지는 모르는 퇴사 이야기를 듣는 순간이 오겠지만

사람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것처럼 그 퇴사의 날만을 생각하며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 날들로 보내기는 싫다


그렇게 살지 말고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배우며 나아가며 성장하며 지금의 것, 현실만을 바라보고자 마음을 다진다. 그러니 더 이상 디데이는 진행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