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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Feb 06. 2024

도망쳐서 한 결혼

행복의 시작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편이다.

그 믿음의 이유에는 내가 몇 차례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많이 행복하지 않은, 어쩌면 불행에 가까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아빠의 얼굴을 기억하기도 전 이혼한 엄마는 혼자 우리 남매를  홀로 키우셔야 했다.

셋이 살던 그 방 한 칸 시절, 돈은 없어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행복이 넘치는 삶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엄마는 우리와 마음이 달랐나 보다. 돈이 없어 너무 불행했던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보단 돈이 많고 집도 있는 딸 둘을 키우던 남자와 재혼을 했고

그렇게 그 남자는 나의 새아빠가 되었으며 두 살 터울언니와 나이가 같은  친구랑 자매가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의 원래 가족, 엄마와 오빠 그리고 나, 셋의 가족의 형태는 찢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없이 너무 불행했고 소외받는 느낌으로 살아야 했으며 얼른 이 집을 나가고 살고 싶다는 소망 아닌 소망을 품고 살았고 그 소망은 나의 가정 즉 결혼으로 이어진 게 한 거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다)


중학교 때부터 항상 결혼을 빨리하고 아이도 빨리 낳을 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었다.

시작은 막연한 말뿐이었지만 나는 실제로 스물한 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됐고 곧이어 출산도 했다.


남편을 만나면서, 남편과 결혼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너무 좋은 아빠가 될 거 같아서였다.

아빠라는 존재에 대해 항상 마음 한 중간에 공허한 결핍을 느끼며 살고 있는 나로서 그 감정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잘 알기에 그 문제에서 최고일 것만 같은 남편에게 끌리지 않을 수가 없던 것이다.


남편과 나는 열두 살 띠동갑 나이 차이가 난다.

나는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난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느끼며 살진 않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아, 차이가 많이 나는 거구나] 싶다. 하지만 갈수록 더 사랑스러워지는 나의 남편과 나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올해 나는 결혼 십 년 차로 접어들었고 서른한 살이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을 앞둔 딸이 있는 두 남매의 엄마로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나의 결혼 생활도 나의 육아 생활도 행복한 날들만 함께하진 않았다. (여전히 지금도 가장 어려운 부분들이다)

많이 서러워 울기도 하고 분노에 차서 화가 나기도 수없이 울고 웃고의 반복이었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나는 남편과 결혼 생활을 한마디로 풀어내야 한다면 이렇다.

[이렇게 행복하려고 그렇게 불행했었구나]


물론 내 기억 속에는 스스로가  왜곡시킨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분명 그 가정 안에서도 좋았던 부분과 행복했던 순간이

작게나마는 있었을 것이라 생각 들지만 절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 황패밀리를  만나기 위해선 똑같이 그 상황을 다시 감당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기꺼이 견뎌내고

지금의 우리 황패밀리는 만날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도망 친듯한 마음으로 한 나의 결혼은 결코 도망의 끝이 아닌 행복의 시작의 길로 인도해 준 것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불행할 수만 없고 , 행복할 수만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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