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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Feb 07. 2024

우리 아들 파이팅

너의 성장기

쉬는 날, 방학 중인 아들과 정말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평일 하루 쉬는, 일 하는 엄마라 많은 시간 함께해 주지 못하다 보니 이럴 때만큼이라도 온 맘을 다해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노력한다.(딸아이는 아침에 빠르게 유치원을 보냈다)


오전 시간은 며칠 전부터 벼르고 벼르던 아들 방 정리를 했다 마침 날씨가 춥지 않아 창문을 활짝 열고 침대 위 이불과 커버까지 싹 벗겨내 세탁기를 돌리며 본격 청소는 시작되었다.


일단 책상 위 각종 종이와 연필,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지우개들 이게 왜 여기 있나 싶은 각종 물건들과 누가 준다니 좋다고 받아뒀던 보드게임까지 싹 꺼내고 버리고 닦고 또 닦고를 반복하니 어느 정도 나름 깨끗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절대 준다는 장난감 안 받아야지..)


방 정리만 했을 뿐인데 어느덧 시계는 정오를 넘겼고

두시에 학원을 가야 하는 아들을 위해 부랴부랴 나와서 같이 마트에 갔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걷기 싫은 아들은 버스 타고 가면 안 되냐는 질문 아닌 질문을 했지만 가볍게 웃음으로 넘긴 뒤 우린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걸었다. (우리 아들은 항상 손을 꼭 잡아주는데 엄청 따뜻한 손난로 같다)


장 보다가 한쪽 코너에서 떡볶이 밀키트를 발견한 아들은 로제와 국물 떡볶이 사이에서 얼마간 고민을 하더니 로제로 먹겠다며 바구니에 넣으며 본인이 먹고 싶은 과자도 빼놓지 않고 야무지게 골랐다.


그리고 딸이 꼭꼭 꼭 사 오라던 딸기까지 잊지 않고 챙긴 뒤 장보기는 마무리됐고 그 길 따라 시장으로 쭉 걸어가는 길에 있는 맛있는 떡집도 들러 학원 선생님들과 단골 미용실 사장님 드릴 낱개 포장된 떡 몇 개를 종류별로 골라 담았다.


이제, 진짜 우리가 함께 나왔던 이유인 점심을 먹으러 언덕길을 오르고 올라 황패밀리의 최애 수제비집으로 향했다.

날이 따뜻한 덕분에 언덕길을 계속 오른 아들의 얼굴 양쪽 뺨엔  땀이 삐질삐질 흘렀고 그 모습을 보며 뭐가 웃긴 일이라고 서로 한참 동안 바라보며 웃었다.


일단 우리의 단골 미용실에 먼저 들러 사장님께 떡을 드리고

(나누는 즐거움은 참 크다) 그제야 붐비는 점심시간인데 자리가 있을까? 하며 순간 걱정이 됐지만 다행히 테이블이 있었고 도란도란 맛있게 이야기하며 먹을 수 있었다.


수제비 한 그릇 싹 비운 아들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했지만 그건 안된다고 하니 (아무리 따뜻해도 겨울은 겨울)

마음을 바꿔 편의점에서 뭔가를 사고 싶다고 했다.

(사달라는 거 참 많은 친구)


즐거운 마음으로 학원 가라는 깊은 뜻을 담아 원하는 걸 사줬고 뜻이 통해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학원에 갔다.


난 다시 집으로 돌아와 황남편의 점심과 마무리 못했던 집안일을 해치운 뒤  시간에 맞춰 딸아이를 만나 학원으로 데려다주고  수업 끝날 아들을 기다렸다 함께 나왔는데...

아들은 나를 보자마자 학원에서 바로 직전에 있었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좀 전까지 좋았던 마음은 온대 간 대 사라지고 수많은 걱정이 또 내 마음을 휩쓸었다. 그렇지만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잘 알기에 겨우 마음을 가라앉힌 척을 한 뒤 원래 계획이었던 동네 서점에 가서 내가 봐뒀던 책과 아들이 사고 싶은 만화책을 구매하고 나왔고 딸의 학원 시간이 끝나길 기다리기로 하여 한 카페로 들어갔고 음료를 마시며 조심스럽게 아들에게 있었던 내용을 물었지만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여기서 더 이야기하면 나만 분노할 거 같아 다른 이야기로 화제 전환을 했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하든 저런 말을 하든 아무런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아들은 만화책에만 푹 빠져 읽고 또 읽고 또 읽어 대며 엄마랑 함께 있어서 좋다는 사랑스러운 말도 잊지 않았다.


요즘 더욱 이 아이를 대하는 게 조심스러워졌다.

나도 이 아이와 속도 맞춰 함께 성장하고 있는 중인 한없이 연약한 존재라 예상치 못한 틀에서 벗어난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면 아무리 작은 문제일지라도 너무 크게 느껴지며 그 감정 안에서 허우적거리며 헤어 나오질 못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잘 알기에 이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와 어떤 행동할 때에 많이 망설여진다 (황남편이 엄청난 버팀목이 되어준다)


지금 그 문제를 가진 채 1주가 지났다.

처음보단 마음이 좀 나아졌고 그 문제는 분명 아들이 헤쳐나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속에서 아들이 여러 감정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지만 그럼에도 큰 걱정이 드는 건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많이 없다. (거의 없다)

아들이 마음 성장 과정을 겪으며 느끼는 감정을 들어주고 보듬어 줄 수밖에 그리고 그 마음속에 용기를 북돋아 주시길 바라며 하나님께 드리는 엄마의 기도뿐이다.

(우리 아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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