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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흑수저

[1] 꼭 불행한 건 아니었어

by 은조

아침이고 밤이고 늘 어두웠던 곳.

달빛도 내리쬐길 거부하던 그곳이 처음으로 머릿속에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는 나의 첫 집이었다.


어느 산동네에 지하실 방 한 칸짜리.

내려갈수록 거미줄과 쾌쾌한 냄새가 마주하게 되는데,

문도 있고 방도 한 칸이지만 있으니 집은 집.

지금 생각해도 열악하기 짝이 없는 그곳에 엄마와 나,

오빠 셋이 살아가고 있었다.


늘 깜깜했던 건 집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세 모자의 앞길도 칠흑처럼 어두웠으니 말이다

그때 엄마 나이 겨우 서른 중반, 원치 않게 애 둘 딸린 이혼녀의 자리를 감당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였고 그때 오빠 나이 중학생 원치 않게 유치원생인 동생을 감당하기엔 사춘기였다.


각자 다른 이유였겠지만 같은 마음으로 늘 불행했고 늘 힘들었다. 항상 엄마는 아침 일찍 나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일하러 나가 밤늦게 들어왔고 오빠는 학교에 갔다 나를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학교 끝나고 바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바로 오는 날엔 나에게 돌아오는 건 신경질과 짜증뿐이었다.


집에 혼자 못 있어? 혼자 좀 있어라-

버럭 화내면서 말하는 오빠가 무서웠지만 아무리 무서워도 그 어두 컴컴한 집에 혼자 있는 것이 더 무서웠기에 애써 웃음으로 때우며 레퍼토리처럼 했던 말이 있다.

초등학생되면 혼자 있을게. 진짜야!


그러다 오빠가 바로 집에 오지 않는 날엔 오히려 은근히 좋아하며 아무나 먼저 와라 하며 내 지정석에 앉아 있었다.

그곳은 누가 지나가는지 놓치지 않고 한눈에 볼 수 있는

골목길 입구에 있는 빌라슈퍼 앞 평상이었다.

그때는 민폐인줄도 모르고 그렇게 앉아 주야장천 기다렸다.


그리고 생각한다. 제발, 큰 외숙모 먼저 와라-


당시 큰 외숙모네는 우리 집에서 조금 더 위쪽에 살고 있었는데 늘 비워진 엄마대신 엄마처럼 나를 챙겨주었다.

당신도 힘든 생활 속에서 딸 셋을 키우면서도 나를 첫째 딸이라도 칭하면서 진심으로 대해주었다.

아이들은 제일 잘 알지 않는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척으로만 대하는 것인지-


그래도 눈치가 있었기에 내가 가면 외숙모가 더 힘들다는 걸 알고 있어서 대놓고 먼저 간다고는 하지 못했고 그렇게 앉아있다 나를 마주친 외숙모는 분명 나를 데려갈 걸 알기에 그걸 노렸던 것이다. 약았지 참


한날은, 그렇게 외숙모를 먼저 마주쳤고 내 계획대로? 외숙모는 나를 본인 집으로 데려갔다. 그럼 그날은 외숙모네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외숙모는 볶음밥을 많이 해주었는데 그 야채를 볶고 고슬고슬해주었던 그 냄새가 지금까지 금도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다. 특히 이젠 내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볶음밥을 해줄 때 그 냄새를 맡게 되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똑같이 해보려고 해도 나에게 기억되고 있는 그 냄새가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싶다가 이젠 오히려 좋게 생각한다.

그 냄새는 우리 외숙모의 만의 것이라 느끼며-


지정석, 평상에 앉아있다 운이 안 좋은 때면 오빠를 먼저 만났을 때였다. 원래 그곳에 앉아있는 이유는 오빠를 기다리는 거였지만 오빠를 만나면 기분이 안 좋아졌다.


교복을 입은 오빠가 골목길을 꺾으며 가방을 한 손에 들은 채 올라오고 있다. 가늘고 긴 눈을 나를 또 거기 앉아있냐? 하는 표정으로 못마땅하세 나를 쳐다보며 다가온다. 눈이 마주치면 말없이 평상에서 일어나 오빠 뒤를 따라 걸어 보지만 속도차이가 나고 어느새 오빠는 저 앞에서 올라가고 있다.


빨리 오라는 오빠의 말.

종종걸음으로 뛰어 올라가 본다.

그렇게 올라가다가 다시 어둠의 길로 내려가야 한다.

그럼 다시 쾌쾌하고 습한 지하실의 공기가 느껴지고 오빠가 열쇠를 꺼내 쇠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 뒤 문고리에 꽂고 문을 돌려 연다.


정적이 싫은지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오빠는 바로 텔레비전을 켠다. 그 안에서 나오는 소리만이 공기를 타고 흐르고 리모컨이 없는 텔레비전이라 채널 돌리기는 항상 나의 몫.

그러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앞쪽으로 앉아있는다.

단, 그렇다고 화면을 가려선 안된다. 오빠의 신경을 거슬리면 안 되니. 그러니 나에겐 오빠를 만나는 건 운이 안 좋은 일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 저녁은 라면이었고 그렇게 먹고 있다 보면

지친 얼굴로 엄마는 집으로 들어왔다.


어두운 방이 더욱 어둑해질 때면 우리의 집은 두 가지의 모습으로 나뉘어 지곤 했는데, 한 가지의 모습은 어느샌가 피곤한 모습이 사라진 엄마는 이모들을 만나러 나간다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럼 나는 엄마 옆에서 울고 있는데 또 그 옆에서 오빠는 시끄럽다고 버럭 오빠는 화를 내고 있다.


화내는 오빠가 너무 무서웠지만 나를 두고 다시 나가는 엄마를 보내는 것이 더 싫어서 있는 힘껏 울어댔고 그럴 때면 엄마는 최대한 나를 어르고 달래다가 최후의 필살기로 화장품 중 색깔별로 모여있는 고급진 립스틱을 나에게 쥐어주었다.

그게 뭐라고 나는 늘 그것만 받고 나면 서서히 울음을 그치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빨리 와야 해.


두 번째 모습은, 모두가 잘 준비를 하고 있다.

습하고 눅눅한 바닥에 큰 요를 두 개 깔고 오빠는 혼자,

엄마랑 내가 같이 눕는다. 이불에서 포근함보단 습하다는 느낌이 가득하지만 상관없다. 따뜻한 엄마의 손이 내 몸을 부드럽고 포근하게 만져주니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나가지 않고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그러다 안정된 마음에 금방 잠이 들었다.

분명 잠이 들었는데, 뭔가 물이 흐르는 소리에 잠이 스르르 깨어났다. 눈을 살짝 떠도 어두워진 방안을 한참 동안 보고 있어야 서서히 어떤 형태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은 창문을 뒤로 한채 냉장고에 기대앉아 김치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며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모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두 가지의 날들은 반복의 연속이었고 선택할 수 없이 모든 날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엄마가 나간다고 할 때 더 이상 심하게 울지 않고 보내주었고 엄마가 내 옆에 누워있을 때면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지라도 눈을 뜨지 않는 노력을 했고 그렇게 하다 보면 금방 잠에 빠지는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대한 불행했고 최대한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희망이라는 것을 꿈조차 꾸지 못했고 그래서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하며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나는 어렸으니 생각이 많이 나지 않는 것에 감사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 엄마와 오빠는 얼마나 끔찍했을까.


그렇지만 딱히 두 사람에게 얼마나 불행했는지 끔찍했는지 강도를 묻진 않았는데, 사실 난 그 속에 행복했던 기억도 있어서였을까? 그들이 가차 없이 불행했다면 내 행복이 미안해질까 봐


거의 나는 출근하는 엄마 따라 유치원에 일등으로 등원, 꼴등으로 하원하는 날이 적지 않았다. 오후 하원시간이 되고 친구들은 엄마들이 데리러 와 집에 가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시리곤 했는데 어느 날인가 깨달았다. 문을 보고 있다고 엄마가 빨리 오지 않는다는 걸, 그걸 알게 된 순간부턴 친구들이 갈 때도 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재밌게 노는 척을 해댔다.


모든 장난감이 내 것이라는 스스로 주문을 걸어서 말이다

그렇게 제일 마지막으로 우리 엄마가 왔고, 막상 얼굴을 보고 나면 서운했던 감정들은 이미 눈 녹듯 사라진 지 오래 조잘조잘 이야기를 엄마에게 쉼 없이 이야기를 해댔다.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나는 곧 잘 걸었다.

엄마랑 함께 있는 시간이 마냥 좋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엄마는 꼭 언덕길을 올라갈 때면 나를 업어주었다.

당연히 나는 좋다고 업혔고 평길에서도 업고 걸으면 힘들 텐데도 엄마는 빠지지 않고 언덕길에서 업어주었는데, 나중에 큰 외숙모가 말해주고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가 나에게 미안해서 그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었다고

어린 나이에 들은 말이었지만 잊히지 않았고 엄마가 나를 얼마나 생각하고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우린 힘든 상황들의 연속이었지만 엄마의 끝없는 사랑한다는 속삭임과 주변의 크고 작은 채워줌이 쌓여 살게 도와줬고 그렇게 나를 지켜주던 사람들이 많았음을 또,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추억들이 많았다는 것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

제대로 흑수저의 삶을 걸어가고 있었지만 늘 흑 속에서 돌멩이만 밟고 있던 것은 아니라는 것. 깜깜하고 암울하고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만 허우적거리지 않았음을 나는 합쳐진 것들을 통해 빛을 보려고 희망을 가지고 노력할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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