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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안녕

[2] 이사

by 은조

습한 공기, 쾌쾌한 냄새 뭐, 그런 것들은 살다 보면 저절로

코가 막히고 피부가 눅눅해지며 자연스레 녹아들어 간다.

하지만 그놈의 그놈의 바퀴벌레는 만나도 만나도 익숙해

지지 않고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차라리 무섭게 다가왔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 그놈의 바퀴벌레는 너무나도 지긋지긋한 존재.


그도 그럴 것이 시도 때도 없이 전혀 가늠할 수 없이 튀어나와 나에게 수치스러운 트라우마를 심어주었으니-


하루는 큰 외숙모네 집에 있을 때였다.

유치원 가방에서 그림 그렸던 건가? 암튼 무언가를 꺼내려고 신난 마음으로 지퍼를 연 그 순간 바퀴벌레가 쑥 튀어나오는데.. 그 어린 나이임에도 와, 진짜 너무 지긋지긋하고 너란 존재 정말 징글징글하다 싶은 생각이 들며 누가 볼까 싶어 맨 손으로 팍 눌러 죽여버렸던 그 기억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또 한날은, 동네에서 좀 잘 사는 친구네 집에서 놀고 있었다. 저녁시간이 되자 친구네 엄마는 은근히 내가 가길 바라는 눈치를 보내왔다. 날이 갈수록 쌓여가는 건 눈치밖에 없을 때라 적절한 타이밍에 맞게 친구에게 간다며 일어나 문을 열었는데 비가 내리는 것이다.


우산이 없던 나에게 친구 엄마는 우산을 빌려주셨고 감사합니다 하며 그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근데 집에 도착하고 가만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 그 우산을

두면 곰팡이랑 생기고 바퀴벌레가 들어갈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우리 집에 있던 우산들은 다 그 모양이었으니까-


그렇게 되어 버리면 우산을 돌려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바로 다시 그 우산을 들고 그 친구네 집으로 달려갔다.

비를 맞으며, 바퀴벌레 기어 나오는 우리 집 우산을 쓰기는

싫었으니 말이다.


빌렸던 우산을 친구네 집 문고리에 걸어두고 집으로 뛰어오는 그때 마음이 어찌나 홀가분하던지-

근데 이상하게도 그 홀가분한 마음은 성인이 되어갈수록

진한 서러움으로 퍼져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글픔을 다루기 어렸던 나는 그걸 홀가분하다고 느꼈구나


그렇게 바퀴벌레는 나에게 창피하고 수치스럽고 제발 사라지면 좋겠는 지긋지긋한 존재인 것이다.

지금도 벌레들을 보면 그런 마음이 들어 무섭지가 않고 화가 난다. 짜증이 나고 열이 받는다. 왜 눈에 뜨이는 건지 나에게

그래서 바로 휴지로 눌러버린다. 방생? 미안하지만 나에겐 그런 거 따윈 없다. 걸리면 죽는 거다.


그래서 그날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앞 뒤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딱 떠오르는 순간은 환한 오전, 엄마의 손을 잡고 그 언덕길을 내려가는 순간-


엄마는 우리가 이사를 가는 거라고 말을 해주었고 당시 작은 외삼촌네 집 근처로 집을 얻었다.

거긴 짧은 골목길 안에 큰 대문 안 두 개의 문이 있는 집이었다 큰집과 작은 집이 있었는데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작은집이 우리 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그곳은 바퀴벌레가 따라오지 못했을 거라는 어린 마음에 확신이 들었기에 말이다.

물론, 그곳에서도 다양한 벌레들을 많이 마주하긴 했지만

지하방에 비하면 너무나도 양호한 수준이었다.

그러니 그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 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행복해진 건 또 있었다. 작지만 부엌을 기준으로 방이 두 개가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오빠방, 엄마랑 나랑 지내는 방이 나뉘었고 더 행복했던 건 그곳에선 엄마가 매일 밤 김치를 벗 삼아 소주를 마시며 울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모들을 만나러 나가는 건 꾸준했지만 횟수가 점점 줄어간다는 것에도 크게 만족하며 지냈다.


어린 내가 봐도 엄마는 건강해지는 듯했다. 몸도 마음도-

매일 아침이면 생선을 구워주고 반찬도 해주며 거의 매일

먹었던 라면을 먹는 횟수도 줄어갔고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겨울 저녁이면 퇴근길에 꼭 엄마는 검은색 봉지에 가득 든 귤을 사 왔다. 우리 남매는 마치 엄마보다 귤을 더 기다렸단 듯 신나서 먹을 준비 완료.


귤을 들고 오느라 차가워진 엄마는 장난스레 두 손을 내 등에 넣으며 데워지길 기다리길 여러 번 반복했는데 나 또한 엄마의 그 차가운 냉기가 싫지만은 않았던 거 같다.

아, 차가워하며 엄마랑 까르륵 웃었던 기억이 생생하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듯하다. 아니 행복했다. 모든 순간이


우린 그렇게 귤처럼 때론 달콤하게 때론 시큼하게 보내는 조금은 나아진듯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침이면 햇빛이 들어 환해졌고, 밤이 되면 달빛에 그림자가 비치기는 하며 어두워지는 전형적인 집의 포근함을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행복해지는 일만 생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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