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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Feb 13. 2024

집 나간 정신 찾아요

현실 복귀

까치까치설날의 연휴가 끝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 왔다. 별로 길지 않은 연휴라 깊은 후유증 따윈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나중에 이러한 감정에 휘둘리기 싫어 쉬는 날도 루틴을 어기지 말고 지내자며 내 스스로와의 약속을 주고받았는데 그럴 거라 예상은 했었지만 정말 나와했던 약속은 보기 좋게 지키지 못했다.


아침엔 무슨 이상한 악몽을 꾸며 일어났다.

아저씨 두 명한테 길거리에서 잡혀있는? 그런 꿈이었는데, 까먹지도 않고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나니 기분이 너무 별로인 느낌을 가진채 시작되었다.


전날 먹은 술이 덜 깬 건지 잠에서 못 헤어 나오고 있는 건지

어쨌든 개운치 않고 어질어질한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벗어나 물 한 컵 쭉 들이켜고 아침으로 먹을 소고기뭇국 담아뒀던 통을 냉장고에서 꺼내 냄비에 덜어 뚜껑을 덮어 가스불을 켜놓고 나서야 바쁜 아침이 시작되었다.


거기서 예상치 못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까지도 너무 멀쩡하던 딸이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열이 나는 것이다.

갑자기???라는 생각이 순간 스쳤지만 연휴에 안 아프고 끝나고 아파서 병원에 바로 갈 수 있음에 감사함이 다가왔다.

그리고 더 다행인 건 나는 출근을 해야 하지만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갈 수 있는 황남편이 있다는 것은 어느 무엇보다도 다행이고 감사한 것이었다.


다행히 컨디션이 좋아진 딸은 병원에 다녀온 뒤 유치원에 갔고 그 덕에 황남편은 종업식을 해 집에 있는 아들만 챙기면 되었다. 나도 보통 바쁘지 않으면 아들에게 여러 번 전화 걸어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텐데 나 역시 연휴 지난 첫날이라 바빴다.(나는 동네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점심시간 바로 전이었다. 모녀가 왔고 조금 유별나다고 생각하는 환자이기도 했다. 모녀가 진료실에 들어왔고 내가 그 아이의 귓구멍에 체온계를 넣고 체온을 재는데 아이가 거기 아닌데 그러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넣고 재는데 아프다는 소리를 지르며 거기 아닌데라고 다시 말하더니 내 손에서 체온계를 휙 낙야채는 것이다. 지금 2년째 일하고 있지만 또 이런 황당하고 거북한 상황은 처음이었다.


그 환자가 끝으로 점심시간이 되었고 원래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고 오늘도 싸왔는데 오전에 황남편과 연락하던 중 알게 된 사실, 내가 반찬으로 싸 온 계란말이가 상했다는 것.

아침에 싸면서 조금 이상한가?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바빠서

그냥 넣고 가져왔더니만 정말 이상한 것이었다.


그 환자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김밥 포장해 와서 먹을까?! 하며 생각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확 열불이 차오르니 아주 얼큰하고 칼칼한 걸로 풀고자 근처에 있는 이화수 육개장으로 향했고  거기서 제일 좋아하는 육개장 칼국수를 먹었다.

그냥 혼자 앉아 홀로 아무 신경 쓸 거 없이 후후 불며 천천히

먹는 그 시간은 나의 열불을 식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점심시간 지나고서도 몇 차례 욱욱 올라왔지만 나한테만 그러고 간 것이 아니기에 ( 다른 직원분한테도 다른 유난을 떨고 갔다) 같이 경험을 나누며 분노를 다스릴 수 있었다.


일하다 보면 정말 별별일이 다 생기지만 이렇게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들은 언제나 겪어도 적응되지 않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니 내 마음 돌보기를 내 감정 돌보기를 우선으로 해야겠다는 다짐은 매번 강해진다.


아우, 오늘 잠깐 잠시 집 나갔던 정신이 번쩍 들어왔다.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좀 덜 무겁게 버틸 수 있고

그래야 내가 이겨낼 수 있고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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