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지극했던 우리의 우정은

40살을 기대하며

by 은조

이번에도 못 나와? 좀 나와라 -


나에게 중학교 친구들은 너무나도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덕분에 무사히 살아갈 수 있었던 항상 고마운 존재들이었다.


행복할 수 없는 가정 속에서 나는 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중학교 친구들에게 상당히 많이 의지했다. 학교 가는 것이 행복했고 끝나면 항상 같이 함께 했다. 우리는 5명 정도가 같이 모여 다녔는데 그중 유독 마음을 많이 나눈 친구는 3명 정도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항상 같이 있고 그 많은 시간을 나눴음에도 우리는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다고 매 쉬는 시간마다 편지를 쓰고 또 그 편지를 나누며 비밀 아닌 비밀을 만드는 등, 우리의 우정은 정말 정성 가득했구나 생각이 든다.


그렇게 3년 내내 붙어 다니던 우리는 이별 따윈 없을 것만

같았지만 순리대로 고등학교를 진학할 땐 모두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고 결국 모두 떨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학기 초반에 우린 매일 학교가 끝나면 함께 놀던

동네에서 만나기도 했지만 후반이 되어 갈수록 그 횟수는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생활을 하며 그 안에서 친구들을 만들어 나아갔고 그렇게 미래에 대해 생각해 가는 시기를 맞이한 것이다.


늘 10대일 것만 같았던 우리도 20살이 되었다.

그때부터 모두 더욱 치열하게 각자의 삶을 찾아 나아갔다.

치열히 나아가는 만큼 교류는 적었지만 지속적으로 연락을 계속했으며 마음만큼은 항상 함께라고 생각하며 지켜갔다.


시간은 금방 지났고 스무 살 후반이 되니 각자의 모습에 변화가 생겨났다. 나는 결혼을 빨리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하고 있었고 친구들은 사회 초년생의 티를 벗고 이제는 여유 가득한 직장인들이 되어갔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여유가 생긴 친구들은 다시 중학생 때처럼 서로를 찾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며 나는 이제 거기에 낄 수 없는 군번이 됐다는 것이다.


나는 우정대신 가정을, 황남매를 보살펴야 했고 울타리를

지켜나가야 하니 친구들과의 만남이 어려울 수밖에 없고 특히 가족끼리 주의의 황남편으로 나는 더욱 그곳에 마음을 두기 힘들었다.


초반엔 나 없이 만나는 친구들이 너무 부럽고 질투 났다.

소외되는 게 싫어 어떻게든 끼고 싶어서 황남편에게 애들을 맡기기도 해 보고 데리고 만나기도 해보고 해 봤지만 그렇게 나갔다 오면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뭔가 찜찜함만 가득 쌓이는 느낌이 어느 순간부터 들기 시작했고 그래서 난 그런 불편한 만남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럼에도 다 같이 놀러 가고 만나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상당히 많이 부러웠지만 나는 우리 가족들과 함께 할 때 찜찜함이 아닌 진짜 행복이 나온다는 것을 느꼈으니 감정조절을 하고자 스스로 노력을 많이 했다.


그 조절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써봤다. 카톡을 보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대화에 참여도 해봤다가 내용을 알면 그 상황들이 머리에 두둥실 떠다녀 다음번엔 카톡이 잔뜩 쌓이면 채팅방만 눌렀다가 읽지 않고 나오기도 하고 그랬다.


이번에도 만남 약속을 잡는 친구들이 보낸 카톡을 읽지 않고 표시만 사라지게 채팅방만 들어갔다 나와 대답하지 않았더니 여느 때와 다르게 나를 소환해 나올 수 있냐고 또 묻는 것이다. 평일이었고 당연히 나가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상황을 한 번 보겠다는 애매한 답변을 써서 보내놨다.

그리고 고민했다.


어떻게 뭐라고 써서 보내야 되게 아무렇지 않은 듯 쿨해보이는 그런 느낌의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그 고민하는 이틀 동안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목구멍에 음식물이 걸려있는 듯한 답답한 느낌처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친구들이 만나는 당일 전 일찍 잠이 든 탓에 나에게 올 수 있냐는 카톡을 읽지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확인 후 최대한 쿨하고 담백하려고 답변을 생각은 했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써서 보냈더니 여느 때처럼 그래, 다음에 보자는 답장이 날라 왔다.


어라? 근데 이상했다. 항상 이렇게 나만 빠지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면 마음에선 질투심과 아쉬움이 섞여 기분이 다운되었는데 이날은 꽉 막혀있던 목구멍에서 음식물이 쑥 내려가 편안해지듯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나랑 친구들이랑은 상황이 너무 다른 군번인데 똑같이 나아가려고 하는 생각자체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란 걸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친구들의 만남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는 마음의 변화가 생겨났다.

그리고 내 삶이 불행해지지 않았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친구들이 나한테 자랑하려고 내 감정을 상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란 걸 백 프로 천 프로 이해한다. 나와 같이 만나고 싶어서 나를 찾는 것이란 것도 당연히 알고 있다. 그래서 너무 고맙기도 하다. 나를 잊지 않아 줘서-


그렇지만 지금 내가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곳은

우리 가정이다. 내 마음이 친구들에게 향하면 이것 더 저것도 아닌 상황이 되어버린다. 내가 현명해야 행동할 때인 건 분명하다.


이렇게 분명한 상황이 마음에 확신으로 와닿으니 싱숭생숭한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다. 이 부분이 항상 내 마음을 힘들게 했는데 이제야, 이제라도 완벽히 해결이 된 거 같아 한결 편안해졌다.


마음이 변화하니 생각 못했던 것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이냐.... 나는 40살 되면 자유의 몸으로 20대 때 못 놀았던 거 실컷 놀 것이란 것이다. 그때 엄마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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