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두고 떠난 스리랑카 여행기: 캔디안 댄스
저녁을 먹고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캔디의 전통 춤인 ‘캔디안 댄스’ 공연장이 나타났다. 저녁이 되면 시내 어디서든 캔디안 댄스 공연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호수 주변에 공연장이 밀집해 있다. 가이드북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캔디안 댄스는 저녁시간을 때울 수 있는 좋은 볼거리다.’
입장료는 1인당 2,000루피(한화 약 10,000원)로 스리랑카 물가를 고려하면 비싼 편이었다. 입장료를 내고 공연장으로 들어갔을 때, 공연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객석에는 온통 유러피안 여행객뿐이었다. 스리랑카 현지인들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리에는 각각의 춤에 대해 설명하는 안내문이 놓여 있었다. 무대 앞편에서는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로 치장한 무용수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뒤편에서는 악사들이 길쭉한 장구처럼 생긴 스리라카 전통 악기 ‘베타 게라’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 둘러싼 장신구들은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찰랑이는 소리를 냈다.
캔디안 댄스는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스리랑카 내륙 지역에 존재했던 캔디왕국에서 시작된 춤이다. 하나하나의 동작들은 자연의 힘과 조화를 나타낸다. 그 당시 캔디안 댄스는 단순한 무용을 넘어, 종교 의례에서 신들의 경건함과 신성함을 나타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캔디안 댄스는 퍼포먼스적인 성격이 강하다. 캔디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저녁시간을 책임지는 쇼가 됐다.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 번에 여러 개의 접시를 돌리는 무용수에게 적당히 박수를 쳤다.
그러나 실외 불쇼를 보며 마음이 바뀌었다. 야외무대에 깔린 검을 자갈 위에는 불길이 활활 일렁이고 있었다. 상의를 벗은 무용수들이 불 위에서 한 발 한 발 발자국을 뗐다. 관중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불을 활용한 다양한 묘기가 펼쳐졌다. 불을 들고 춤을 추고, 불을 입 속으로 삼키기고 했다. 전통 북의 리듬이 점점 빨라졌다. 내 마음속에서도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불꽃의 생명력이 마음속에도 옮겨 붙은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고막을 때리는 자명송 소리에 눈을 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조식을 먹고 발코니로 돌아와 홍차를 마셨다. 조용히 앉아 캔디의 하루가 시작되는 모습을 바라봤다. 아침 호수의 모습은 어제와는 다르게 산뜻했다. 티스푼으로 설탕을 듬뿍 떠 찻잔에 넣었다. 찻잔과 티스푼이 닿을 때마다 풍경(風磬) 소리가 났다.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찻잔의 소리까지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떤 방해물도, 스마트폰 알람 소리도 없다.
한참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주인아저씨다.
“너희들 운이 좋은 걸?”
“무슨 일이에요?”
“방금 이 방이 취소됐어. 너희가 원한다면, 하룻밤 더 묶을 수 있어.”
어제 체크인하면서 물었을 땐 예약이 가득 차 있었는데, 그새 예약이 취소됐나 보다. 친구들과 상의한 끝에 캔디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숙소에서 바라보는 호수가 마음에 들었다. 여정을 천천히 끌고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빨리빨리에는 진절머리가 났다.
오늘은 천천히 움직이기로 했다. 오전에는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오후에는 요가 수업을 듣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