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11] 흥정은 기세다

스마트폰 두고 떠난 스리랑카 여행기: 캔디에서 길 잃고 툭툭 흥정하기

by 삼콩

사실 캔디(Kandy)는 많은 여행객들에게 달콤하지 않은 도시로 기억된다. 너무 번잡하기 때문이다. 좁은 길에는 사람이 넘치고, 골목마다 물건을 사고파는 소리가 들린다. 캔디는 교통의 요지여서, 보통 여행자들은 캔디를 환승지로 삼아 잠깐 머물고 떠난다.


하지만 나는 캔디의 복잡함이 좋았다. 정확히 말하면 숙소에서 도시를 바라봤을 때의 여유로움과 도시 한복판을 걸을 때의 소란스러움 사이의 간극이 좋았다. 멀리서 보면 호수 위로 구름이 여유롭게 배영을 하고 아래에서는 부드러운 물결이 반짝이는 도시. 가까이서 보면 경적소리가 전쟁처럼 울려 퍼지고 오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수없이 부딪치는 도시. 누군가의 내면 같고, 누군가의 인생 같은 도시.




숙소부터 시내 중심까지 걸어 내려간 우리는 부처님의 치아 사리가 보존되어 있다는 불치사에 가보기로 했다. 친구들에게는 스마트폰이 있었지만, 내 부탁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찾아가 보기로 했다. 손에는 가이드북에서 찢은 지도가 들려 있었다. 나는 길을 잃더라도 지도를 보고 길을 찾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내심 길을 잃고 싶기도 했다.


나는 여행할 때 길 잃는 걸 좋아한다. 가끔 일부러 길을 잃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시내에서 마음에 드는 버스를 골라 탄다. 버스는 미지의 장소로 나를 안내한다. 내리고 싶은 정류장이 보이면 내린다. 내린 곳에서 정처 없이 걷는다. 완전히 길을 잃었다는 느낌을 즐기다가 숙소에 돌아가고 싶을 때 지도를 확인한다.


길 잃기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것과 같다. 익숙한 세계를 떠나 방황할 때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담벼락에 널어놓은 빨래, 여러 가지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낯선 길과 가로수들, 끊임없는 작은 발견들. 걷다 보면 무엇이 나의 발길을 끄는지 알게 된다. 내면의 욕구와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캔디 시내는 지나치게 번잡했다. 게다가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좁은 인도에서 끊임없이 사람들과 부딪쳤다. 서로의 우산이 불편하게 엉켰다. 종이 지도에 똑똑 빗물이 떨어졌다. 종이 지도로 길 찾기의 가장 큰 어려움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GPS를 활용한 실시간 위치 추적에 익숙한 우리의 공간 지각 능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모퉁이를 돌고 돌아 만난 거리는 분명 20분 전에 지나온 거리였다. 길이 있어야 할 곳은 막혀있고, 없어야 할 곳에는 길이 나 있었다. 우리는 2km도 안 되는 거리를 한 시간 넘게 헤맸다. 목표한 길 잃기에 성공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낭만은커녕 짜증만 났다. 친구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빗줄기가 어깨와 발등을 때렸다.


결국 우리는 포기하고 목적지까지 툭툭을 타기로 했다. 때마침 툭툭 한 대가 다가왔다.


“불치사까지 얼마예요?”


“800루피에 해드릴게요.”

800루피는 말도 안 되는 바가지였다. 우리는 300루피를 불렀다.

“400루피, 마지막 제안이에요.”


늘 이런 식이다. 100루피를 더 깎고 싶었지만, 한 시간 넘게 빗속을 헤맨 우리는 을이었다. 알겠다고 하고 툭툭에 올라탔다. 호구 손님을 잡아 만족스러운지 기사의 운전이 경쾌했다. 툭툭은 모퉁이를 몇 번 돌더니 금세 불치사에 도착했다.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웠어?’


그런데 툭툭은 불치사에서 멈추지 않았다. 대신 우회전을 하더니 캔디 호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호수를 따라 달리기 시작하는 툭툭. 어라, 저 건물이 불치사가 아니었나? 툭툭 기사에게 불치사를 지나친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뜸 호수 투어를 제안했다.


“캔디호수 투어를 해 줄게요. 호수가 아주 아름다워요.”


“불치사에 가 달라고 했잖아요!”


“한 바퀴 도는 데 얼마 안 걸려요. 다 돌고 마지막에 불치사에 내려줄게요.”


이 무슨 창조경제인지. 우리는 당장 세워달라고 언성을 높였다. 툭툭은 멈췄다. 기사는 뻔뻔하게도 우리가 투어(?) 중간에 멈췄기 때문에 다시 불치사로 돌아가진 않겠다고 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투어가 시작된 건지 모를 일이다. 한마디도 더 섞고 싶지 않았으므로, 처음에 약속한 돈을 건네고 빠져나왔다. 눈 뜨고 코 베이겠구나 싶어 손바닥으로 코를 문질러 봤다. 다행히 코는 제자리에 붙어있다. 우리는 불치사를 향해 터덜터덜 걸었다.

불치사 근처에서 팔던 꽃


불치사에 도착했지만 빗속에서 길을 헤매고 툭툭 사기까지 당한 후라 관광할 기분이 아니었다.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보기 전에 우리 몸에서 사리가 먼저 나올 것 같았다. 관람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금세 빠져나왔다. 비는 계속 무겁게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때 다가오는 또 다른 툭툭 기사. 숙소 주소가 적힌 수첩을 보여주자 가격을 불렀다.


“2000루피.”


2000루피는 시세의 일곱 배다. 헛웃음을 짓고 있는데, 옆에서 친구가 갑자기 한국어로 사자후를 질렀다.


“이천 루피는 무슨 이천 루피야!!!!!”


친구의 기세에 얼어붙은 툭툭 기사가 꼬리를 내렸다.


“5... 500 루피...”


“노 파이브 헌드레드 루피!!!!!!!!”


친구가 하도 크게 말하는 바람에 주변의 다른 툭툭 기사들도 우리를 쳐다봤다. 우리의 툭툭 기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럼 얼마를 원하냐고 했다. 친구는 툭툭 기사의 눈을 바라보며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쓰리 헌드레드 루피.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정가에 툭툭을 탔다. 돌아가는 길 내내 친구는 외국인 추가 요금의 부조리함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툭툭 기사는 한국말을 이해하는 듯 기척도 내지 않고 운전만 했다. 그 장면을 보며 손자병법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전쟁은 기세라는 말. 나는 혼잣말로 읊조렸다. 흥정도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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