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자신감의 유전적 정보

살고 싶다, 다시 일어서고 싶다.

100세 시대를 기준으로 나는 이미 그 절반을 살았고, 두 발자국을 더 내디뎠다.

어느 날,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매달 귀찮게 찾아오던 손님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몸은 무겁고 마음은 고단하다.

‘갱년기 증상’이라는 말로 이 모든 걸 설명하기엔 억울하고 부족하다.

“29와 30은 다르다. 39와 40도, 49와 50도 큰 차이가 있다.” 어른들의 이 말이 지금 나에게 깊이 와닿는다.


50전의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살았다. 50 후의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벌려둔 일을 수습하며 살아야 할 것만 같다.


나는 아주 많은 돈을 벌어 성공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나는 아프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내 자식들은 잘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나는 늙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그리고 나는 행복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내년이면 좋아질 거라는, 코로나가 끝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나라가 조용해지면 괜찮아질 거라는 근거 없는 낙관까지.


하지만 이제 그런 자신감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미련하게 흘려보낸 시간을 돌이키기에도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다.

기가 꺾였다고 해야 하나.


얼마 전에는 배앓이를 심하게 앓았다. 3개월 동안 찾아오지 않던 손님이 오셨다.

생리통이 심한 나는 3일 동안 약에 의지해 겨우 버텼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고 싶다.”

그 한마디가 내 안에서 터져 나왔다.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변화를 받아들이고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의 유전적 정보는 부모님인 것이 분명하다.

10년 전 칠순 때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고맙다며 호텔에서 가족 잔치를 열어주셨다. “곁에 있어 줘서 고맙다”며 선물을 나눠 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올해 팔순 잔치에서도 같은 호텔에서 가족이 모였다. 달라진 점이라면, 우리가 비용을 부담했다는 것뿐이었다. 여전히 당당한 부모님의 모습에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의 원천을 찾은 듯했다.


내 아이들 역시 나를 닮아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지 싶을 만큼 당당하다.

저러다 나처럼 지치면 어쩌지, 저러다 현실과 타협을 못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저 아이들은 거침없이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간다.

지금 나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만큼 시간을 돌리고 싶다.

얼마 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 초대를 받아 갔다.

이제 막 유명세를 타는 음악가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초대였다. 너무나 멋지고 훌륭한 공연이었다.

저 무대 위의 한 음악가가 탄생하기까지 그 어머니의 노고를 알기에, 그녀가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애잔함이 묻어나는 것의 의미를 나는 안다.

음대와 유학, 반복되는 부모의 투자와 인내, 그리고 전석을 매진시키는 조용한 스폰까지 그리고 병든 몸을 이끌고 끝까지 자식의 손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안다.


공연이 끝나고 차에 오르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이 눈물을 갱년기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아들의 꿈도 멋진 뮤지션이다.

그러나 그 결이 다른 삶을 살아가는 아들의 고된 삶의 무게가 떠올랐다.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내 안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점점 사라져 가지만, 나는 살아야겠다.


나는 부모가 남겨준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의 근거를 찾아야만 한다.

왜냐면 아직 그 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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