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도변경 하면 어쩌려구!
매매 좀 되게 해 주소서.....젭알!
아주 오래전,
도심을 살짝 비켜간 곳에 빌라를 한채 장만했었다..
지나다 우연히 구경하는 집에 정말 구경만 하러 갔는데
흑백의 단조로운 이미지에 홀리 듯 빠져들었다.
집에 와서도 그 집의 구조며 온통 검정과 흰색의 타일이 어른거려 마음이 붕~떠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사하고 싶은 안달복달 욕심에 덜컥 계약을 하고 융자를 알아보고 , 등기를 하고 이사를 하고....짜~잔~드디어 생애 첫 내 집 입성!
아이들도 어릴 때라 고만고만한 또래가 위 ,아래층으로
모여 살며 한집안 분위기로 지내던 시절이었다.
1층의 연년생 남매엄마는 나이쑤 한 성격에 손도 크고 음식솜씨까지 좋아 수시로 불러들여 해 먹이는 걸
취미이자 특기로 삼았다.
쌈닭 능가 할 만큼 싸나운 면도 있어 바른 소리로
앞장서며 불의를 참지 못했다.
쌀쌀맞은 인상과는 정 반대로 화끈하고 수더분한 성격에 빌라촌 반장 격이었다.
아이들 유치원으로 내 보낸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그 집으로 다 모여들었다.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내주는 모닝커피를 시작으로
어떤 때는 뭉개고 앉아 빈대떡도 해 먹고 양푼 가득 비빔밥도 해 숟가락만 얹었다.
대부분 오전시간 집도 치워야 하고 누가 들이닥치면 불편할 법도 한데 아무 스스럼없이 항상 웃는 얼굴로
잡아끄는 게 일상이었다.
커피 마시고 가, 점심도 먹고 가....
어쩌다 각자의 집으로 그냥 흩어지는 날엔 왠지
허전하고 무언가를 빠트린 느낌이었다.
맘씨 넉넉한 이웃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들 넙죽 울궈먹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나이도 젤 어린것이 통솔력은 물론, 블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추진력도 끝내주는 타입이었다.
극성스런 치맛바람 휘날리며 모든 일에 발 빠르게
솔선수범했던 이슬이 엄마야, 오랜 시간 돌고 돌아
너를 반장으로 임명하노라...탕 탕 탕!
2층의 외동아들을 둔, 싸가지에 밥 말아 드신 엄마는 얼마나 깍쟁인지 자기 아들, 남편 외에는 아무 하고나 말도 안 섞고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 쪽 입장에서 볼 때 빌라촌 사람들은 다 아무나였다.
혹여 열린 문사이로 누가 들여다보기라도 할세라 재빠른 동작으로 문을 걸어 잠갔다.
혼자 잘난 척은 다 하면서 어느날인가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집 아빠 이름의 돌림자를 따서 아이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마트에서 잠깐 마주친 순간에 그게 큰 고민이었던지 하소연하듯 한숨도 폭폭 내쉬며 얘기를 꺼냈다.
하나뿐인 아들이 너무 귀한 나머지 같은 항렬에 올린 건지 어쨌는지 어긋난 일이라는 걸 나종에야 알았다고 했다. 부자지간이 아닌, 형제지간???
학교 갈 나이가 되면 개명을 할 거라 괜찮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가 싶더니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쌩~하니 사라졌다. 아니, 요 싸가지 보소, 누가 뭐랬냐.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하네..
콩 한쪽 받은 것도 없지만 괜히 주는 것 없이 밉고
싫은 께름칙한 이웃이었다.
계단에서 마주쳐도 눈 맞추고 인사하는 건 고사하고
꽁지 빠지게 뛰 들어가 철커덕 문 걸어 잠그는
고약한 성격이었다
자신만의 울타리에 갇혀 세상과 담쌓았던
독불장군 아주메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3층의 수다쟁이에 떠 벌 떠 벌한 남매 엄마는 하루 두 번 이상 빌라촌이 떠나가도록 소리 자르며 애들 잡아 족치는 선수였다
현관 앞에 겨우 1학년짜자리 큰애 책을 다 내던져놓고 학교 때려치우라며 울리는 모습도 수시로 목격됐다.
지금 같으면 아동학대 일순위 신고대상이었다.
앞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을 부를 때도 그냥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ㅇㅇ야, ㅇㅇ야...니네 빨리 안 들어오면
내쫓아버린다 ,문,안열어준다..;등 대부분 협박성 발언이었다.
창문으로 내다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때면
그 집 점잖고 순한 남편이 제발 누구 엄마
(참고:그 누구 엄마는 바로 글쓴이 임) 좀 닮아봐라
는 얘길 하더라고 낄낄거리며 푼수를 떨었다.
얘들아~얼른 들어와 밥 먹자, 라든가 뭐 하자라던가
그렇게 부르는 모습을 보며 교양 있게 좀 해보라는 퉁박을 당하면서도 남 얘기 하듯 혀혀 웃어넘겼다.
귀하고 이쁜 내 새끼들 부르는데 그리 악을 쓰고 협박할 일이 있을까 싶어 도저히 이해 불가였다.
바로 앞집의 형제를 둔 엄마는 우리 아이들과 같은 또래다 보니 아예 현관문을 열어놓고 오가는 사이였다. 수시로 같이 밥 먹는 건 예사였고 꼬맹이들이 서로 오가며 잠을 자기도 했다.
온 가족이 교회에 열심이었던 기억,
가끔 한 번씩 생각날 때면 정말 선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이었다.
지나온 기억 속의 이웃들에게 난 어떤 이웃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누구엄마 정말 개싸가지였더라, 하며
입에 거품 물고 씹는거나 아닌지.
짧은 시간 가족처럼 지내던 이런 이웃들과 헤어지는 계기가. 생겼는데 남편이 이직을 하면서 직장이
너무 멀어지는 관계로 급하게 집을 처분해야만 했다.
새집에 딱 1년 살고는 이사를 해야 할 상황이었으나
뭔 놈의 집이 나갈 낌새도 안보였다.
마음만 급해 급기야는 점 보는 집도 들락거리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떻게 해야 집이 나갈까요?
작은 개다리소반에 쌀을 촥~뿌리고 동전도 서너 개 던지며 점괘를 보더니 나가긴 글렀어.
딱 요 한마디 내뱉는 것이 아닌가.
혹 떼러 왔다 오히려 덕지덕지 혹만 더 따따블로
얻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같으면 산전수전 공중전, 택도 없는 소리로 넘기겠지만 그때는 젊었고 세상 때도 덜 묻었고
무엇보다 진짜 다급했다.
빨리 이놈의 집을 처치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슨 방법이 없겠냐 물으니 집안 곳곳 천장 네 귀퉁이마다
절 표시 그림을 그려놓으라고 했다.
옵션으로 사람 성씨 이름을 백가지 적은 후 불에 태워 그 재를 마시라고도했는데 아이고야, 바보 천치 등신도 아니고 ... 암튼 귀하신 특효 약 처방전을 몸소 실천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지금 이야 검색하는 족족 친절하게 다 알려주지만
그 당시엔 머리를 쥐어 짜내는 수밖에 없었다.
사방으로 전화 돌려 상황을 얘기하며 희귀 성 씨
좀 불러봐라 ,해도 김 이 박~~~흔해 빠진 성씨 수순으로 나가다 장벽에 부딪치기 일쑤였다.
탁 씨 팽 씨.. 등 적어 내려가다 아 패. 씨도 있었네
하니 그런 성 씨가 어딨냐 묻길래 패티김 있잖아.. 하니
수화기 너머로 어이없다는 웃음이 들려왔다.
패티 김 이니 김씨지 어떻게 패 씨냐고.
급한 김에 억지 부리다 듣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패티김 가수님은 패씨가 아닌, 김 씨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중1영어시간에 my name. Is ㅇㅇㅇ 자기 소개를 하던 때에 지금자 라는 학생 차례가 되었는데
마이 네임 이즈 금 자 지. 하는 바람에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 그 경우와 일맥상통하는
케이스였다; 금자 지나 패티김이나 ...흐흐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점 보고 온 날 이후. 두 녀석은 쟁반에 쌀을 뿌리며 동전을 날리는 놀이를 추가해 색종이 깃발을 만들어 하나 뽑으라고도 했다.
옛다, 인심썻다, 아무거나 하나 뽑아주니 큰 놈은
머리에 띠 까지 두르고는 양반다리 상태로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갓 신내린 사이비 동자신도 아니고 , 아이고 아들아 너를 어쩌면 좋단 말이냐.
맹모삼천지교는 실천하지 못 할지언정 점 집이나 끌고 다니니 체험 삶의 헌장이 따로 없었다;
애들 보는데 선 물도 맘 놓고 못 마신다니까
참 좋은 것 배워왔구나 싶었다.
점괘가 당연 엉터리 방터리라는 걸 알면서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었으니 누굴 탓하랴
.점 보고 왔는데 모 어떻다더라.. 얘길 하면 팔랑귀 남펀이 귀가 쫑긋해서는 그런데, 그래서,뭐 어떻게 하래... 육하원칙 코스대로 다 듣고 나서는
막판에 꼭 재를 뿌렸다.
이 싸람아, 믿을 걸 믿어야지. 그 돈 반만 나 줘봐라
더 잘 봐줄 수 있다. 하며 염장을 지르기 일쑤였다.
묻지나 말지 꼭 끝까지 다 듣고 초를 치나 싶어
우 씨, 정 안 나가면 머슴 껴 줌, 이라고 광고 낼까
했더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용도변경해서 쓰면 어쩌려구..하는게 아닌가!
용도변경이라..
마님. 마당쇠에게는 하얀 쌀밥만 주서유..
그런 경우라나 참 기발한 내 남편님 되시겄습니다요.
매매는커녕 전세도 안 나가는 통에 월세로 내 놓자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집을 보러 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타자로 젊은 남자와 아무리 깎아줘도
거뜬히 십 년 이상의 차이가 날 것 같은 커플이 왔다.
6개월여도 못 살고 각자의 보증금을 챙겨
찢어진다니 다시 또 내놓았다.
두 번째 사람들은 일 년 넘게 살았나, 몬 사정인지
안 좋게 끝나는 듯 보였고 세 번째는 재혼한 커플이 들어왔으나 마찬가지로 단기간이었다;
그다음이 이 쪽 아이 하나, 저 쪽 아이 하나로 시작해 셋째를 낳았는데 제법 오랜 기간 거주하는가 싶더니 다시 각자의 아이 하나씩 데리고 찢어지면서 셋째는 어딜 보낸다나 하여간 세상은 요지경 속이었다.
맨 이런 사람들만 들락거리니 남편도 의아한지
이상하다, 우린 잘 살다 나온 집인데 귀신이 쓰였나
이런 일만 생기네 ...하는데 꽤 심각한 표정이었다.
용도변경해 써먹을 궁리나 하니 집구석이
온전할 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