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간방집 처자

by 뻥쟁이글쟁이

방 4개의 번듯한 양옥집에 살았던 여고시절,

마당 한편엔 자색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담장밖까지 그 자태를 뽐냈다.

라일락 향기까지 곁들여 서로 아우성치는 것을 바라보자면 꽃내음에 취해 눈이 스르륵

자동으로 감겼다.

대문을 들어서면 대여섯 개의 둥그런 바윗돌 같은 게 발판처럼 놓였었고 그 양쪽으로는

잘 다듬어진 잔디가 파릇파릇 초록을 내뿜었다.

여닐곱개의 계단을 오르면 현관문 활짝

열리며 어서오세요..한결같은 모습으로 반겨주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흥겨움에 어깨가 으쓱했다. 작은 집 내 집이 아니라 널찍한 운동장 같은 아버지의 집이었다.

거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따뜻하고 포근한 햇살이 온몸을 감싸며 눈부시게 몰려왔다.

아버지의 인쇄업이 기울어가던 시기에

쫄딱 망한다는 표현이 딱 맞게 정말 쫄딱

망. 했. 다.

풍요로움과 아늑함이 가득했던 내 작은 궁전에 빨간딱지가 사방팔방 붙었다.

흔히 빨간딱지가 붙었다는 것은 유체동산에 대한 압류상황을 뜻하는데 빨간딱지의 정식명칭은 압류물 표목이라 칭했다.

각 집행관 사무소마다 빨간색을 쓰는 곳도 있고 노란색이나 흰색, 초록색, 분홍색을 쓴다는 것도 알았다.

* *지방법원, * *지원 집행관의 직함이 기재되었는데 드라마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소품용 압류물 표목색상이 빨간색을 많이 써서 빨간딱지로 굳혀졌다고 했다.

드라마에서야 신발 신은 채 마구잡이로 들이닥쳐 거칠게 행사하는 폭군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듯 보였다 .신발도 벗고 조용히 들어와 최대한 안 보이는 곳에 그 빨간딱지를 붙였다.

쇼파 한 귀퉁이에, 티비 뒷면에, 피아노 옆땡이에 , 모든 살림살이 한쪽 면에서 행여

눈에 뜨일새라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자리 잡았다.

어느 한순간 쫄딱 망한 집이 되어버린

가족은 동네의 수군거림을 뒤로하며 산동네

단칸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렇게 내 작은 궁전은 쥐도 새도 모르게,

순식간에 침몰해 버렸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던 내 스므살

어느 가을날 쓰라린 풍경이었다.


용달도 아닌, 리어카에 보따리 보따리 싣고는

행방을 감춘 아버지 대신 엄마가 운전을 하였고 2호, 5호와 함께 내가 그 뒤를 밀었다. 언덕길을 오를 때면 리어카가 주춤하는 동시에 뒤로 쏠리기도 했는데

그 찰나를 놓칠 리 없는 엄마의 입에서 한탄과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이놈에 인간 나타나기만 해 봐라.

저 혼자 살겠다고 숨어버리면 나머진 다 어쩌라구...에구 이년의 팔자야, "

힘에 부친 리어카가 멈칫할 때마다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간뎅이 겁나 큰 내 몫이었다.

"에이..뭘 이 정도 가지고 신세 한탄이랴,

살다 보면 별 별 일이 다 있는 게 인생이구만.

그냥 그냥 잘 버텨 봅시데이.

인명은 제천이니께,

근디 제천이 충북인가,.."

욕심도 많고, 꿈은 더 많은 스므살처자의

쓰린 속을 감추며 헛소리나 핑핑 해 대는

나를 향해 5호가 눈을 흘겼다.

"저 언니 또 시작이야, 이 상황에 농담이 나오냐, 난 쪽 팔려 뛰쳐나갈 판이구만."

농담 섞인 심통을 부리며 리어카가 도착한 곳은 다 쓰러져 가는 낮은 슬레트 지붕의

초록색 대문집이었다.

말이 좋아 대문이지, 녹슨 철문 사이사이로

간신히 초록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고무줄을 칭칭 묶어 한쪽 귀퉁이에 고정시킨 것을 보니 늘상 열려있는 문이란 것을 증명했다.

묻고 따지고 할 처지도 아니었기에 그냥 여기가 우리 집이구나.. 하는 심정으로

짐을 풀었다.

신발을 벗으면 바로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 방문이었고, 골목길 같은 아주 좁은 부엌이 바짝 붙어있는 구조였다.

부엌문을 열면 서너 발자국 코 앞이 바로 변소였는데 아이구머니나, 나무로 얼기설기 덧댄 구멍 숭숭 뚫린 문이 그것도 문이라고 달려있었다.

우리 방 옆이 주인집 부엌이었으나 명색이

주인이라고 해서 별 다른 분위기는 아니었다.

쪽문 달린 부엌 옆에 그 집 큰 방, 손바닥만 한

마루옆에 더 손바닥만 한 작은 방..

온통 손바닥만 한 것들로 어우러진 집이었다.

이사 첫날부터 눈에 확 들어왔던 장면은

지나치게 친절한 주인아주머니의 태도였다.

언제 봤다고 아주 친근한 사이처럼 우리 집 5호 이름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엄마,, ***엄마...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쫓아다니며 친절을 베풀었다.

도망간 아버지를 대신해 분명 이 집을 엄마가 발품 팔아 얻었을 테고 최대한의 흥정으로 사글세를 정했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악의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성품에, 마냥

사람 좋은 스마일상에 조용조용한 말투는

사람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한테만 악처 중에 악처 크산티페였나 싶었다.


갑장인 주인아주머니와 엄마는 그날로 주인과 세입자 처지가 아닌, 친구 먹었고.

고난의 월세살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주인집에는 우리 비슷한 또래의 아들만 셋이었는데 주인아저씨는 고물을 리어카로 수집해 고물상에 파는 직업군이라고 했다.

큰아들은 주인아주머니가 재취로 오면서

옵션으로 딸려왔는데 살짝 모지리였다.

허옇고 잘 생긴 허우대와는 달리 말을 심하게 얼버무리며 더듬는 통에 백치 아다다를 떠올리게 했다.

늘상 쪽마루에 개나리소반을 펼쳐 놓고

카세트 테잎을 틀어 영어공부를 하던 주인집 둘째는 ㅎㅇ대 영문과에 재학중인 수재에다 주인아주머니의 자랑거리였다.

하얀 피부와 더불어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였는데 공부만 담아 저장하는 성실한 붙박이 장 같았다.

이사한 지 며칠이 지나도록 자리를 뜨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학생이 맞긴 맞는 건가 하는 의아심이 생겼다.

방문 앞 바로 면전에 수돗가가 있었는데

아침이면 다 그곳에 모여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고 이도 닦느라 개인 사생활이라곤 보장되지 않는 암흙 같은 시절이었다.

집안도 쫄딱 망하고 학교도 멀고, 핑계김에 어영부영 때려친 내 캠퍼스시대는 거기서

잠시 아웃이었다.

미래고 나발이고 일단 보류하고 두 동생을

위한 시다바리에 돌입했다.

자취를 감춘 아버지를 대신해 고생하는 엄마를 볼 때면 대학의 ㄷ자 소리가 쏙 들어갔다. 절대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될 혼자만의 금기어로 정해버렸다.

아이를 돌보느라 선생집에 입주한 엄마가 주말에나 한 번씩 들여다보았을 뿐 실제 살림을 맡아야 할 처지였다.

1호는 결혼을 했고 , 2호는 병원에 근무 중이라 빼도 박도 못 할 상황이었다.

중2, 고2 두 동생을 향한 뒷바라지에 온갖

정성을 쏟아부었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닌데 시금치 계란말이며 장조림이며 김도그냥 굽는 것이 아니라

깨소금과 고춧가루를 솔솔 뿌려 매콤하고 바삭하게 구워 도시락을 싸 주었다.

점심시간만이라도 쫄딱 망한 집구석이란

것을 잊게 해 주고 싶어 마술을 부렸다.

훗날, 5호가 한 번씩 꺼내던 얘기가 있었으니

언니 덕분에 점심시간이 기다려졌었노라고,

그때만큼은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또 훗날, 자주 꺼내서 들춰내던 내 엄마의 과거지사 폭로가 있었으니..;

"아휴, 저 년은 허구한 날 변소 푼다고 돈 뜯어가질 않나, 연탄 산다고 뜯어가질 않나.."

알고도 모른 체 뜯기던 엄마의 고쟁이에서 나온 쌈짓돈은 4호와 5호의 찬란한 도시락의 근원지였다.

아마 중3 때부터였을까, 참고서에 자습서 핑계 대며 수시로 뜯어내던 돈으로 극장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교복도 맘에 안 들면 다시 멋대로 맞추었고

교탁에 프리지아 조달도 내 몫이었다.

입만 뻥긋하면 엄마 주머니가 척척 열리던

학창 시절 황금기였다.

아. 옛날이여!


딱따구리 모냥 시끄럽긴 해도 정 많은 주인아주머니는 부침개며 밑반찬이며 수시로 우리 밥상에 조달을 했다.

대부분 내가 집 콕 신세다 보니 점심을 함께 하는 일이 많아졌다.

수제비나 칼국수와 더불어 상대편이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얘기를 주절주절 밥상에 같이 올렸는데 대부분 둘째에 대한 애정과 자랑이었다.

고 틈틈이 아주 살짝살짝 쫄딱 망한 집 과거사를 염탐하기도 했고, 동생들 뒷바라지에 충실한 현시점에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돌려 깎기에 익숙하지 않은 주인아주머니는 직선적으로 궁금증을 내 비치며 내 속내를

들추려 했으나 입은 무겁고 손은 빠름 빠름 한 나를 넘어서진 못 했다.

단칸방에서의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변소 문턱에서 넘어진 주인아주머니가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동안 얻어먹은 것이 많다 보니 보은의

의미를 담아 삐뚤빼뚤한 솜씨로 바느질을 했다. 닭의 배를 가르고 찹쌀과 대추에 인삼뿌리까지 곁들여 대바늘로 총총 꿰매

병원으로 향했다.

백숙을 보는 동시에 계 멤버였던 엄마와

집주인의 칭찬 릴레이가 이어졌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한 쑥스러움은 온통 내 몫이었기에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미닫이 창호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방문을 여니 주인집 둘째가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저... 저...저기요..."

노상 앉아서 영어 테잎만 듣던 당사자를 직접 보니 키가 정말 엄청 작았다;

곤란한 상황에선 찬바람 쌩쌩 일으키는 주특기를 가감 없이 발휘해 물었다.

누가 그랬더라.

겨울바다의 겨울바람보다 더 차고 멀게만 느껴지는 너의 먼 시선...이라고.

"왜요? 무슨 일인데요?"

그럴 때면 아무도 범접 못 할 정도의 쌀쌀맞고 정 떨어지는 표정이란 걸 나 자신이 너무 잘 알면서도 큰 눈 휘번덕이며 다시 확인 사살을 했다.

"무슨 일이냐구욧?"

"저, 저 저기..;"

순간 뇌리를 파바박 스치는 게 있었으니.

아니, 지 형처럼 말더듬인가,

그래서 맨날 앉은뱅이 상태로 테이프만 디립다 듣고 있었던 건 아닌가...

방문을 확 닫아버리려다 명색이 세입자이다 보니 조금은 깨갱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무슨 일인데요?"

한결 부드러워진 말투 때문이었을까,

주인집 둘째가 그제서야 더듬이를 면하고는 외운 것 토해내듯 속삭였다.

마지막 축제라 같이 가고 싶은데 혹 시간이 되면 동행해 줄 수 있느냐는 요지였다.

방문 열어 얘기할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황공무지로소이다 하는 표정이 되어 멋쩍게 웃고 있었다.

어스름한 분위기에서 순하게 새어 나오던 웃음을 바라보며 섬섬옥수 참 가지런하구나

그런 생각을 잠시, 그러죠... 인심 쓰듯

초대에 응했다.

새로 장만한 미색투피스가 하늘하늘 바람결에 나부끼는 선녀의 날개옷 같았다.

네 팀이 어울리던 축제분위기는 나름 괜찮았고 작은 키가 그리 눈에 거슬리진 않았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정성을 곁들인 성실함이 도드라지던 시간이었다.

어둑해질 무렵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느닷없이 어깨에 팔을 두르던 행동에 갑자기 확 빈정이 상했다.

작은 키로 매달리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암튼 그 순간 이후 심통이 발동했다.

버스를 타고 오며 궁금한 것이 뭐 그리도 많은지 지 엄마가 하던 것처럼 야금야금 캐묻기 시작했다.

요리조리 피해 가며 성의라곤 없이 단답형

으로만 대꾸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눈치가 빵점이었다.

집 앞 골목을 들어서면서 나더러 먼저 들어가라는 말을 남기고 골목 끝에 우두커니

서 있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영어를 쏟아내던 테이프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개나리소반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수년간의 셋방살이를 끝으로 아버지가 돌아옴에 따라 보유하고 있던 땅을 파는

계기가 되었고, 동시에 언덕 위 우러러보던

집으로 이사를 했다.

문간방에 살면서 오가며 보았던 저 동네엔 누가 살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다시 집주인이 되었다.

언덕 하나 사이로 옛 주인집 아주머니가 수시로 드나들며 친근한 관계가 유지되었다.

마지막 축제를 끝으로 자취를 감췄던

영문대생은 복무 중이었는데 제대하면

*우리 집 며느리 하라며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

굳이 꺼려야 할 상대도 아니었는데

왜 그리 쌀쌀맞게 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문간방 시절이 떠오르는 건

어떤 연유일까.

문간방집 처자 참 못났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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