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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Nov 23. 2022

눈물 파는 아이, 곡비

역사동화를 통해 조선시대의 직업을 생각하다.

역사동화를 좋아해서 웬만한 조선시대 역사동화는 읽어봤다고 자부했다. 일단, 표지에 한복이나 전통 이미지(보통은 한복 입은 아이, 강을 건너는 아이의 표지는 많이 특이했지만...)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읽어보곤 했다.그러다보니, 역관, 백정, 착호갑사, 천문학자 등 많은 직업군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지만, 장례 때 체통을 중시해서 차마 울지 못하는 양반을 대신해서 울어주는 곡비라는 직업이 있는 줄은 생각도 못했다. 얼마나 허울 좋은 체통을 중시했기에 슬픈 감정마저 마음대로 드러내놓지 못하고 천한 이에게 의탁해야만 했을까 혀를 끌끌 차면서도 어미가 곡비로 태어나 곡비의 삶을 살아가야 할 이름없는 '아이'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에 홀리듯 읽게 되었다.

곡비 아이는 어미가 곡비로 일하는 걸 보면서도 눈물 없는 자신이 어찌 곡비로 살아갈 수 있는지 늘 의문을 갖는다. 어미에게 끌려 억지로 장례에서 곡을 해보려 하지만 눈물은 말라버린 듯 나오지 않고, 자신이 곡비로서 영 재주가 없음을 알게 되는 아이.


우연히 알게 된 오생에게서 아비가 팽형을 당해 죽은 것처럼 살아가고 있으며,  아비가 팽형을 당한 후 태어났기에 역시나 이름이 없이 죽은 듯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름이 없는 같은 처지.

처지가 비슷한 아이들끼리 어울리며 친해지다가 왕의 행차 날, 왕과 백성 놀이를 하는 아이들.


왕이 된 아이가 백성인 오생과 부엉이, 달래의 격쟁을 들어주며 서로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놓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습을 보며, 예전이나 요즘이나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가진 상처를 치유하고 또래집담과의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통해 긍정적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렇게 왕과 백성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앞에 홀연히 나타난 한 선비. 자신의 어린 시절 겪었던 상처를 왕인 '아이' 앞에서 격쟁으로 고백한다. 책을 보는 우리들이야 '어? 정조네!'하고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사도세자 이야기였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아이들이기에 왕으로서 선비의 말을 경청해주고 역으로 아이들이 어른의 상처를 보듬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더욱 끈끈해진 아이들.(과 선비)

몰래 숨어 지내던 오생의 아버지가 진짜 죽음을 맞이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이었기에 장례조차 치루지 못하고 작은 아버지가 밤사이 가묘에 안장하는 걸로 끝나는 듯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아비의 끼니를 챙겨준 곡비 '아이'는 오생을 위해 또 한 번의 놀이(?)를 생각해내는데...

시체조차 없는 장례를 치루고 싶지만, 세상에 들켜 벌을 받을까 망설이던 아이들 앞에 나타난 선비는 오생의 아버지를 위한 만장을 써주고, 아버지의 몸은 없지만 영혼을 모신 장례가 치뤄지게 된다.


슬픔 없는 아이가 어디 있을까.

장례를 치르던 아이들과 선비는 진심으로 꺼이꺼이 곡을 하며 한을 토해낸다. 죽은 이와의 인연을 알지 못하기에 울 수 없었던 곡비 아이는 이번 장례에서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내었고, 선비는 불행하 죽은 아비를 생각하며, 부엉이와 달래 또한 각자의 슬픔을 생각하며 통곡을 한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부분.


선비는 장례를 치룬 후 오생에게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는지를 물었고,  격쟁을 통해 소망을 이룰 수 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그렇게 왕의 행차가 있던 날, 격쟁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만난 왕. 그제서야 아이들은 그동안 알고 있던 선비가 바로 왕 정조였음을 알게 된다.


어찌 보면 판타지 같은 동화였다.

아무리 격쟁이라는 제도가 있다 한들, 어진 정조같은 임금이 아니면 누가 백성들의 작은 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주었을까. 팽형, 곡비 등 극히 아이들에게 생소한 소재를 가지고도 흡입력있게 구성된 이야기를 다 읽고나니 작가의 필력이 대단함을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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