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lo Earth Oct 28. 2023

7세 아이가 천자문을 이해하는 법-용사화제(龍師火帝)

천자문에 관심 중인 작은 아이.

하도 뜻이 뭐냐고 물어대기에 서점에 가서 천자문 벽보를 하나 사다 식탁 옆에 붙여두었더니, 밥 먹을 때마다 밥은 안 먹고 질문만 끝없이 끝없이 이어지곤 한다.(질문 그만하고 밥 좀 먹자.)


아침이었다.

큰 아이가 등교할 즈음 식탁에 앉은 작은 아이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엄마, 천지현황하고 우주홍황이라. 하늘과 땅은 검고 누렇고, 우주는 넓고 거칠다. 근데 우주는 왜 거칠어요?"
"글쎄. 우주에 보면 소행성도 돌아다니고, 별도 많아서 거칠다고 한 것 아닐까? 여기 보면 자연 이치도 있고, 나라의 이치도 있고, 과학도 있다. 와. 신기하지?"
"우와. 신기해요. 엄마, 그러며하이일체(遐邇壹體) 이건 무슨 뜻일까요?"
"음.멀고 가까움이 하나의 몸과 같다?"
"엄마, 그런데 하나 일이면 이 글자 아닌데..."
"아.하나 일(一, 壹)은 두 가지로 쓰는데, 은행처럼 돈을 한자로 쓸 때 줄 하나만 그으면 다른 사람이 나쁜 맘 먹고 줄 세개로 바꿔버리면?.....블라블라."

"엄마 그럼 용사화제(龍師火帝)에 스승 사. 스승이 뭐에요?"
"스승은 선생님을 말하는 거야."
"아. 그럼 이건 무슨 뜻일까요?"
"......?!"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아이에게 오히려 무슨 뜻일거 같냐고 물어보았다.


곰곰히 생각하던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이 용...띠?"


"오오.... 기발한 해석인데??

그럼 선생님은 용띠고 임금님은.... 불(火)띠네?!


받아치는 내 말에 아이도 나도 한참동안 배꼽을 쥐고 웃었나보다. 


대화를 하느라 밥 한 그릇을 언제 먹었는지 모르게 휘리릭 밥을 먹고 어린이집 등원하는 길.

천자문을 보다보면 재미났는지 선생님께 용띠냐고 여쭤볼거라며 벽보를 떼어서 가져간단다.


한자.. 모르는데... 라며 난감해하시는 선생님께 아이를 밀어넣고 속으로 아까의 대화가 떠올라 큭큭 웃으며 돌아선다.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아이를 키우면서 배우는 건 참 즐겁다.


뜻하지 않게 30년만에 초등 2~3학년때 외웠던 천자문을 소환하지를 않나.

그 땐 달달 외우기만 하느라 몰랐던 우주와 자연, 역사, 만물의 이치를 천자문 속에서 발견하면서 신기해하질 않나.

뜻하지 않게 재미있는 농담 소재를 발견하고 즐거워할 수도 있으니 이 모두가 아이를 키우며 지나간 것에 다시 관심을 가지면서 일어나는 즐거운 이야깃거리다.


일곱 살, 마냥 이쁘기만 한 작은 아이를 키우며 엄마는 오늘도 한 뼘 더 자랐다.



작가의 이전글 학교에 쥐가 나타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