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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Oct 30. 2023

우리 부부가 사춘기 아이와 소통하는 법

비빔밥처럼 어우러지는 가족 커리 만들기 썰

일요일은 내가 요~리사
짜...짜짜자짜 짜~파게티... 가 아니고 커...리?


우리 어렸을 때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그 때 그 광고를 기억하는가.

일요일의 상징은 짜파게티라지만, 우리집 일요일(어쩌면 토요일)의 상징은 난과 커리다.


시작은 올해 결혼 기념일.

어느덧 13년차를 맞은 결혼기념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든 가자 하며 논의하다가 남편과 데이트하거나 신혼 때 가끔 찾았던 맛집 바바인디아를 떠올렸다.


매콤한 탄두리에 부드러운 코코넛 밀크를 품은 커리와 난까지.

큰 아이가 어렸을 땐 한 번 가봤지만 그 후론 너무 비싸서 엄두도 못 냈던 곳이기도 하다.

"하...먹고 싶다."

 지나가는 길에 침만 추릅추릅 삼키는 나에게 남편이 이번 결혼기념일 때 가자고 선언했다.

'감사하긴 한데, 애가 둘이라....난 하나에 3천원이 넘네...애들이 많이 먹을텐데.  괜찮을까??)


호기롭게 외치던 남편도 그 말에는 난감해 한다.

빠듯하진 않지만, 넉넉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살림이라 내심 걱정이 되었다.


결혼기념일 날.

일찍 오겠다던 남편은 회사에 일이 터져 결국 늦게 올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바바인디아는 못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못 가는 곳이었는데. 뭘.'


주말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면서도 결혼기념일에 외식 못해주게 못내 미안했던 남편이 바바인디아에 가자며 재촉했다.

속으로 고마우면서도 망설이는 나에게 큰 아이가 말했다.

그냥 만들면 안돼?


응?? 그...그거 참신한데??


남편도 나도 아이들도 모두 순식간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엄마아빠 주머니 사정 생각하면서 눈치 보며 먹느니 당당하게 만들어먹자는 아이들.

남편은 서둘러 레시피를 검색하고,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흥미롭게 아빠 옆에 찰싹 붙어 레시피를 돌려보았다.


아빠는 재료를 준비하고 아이들은 아빠의 구령에 따라 난을 만들고, 발효하고 둥글리고, 성형했다.

서툰 솜씨로 둥글리고 가스를 빼던 첫 커리의 기억을 뒤로 하고 커리와 난은 주말마다 꼭 한 번은 만드는 우리의 특식이 되었다.


요즘엔 아예 아빠는 재료만 준비해주고 뒤로 빠진다.

골프연습을 하러 가기도 하고(드문드문 가다보니 무지무지 서툴다.) 커트를 하러 가기도 하는데, 그 시간이 대략 1시간 쯤 걸리는데다 엄마인 나는 난 만드는 과정엔 일체 개입하지 않다보니 자연스럽게 난을 주도적으로 만드는 주체가 큰 아이로 바뀌었다.

주물주물 해서 반죽 만드는 건 오롯이 큰 아이 손을 거치고, 발효가 끝나면 작은 아이를 조수 삼아 동글동글 빚으라 하고, 힘이 들어가는 밀대는 자신이 쥐고 가스를 빼낸다.


이번엔 후라이팬에 굽는 것도 큰 아이가 하는 걸 보면서 음. 다음엔 놀고 먹어도 되겠구나! 하는 큰 깨달음을(!?)얻었다. 야호!


아이들과 남편이 난을 만들면 내 할일은 그저 느즈막히 쉬고 있다가 재료를 썰고 다함께 후라이팬에 쏟아 볶은 후 커리 가루를 푼 물을 듬뿍 넣고 끓여 커리를 만드는 것.


뭔가 허전해서 이상한데? 하니 큰 아이가 옆에서

"엄마, 새우가 없는데?" 라고 한다.

음....그렇군. 이제 엄만 하산하고 너에게 전권을 넘기겠어...

하하하..(라고 속으로만 외친다.)


단 한 명도 무임승차하지 않고
모두가 합심해야 먹을 수 있는 한 끼.


이게 우리 가족이 주말마다 만드는 난과 커리 맛의 비밀이다.

남편과 아이들는 반죽을 치대어 난을 만들고, 엄마는 커리를 만든다. 온가족의 요리, 인도의 난과 커리
사춘기 아이와 적당한 거리두기도 좋지만, 가족간의 소통, 공감할 수 있는 활동이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게 꼭 아빠와 아들이 함께 하는 게임, 엄마와 딸이 함께 열광하는 아이돌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삼시세끼 어찌 보면 평범한 하루, 아니 일주일인데...

유일하게 가족 모두가 모일 수 있는 주말.

평범하지만 가족 모두가 제 맡은 역할을 뚝딱뚝딱 해내야 만들 수 있는 한 끼 식사

나이가 적다고 소외되지 않고, 나이가 많다고 슬쩍 빠지려 하지 않고 모두가 합심해 만드는 과정만으로도 사춘기 아이와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지만 너무 당연해서 대충 때우기 쉽고 스스로 요리를 하지 않다보니 엄마의 노력도 모르고 엄마가 해주는 밥이 맛없다며 투정하기도 쉽다.


일주일 단 한 끼라도 가족 모두가 참여해서 만들어낸 한 끼.


내가 만들었으니 맛없을 수 없고, 만드는 과정 또한 교육의 일부분인지라 어느 누구도 손해 날 일 없다.

먹으면서도 만드는 과정에 대해 대화하다보면 하하호호 웃으며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그런 화합의 끼니.


'난과 커리' 에 대한 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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