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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Jan 03. 2024

남편과 둘이서만 국립중앙박물관...

세금의 혜택을 마음껏 누려라!

복직을 7개월 남긴 요즘.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간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건,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


는 거다.

반대되는 말로 표현하면, 돼지 목에 진주?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면 돼지 목에 진주처럼 쓸모 없는 것이 될 테니까.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좋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이 싫어한다는 핑계로 올해가 되어서야 이 곳에 오기 시작한 나의 과거를 반성한다.)


연말까지 무척이나 바빴던 남편에게 잠시 제동이 걸렸다.

연말. 단 일주일만 주어지는 권장휴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지 긴가민가 했는데, 건강검진 때문에 반 강제로 휴가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휴가지만, 처리 못하고 미뤄뒀던 일들을 처리하고, 밀린 병원에도 다녀오느라 이틀을 써버리고,

방학을 맞은 큰 아이와도 시간을 보내야 해서 훌러덩 보내버리고, 평일의 마지막인 금요일이 되어서야 드디어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사춘기에 본격 들어선 큰 아이는 집에서 숙제를 하고 있기로 하고, 남편과 둘이 차를 끌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에 익숙한 나는, 남편에게 취향을 먼저 확인 후 많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들르는 1층이 아닌 3층으로 향했다.


여기서 국립중앙박물관을 제대로 즐기는 꿀팁!
1층은 상설 전시관이라 전시물이 거의 변하지 않으니,
3층 세계관 쪽을 먼저 들르면 전시 기간이 특정된 특별 전시(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메소포타미아전이나 그리스로마전)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물들이 낯설기도 하고, 해설사를 따라 다니다보면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는 기쁨에 의욕 상승, 흥미 뿜뿜될테니 말이다.

워낙 넓은 곳이라 1층부터 돌다보면 1층에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1층은 한국사관이라 한국식 교육에 익숙한 어른이나 아이나 조금 뻔한 전시물들이 많다.
 석기시대부터 돌다간.... 음. 역사를 공부해야지! 다짐하고 열심히 선사시대 달달 외우다가 헤...  침 질질 흘리며 다짐이 점점 흐려져갔던 옛날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너무도 익숙한 그 때 그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주먹도끼 뗀석기의 등장에 흥미부터 뚝 떨어지지 않을까.

한 번에 다 보겠다는 거대한 다짐 말고,  가기 전에 미리 오늘의 관람 주제를 정해서 그 곳을 집중 공략하는 게 성공적인 관람 방법이 되겠다.
(물론 팁이라고 하기에는 모두가 다 알 것 같긴 하지만.)

우리가 3층으로 올라가니, 마침 해설사가 메소포타미아관에서 해설을 시작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모습에 해설임을 직감한 나는 재빠르게 해설 대열에 끼어들었다. (역시 이럴땐 박물관 경력이 꽤 먹힌다. 몰랐다면 번호 순서대로 어디갈까 고민했을텐데 말이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해설은 중앙아시아→인도→중국→일본→그리스로마신화전으로 옮겨가며 이어졌다.


나야 이미 메소포타미아관을 여러 차례 와봤기에 익숙하지만, 처음 온 남편은 꽤나 흥미로워했다.

시간 관계상 중국과 일본은 하나의 유물만 빠르게 훑었는데도 1시간 반이 훌쩍 지나있었다.


더 깊이 듣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머금고 남편의 요청에 따라 메소포타미아 전시관으로 다시 왔다. 내년이면 끝나는 전시라 지금 꼭 봐야 한다나.


하긴. 오늘이 아니면 언제 남편이 이렇게 여유를 부리며 박물관 문화생활을 하겠나. 나도 7개월 후면 복직이지만 가장의 무게감이 느껴져 괜스리 마음이 짠해진다.


그렇게 두 시간 반을 훌쩍 넘기면서도 꼼꼼히 보느라 3층의 절반도 채 못되는 곳만 돌다가, 배도 고프고 해서 남편을 따라 2층 커피숍으로 향한다.

(혼자 갔으면 언감생심인데, 남편이 사준다니 냉큼 따라나섰다. 이번 휴가 땐 몇 년 치 커피숍 나들이를 다 한 것 같다. 병원에서도, 중대 선언하겠다며 불러냈을 때도, 지금도....)


뷰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남편과 묵묵히 커피 한 잔을 나누어 마셨다.

둘 다 며칠 전 다녀온 병원 때문에 복잡한 심경이지만 굳이 말은 하지 않았다.


커피숍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사유의 방에 잠시 들른다.

어두운 방에 반가부좌로 사유하고 있는 두 부처님.


은은한 염화미소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는 건 삼산관 반가사유상과 탑형보관 반가사유상이다.


사유상 양 끝에는 관리인이 앉아있었는데 나중에 남편 말을 들으니 한 분은 꾸벅꾸벅 졸고 계셨다고...

아이코. 나 같아도 하루종일 지나가는 관광객만 바라보며 그 어두운 곳을 지키자면 절로 졸음이 오겠다 싶었다.


지금 한참 재미나게 보고 있는 '일상의 고고학- 나혼자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책을 펼치면서, 남편에게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해설을 해주었다. 이럴 땐 나름 날라리 회원이긴 했지만, 대학 시절 역사동아리에서 활동한 보람이 있다. 하하.


어느새 세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어쩔 수 없이 1층 영상관만 잠시 들렀다 가기로 했다.

1층 실감 영상관에서는 불교 윤회사상에 기반을 둔 죽은 사람이 가는 저승 세계, 10 번의 심판이라는 주제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불교가 아니라면 다소 불편할 수도 있고,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영상이라 추천하고 싶진 않지만, 나름 불교 영향을 받고 자란 나는 딱히 불편함은 없었다.


이승에서 죄를 짓고 저승에 온 사람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염라대왕을 비롯한 열 명의 대왕으로부터 심판과 벌을 받고 윤회한다는 내용. 제작되는 컨텐츠는 모두 이 곳에 전시되는 그림에 기반하는데 꽤 실감나게 제작되어 볼만하다.


참고로 7살 아이와 일전에 이 곳에 왔을 땐 정조대왕 화성 행차를 그린 반차도가 실감 영상으로 상영중이었어서 아이도 나도 정말 재미나게 보고 왔었다.

아이와 같이 다녀왔을 때 상영했던 왕의 행차 실감 영상. 반차도의 행렬 이모저모를 실감나게 보여주어서 영상이 끝나고 결국 반차도 전시물을 찾아 보았다.

정기적으로 영상이 바뀌는데 이번에 상영되는 두 편의 영상 중 하나는 사계절 우리나라 모습. 풍경화라서일까.

예전에 아이와 봤던 건 풍경이었지만 꽤 볼만했는데 이번엔 음악도 영상도 지나치게 단조로워 지루했고, 나머지 한 영상은 지나치게 자극적인 것 같긴 한데 다행히 남편도 재미나게(?) 봤다고 한다.

(참고로 입구에는 이 영상이 불교 사후 세계 영상으로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장면이 있으니 노약자나 임산부 어린아이들의 관람 자제를 요청한 글이 붙어있다.)


집으로 향하는 길.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집에 도착하니 작은 아이 픽업 시간.

바로 육아 전투에 투입되느라 문화생활의 여유를 곱씹을 틈은 없었지만, 평화로웠던 박물관 나들이의 추억은 한동안 계속 뇌리 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방학이라 어딘가에서 단체로 온 듯한 고학년 학생들, 아이 손을 잡고 온 부모들도 있어 다소 북적거렸지만, 다시 개학이 되는 3월이면 썰물처럼 빠져나가 다시 한가로워지겠지.


그 때 다시 여유롭게 이 곳에 와서 세금혜택을 마음껏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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