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너무 좁아, 통 크게 100대 명산길!
중간고사 시험 기간입니다.
에미는 속이 터지지요.
주말이니까 당연히 공부를 안하는 게 국룰이라는 아드님 덕분입니다.
휴... 그나마 역사라도 시험범위에 있었으면 좀 나았을텐데, 중간고사 때는 역사 시험이 없다고 하니, 결국 아이의 중간고사 전략과목은... 전무합니다.
주말에는 좀이 쑤시는 어린이들이지만 비오는 주말이 계속되니 난감합니다.
그래도 날이 갠 일요일에는 계속 철 없이 어디 안 가냐며 투덜대는 큰 아이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했지요.
"일단 해야 할 공부를 찾아서 다 하고, 그 다음에 어디 가고 싶다하면 그 땐 악착같이 가까운 뒷 산이라도 갈터이니. 네 할 일을 우선 하고 얘기하거라..."
라고 말이죠.
그 말에 신문 보느라 바닥에 착 붙은 엉덩이를 겨우 떼는 큰 아이.
그렇게 오전에는 줄기차...진 않았지만 어찌저찌 겨우겨우 기출문제를 풀고, 망우를 기점으로 하는 망우~용마~아차산 코스로 향합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궂었던 날씨였는데 일요일인 오늘은 화창하기 그지 없는 날씨. 게다가 뜨거운 열기까지 더해집니다.
이렇게 더울 줄 몰랐던 저희 가족은 모두 도톰한 긴팔티셔츠 차림이었던지라(그나마 점퍼는 안 챙겼으니 다행인가요), 망우역사공원에서 출발도 안했는데 이미 마음도 몸도 지쳐버리네요.
그래도 놀러나온 가족들의 밝은 얼굴과 화사한 봄꽃들을 보며 힘차게 출발해봅니다.
산길 초입에는 살구나무를 비롯한 갖가지 과일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등산객들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화려한 볼거리들에 시선을 뺏긴 나머지 올라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걷는 건지 멈춰버린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느릿느릿 하네요.
하지만 오늘은 갈 길이 멀기도 하고 워낙 더운 날씨라서 관찰하는 아이들을 재촉해서 서둘러 올라갑니다.
처음 가는 길인데 길을 잘못 들었는지 양쪽으로 주욱 늘어선 무덤길이 나오네요. 차도인지 간간히 차량들이 지나가기도 하고 무덤들도 있다보니 다소 스산하기도 합니다. 유관순 열사의 가묘도 있구요. 방정환, 한용운 님 등 위인과 독립운동가들의 묘지와 일반인 묘지들이 혼재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엔 스산했는데 가다보니 어느새 공동묘지라는 인식에서 무덤덤해지고, 이건 누구 묘일지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게 다가옵니다.
독립운동가도 있구요, 역사적인 인물들의 무덤들도 있다보니 관련 역사이야기도 나누며 더위로 지친 아이들이었음에도 나름 수월하게 지날 수 있었지요.
작은 아이의 거진 한 달 동안의 숙원사업이었는데요.
비내리는 주말이 계속되는 동안 이루어지지 못했던 소원을 이루러 가는 길입니다.
이번엔 특별히 엄마 아빠의 온라인 인증도 시도해보려고 하는데요.
짠!
바로 요 인증 앱이 엄마 아빠의 새로운 도전 여권입니다.
QR 인증이 종료되면서 새로 생긴 앱인 것 같기도 한데 무튼 산을 오르면서 침 튀겨가며 남편한테 자랑해서 기어코 남편님도 인증 앱을 깔게 되었고, 저희 부부 모두 서울 둘레길 여권을 발급받았습니다.
(앱 개발자님 감사합니다.)
그걸 깨알 자랑하던 중 큰 아드님이 저의 인증앱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여다보며 툭 한 마디를 던집니다.(핸드폰이 아직 없는 아이다보니 에미의 인증앱으로 세상을 경험할 수밖에 없네요.)
큰 아이에게 서울 둘레길 21코스는 너무 좁았던 걸까요?
서울 둘레길 시작만 네 번째인데(아차산 초입에서 서울둘레길 첫 스탬프를 찍고 그 뒤로는 아차산만 네 번째 도전인지라...스탬프 인증은 제자리 걸음이지요.)
(고 3때도 등산하고 있는 건 아닌지....음. 걱정되긴 하네요.....)
둘레길에서 살짝 비켜나 우리끼리 맘대로 간 거리도 있다보니 예상보다 더 긴 거리이기도 했고, 무지 무지 더운(최고 기록 27도까지 찍은) 4월 역대급 날씨이기도 했죠.
팔을 다 걷어부치고 땀 뻘뻘 흘리며 출발했는데 산을 내려와서 시원한 음료 한 잔 마시고 나오니 서늘한 날씨로 변해 있는 그야말로 예측 불가 4월 날씨입니다.
사실, 출발 전 아침까지만해도, 중2 큰 아드님의 시험 준비 때문에 나름 험악한 분위기였는데요.
어찌되었든 등산에 가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꽤나 많은 기출문제를 풀어낸 아이에게 등산이라는 해피한 결말을 선물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정말 많은 관심을 주고 있고, 등산과 같은 건강한 취미생활과 100대 명산을 오르고야 말겠다는 거대한(?) 포부도 있으니 엇나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은 있어 다행이지요.
최근, 이번 중간고사 국어 문학 시험을 준비하는 아이에게 시험범위인 '동백꽃'을 설명한 적이 있는데요. 설명을 하다보니 도저히 감정이입이 안되는 큰 아이. 당췌 저 여자아이가 왜 저러는지,
주인공 남자아이마냥 감성 제로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됩니다.
으헝헝헝. 울고 싶네요. 정말.
다행히 오전에 추가 공부를 시키면서
라고 말해줄 수 있었답니다. 으허허헝....

웃픈 상황이긴 하지만...
어쩌면, 아이와의 주말 등산을 통해 가족간의 소통이 늘어나다보니, 아이의 상황을 무겁지 않게 받아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기도 합니다.
집 앞 설렁탕집에서 설렁탕 한 그릇씩을 뚝딱 비우고 돌아오니 아이들 체력도 레벨 업이구요. 중년에 접어든 부부의 건강도 더해집니다.
앗! 또래들이 공부에 열올리고 있는 동안 저희 집 큰 아이만 신나게 놀았으니....체력은 UP이지만 실력은 (씁쓸하지만) DOWN일지도 모르겠네요. 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