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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만 둘

서울둘레길 3코스-불암산

벌레가 우글우글, 바야흐로 곤충 세상이 돌아왔습니다.

by Hello Earth

모처럼 화창한 주말입니다.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주말마다 늘 날씨를 확인하게 되는데요. 바람은 거세지만 모처럼 봄같은 봄날씨라고 하네요.


오늘의 목적지는 서울둘레길 3코스 불암산입니다.

작은 아이가 과학관에 갔을 때 뒷산이 넘넘 예뻐서 찾아보았을 때 불암산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 매주 불암산에 가고 싶다고 노래하곤 했더랬죠.

그렇게 한 달 여.

날씨 탓. 스탬프 탓. 등 온갖 탓을 하다가 드디어 오늘 가게 된 거랍니다.


모처럼 장도 낙낙히 봐두어서 간식으로 준비한 과일도 풍성합니다.

지난 산행 때는 너무 더웠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엔 반팔 티셔츠도 안에 겹쳐 입었습니다. 더우면 벗으려고 말이죠.

그리고 어제 모처럼 쇼핑몰에 가서 등산화도 각각 장만을 했죠. 큰아이만 빼고요.(워낙 익숙한 것만 입고 신는 아이라 새 옷이나 새 신발 사는 것 자체가 극혐인 듯 합니다. 그래서 메리골드마냥 잠옷은 짤뚱하고,

외출복은 다 해져서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고 심지어 댕강 짧아져서 발목 위에서 바지가 끝인데도 다른 옷으로 갈아탈 기미는 보이지 않네요.

여자 에미 눈에는 참 신기합니다.)


지난 코스는 가족공원이 시작점이라 시작부터 유쾌했는데 이번엔 내리자마자 여성 안심 귀갓길 표지판부터 각종 범죄 방지 거울에 신고를 위한 비상벨까지.... 갖가지 팻말들로 범벅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다보니 다소 으스스하긴 합니다.

아이들 앞이라 애써 내색하진 않았지만 관찰하느라 늦어지는 큰 아이를 재촉해 서둘러 숲길로 들어섭니다.

산 입구의 표지판을 확인한 후 재빠르게 음침한 숲길을 따라가자니 여기 저기로 흩어진 산길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어 한 길로 모였다가 다시 흩어집니다.


등산로 입구가 한 곳이 아니라 여기저기로 나 있다보니 보통 때 같으면 등산객들이 지나가는 길로 따라가면 되는 거였는데 여긴 헤매게 되더라구요.

등산객이 내려가는 건지 우리와 같이 둘레길을 가는 건지 아니면 불암산 정상으로 가는 건지 알 수 없었죠.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그래서 더 서울 둘레길이라는 표지판(리본, 화살표, 표지판)이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이 곳 산의 특징인지 아니면 시기가 그러한 건지, 산 초입부터 각종 벌레들이 드글드글 합니다.

다른 때 같으면 곤충이라고 표현했을텐데...

해도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애벌레 천국이더라구요.


발에 밟힐 듯 아슬아슬 여기저기 포진한 발밑 애벌레들은 그나마 양반이구요. 실 한줄기에 몸을 매단 애벌레가 공중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몸 어딘가에서 공격 아닌 공격을 할지 몰라서 절로 긴장이 됩니다.

애벌레들과의 동행은 오늘 등산을 마무리하는 시점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정말이지 등산로 곳곳에 비치된 벤치 위며, 데크 손잡이, 나무줄기, 바닥..게다가 공중에서까지 없는 데가 없을 정도로 다글다글했습니다. 곤충가족인 저희마저 질겁했을 정도니 말 다했죠.

(이런 이유로 곤충이나 벌레를 싫어하는 가족에게 이 시기 산행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겨울에서 봄 초입이면 딱 좋을 것 같네요.)

초반부 십 오분 여를 걷다보면 불암산 전망대가 나옵니다. 꽤 많은 산행객들, 가족 나들이객들이 엘레베이터를 이용해 전망대에 오르고 내립니다.


벌레와 사투를 벌이다가 모처럼 뻥 뚫린 시원한 바위 전경에 모두가 감탄합니다.

이 즈음부터 산길이 갈리는데요. 한 곳은 불암산 정상 한 곳은 둘레길 다른 한곳은 철쭉 동산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처음에 길을 잘못들어 우연히 철쭉 동산으로 들어섰는데요. 확 트인 시야에 철쭉들이 비탈을 따라 늘어선 모습을 보니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하지만 아뿔싸. 이건 둘레길이 아니군...

경로 이탈이라며 계속 울려대는 휴대폰 지도를 따라 다시 서둘러 전망대쪽으로 회귀해서 둘레길에 들어섭니다.


산 정상을 끼고 가는 길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산 능선으로 평탄하게 이어지는 둘레길이다보니 단조로운 산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간혹 계단길이 꽤 가파로웠던 곳도 있었지만 대체로 평이하면서도 단조로웠다고 해야될 것 같아요.


하지만, 둘레길을 다 내려와서 급 반전이 있었으니...

둘레길에서 도로로 이어진 골목 안쪽에 따릉이 네대가 딱!! 있었던 거죠.

세 대도 아니구요. 일반 따릉이 네대도 아니었구요.

새싹 따릉이 한 대와 일반 따릉이 세 대 말이죠.

마치 저희 가족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듯 말이죠!!

마침 5월부터인가 가족권이라는 게 생겼거든요.

혹시 몰라 바로 아이들 정보를 등록해두었는데 말이에요.


둘레길 골목 안 쪽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것만 같은 그 곳에 있던 따릉이쪽으로 자석에 이끌린 듯 다가갑니다.

지칠 무렵 나타난 녹슨 따릉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던 거죠.


초딩 작은 아이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혹시나 탈 수 있을까?새싹 따릉이에 태워보니...

우와. 딱 맞는 자전거.


집에 있는 자전거는 스틸이라 무거운데 새싹 따릉이는 스틸 재질보다 가볍다보니 작은 아이도 신이 납니다. 처음 타는 새싹 따릉인데도 금방 적응을 하더라구요.


결정은 길지 않습니다. 바로 결제를 하고 따릉이 탑승.

좁은 골목길에서 자전거길로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인도 위를 자전거 네 대가 달려갑니다.

처음 타는 새싹 자전거인데다가 늘 탄천 같은 한강 자전거길 위주로만 달렸던 작은 아이는 일반 인도로 달리는 게 익숙하지 않아 초반엔 비틀거리기도 했는데요. 다행히 금방 적응해서 안정적으로 달려줍니다.

그렇게 화랑대역을 지나 양원역까지...

한 시간 여 자전거를 달려 지하철에 무사히 탑승합니다.


자전거로도 한 시간이 걸린 이 길을 걸어오려고 했으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는데요.

정말이지 자전거 따릉이는 신의 한 수였습니다.

아이들과의 산행길에 자전거 라이딩이라니...

화랑대역 인근에 있던 옛 기찻길 산책로도 예뻤지만,

따릉이 아니었으면 가족 모두 지쳐서 막바지에 짜증내지 않았을까...싶기도 하거든요.

아이들도 남편도 따릉이 가족권의 위력을 처음으로 느꼈던 하루였네요.

따릉이야 달려라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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