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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만 둘

사춘기 중딩이 여름방학을 만나면....

곤충이 되거나, 뒹굴뒹굴하거나...

by Hello Earth

폭우가 끝나니 폭염입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지만, 에미는 민생 사업(?)으로 더 바쁜 요즘이구요.

아빠는 해외로 가버리고 나니(출장인데... 일주일만 간다더니 벌써 3주를 넘기고 있네요. 흠...)

두 아이들의 일정이 붕~ 떠버립니다.


학원이라고는 방학 한 달만 다니는 수학학원이 끝.

그 마저도 일주일에 세 번 뿐이니 나머지 요일은 일정도 없습니다.


주말이면 그나마 어디든 나갔었는데요.

뒤늦은 장마 때문에 한강 라이딩은 엄두도 못 내구요.

지반이 약해지니 혼자서 뒷산 다녀오라는 말도 못하겠더라구요.

게다가 모처럼 큰 맘먹고 아침 일찍 서둘러 갔던 계곡에선 까치 살모사와 쇠살모사를 발견하고 혼비백산 하기도 했지요.


결국 주말동안 간 곳이라고는 한 시간짜리 배팅센터, 그리고....엄마의 사무실 뿐입니다. 헐.


그래도 틈틈히 비가 그친 밤에는 산책도 나갑니다.

인근 숲(채집 명소가 될 수 있으니 지역명은 비밀로 하겠습니다.)으로 나가는 간단한 산책길


오늘의 목표는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

사슴벌레를 찾아 헤매는 산 위로 올라갈수록 하늘소만 잔뜩, 여기저기 손가락 길이만한 대벌레들도 보이구요.

줄줄 흐르는 땀을 닦고, 뿌얘진 안경을 닦느라 정신없는데 보려는 사슴벌레는 보이질 않습니다.

포기하고 내려가려고 할 즈음.

앗. 산책로 위를 유유히 걸어가는 넌....사슴벌레?

짠!

크기로 보아 넓적사슴벌레는 아닌 것 같고, 애사슴벌레인 것 같습니다만 야생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사슴벌레입니다.


다시 기운을 얻어 조금 더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길.

이면도로변 옆 인도 위를 걷고 있는데 도로를 유유히 걸어가고 있던 시커먼 물체 하나.

헐. 설마 장수풍뎅이?

정말 멋진 뿔(?)을 가진 장수풍뎅이죠.

사진 기술이 꽝이라 매력을 50%도 못 보여주었지만 마트표에 비교할 수 없는 아주 멋진 장풍입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조차 부러움과 신기함으로 멈춰 구경할 수밖에 없는 아주 멋진 아이였죠. 장풍이를 집고 1분이 채 지나지 않을 즈음 차가 지나갔으니 하마터면 로드킬당해 아이를 구하게 된 큰 아이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갑니다. 하하.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밤이었지만 한참을 감격에 젖어 모두가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장난꾸러기 아이에게 잡혀 또다시 생을 달리할까 싶어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만한 나무를 골라 사뿐히 얹어주었죠.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오던 길.

또다시 로드킬 당할 뻔한 하늘소를 구해주려는데 이 배은망덕한 하늘소가 큰 아이 손가락을 꽉 깨물었나 봅니다.


아차! 할 새도 없이 피가 줄줄 흐르는 큰 아이의 손가락.

구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잡지 말아야 할 입을 잡았던 까닭에 바로 응징을 당한 거지요.


아이고야.

줄줄 흐르는 손가락을 수건으로 급히 싸고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옵니다.


교훈 가득했던 숲속 산책길.

그래도 이 경험 덕분에 다음날 조심성을 극도로 발휘한 큰 아이가 계곡에서 뱀을 발견하고 바로 철수하자고 먼저 얘기를 해주었으니...큰 사고를 예방해준 작은 경험에 감사해야 할 지도 모르겠네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님들.

지지고볶는 일상이 계속될 수 있겠지만,

무더운 여름 굳이 자녀의 해야 할 일 하나하나 못 한 것만 끄집어내어 투닥거리기보다

하나라도 해낸 것에 그저 감사하고,

무사히 하루가 흘러감에 감사하며,

모쪼록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한 여름방학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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