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딩이의 슬기로운 방학생활
무더운 여름입니다.
작은 아이는 아직 방학이 아닌데 큰 아이는 이미 방학 일주일을 맞았네요.
방학이든 아니든 작은 아이는 돌봄교실을 가다보니 늘 같은 일상의 연속이구요. 등교시간이 8시 30분이었던 큰 아이는 늦잠시간을 확보하긴 했지만 어김없이 9시면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서고 있지요.
엄마는 회사로 큰 아이는 도서관으로 향하는 일상.
낮시간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저녁시간에 집으로 모이면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작은 아이는 엄마의 말 한 마디 없이도 스스로 계획한 대로 해야 할 일을 하구요.
큰 아이는 도서관에서 수학 숙제나 예습은 스스로 하고 있지만 일단 집에 오고 나면 에미가 얘기해도 먹히지 않으니 그냥 한숨 푹 쉬면서 모르는 척하고 있지요. 뭐랄까요.
사춘기 시기. 수학 문제집 몇 장이라도 스스로 푸는 일상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뿐이니까요.
큰 아이는 계획성이 많지 않은 아이다보니 하기 싫은 건 건너뛰려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예전엔 그게 수학이었는데, 언젠가부터는 영어로 바뀌어 버렸네요.
오히려 수학은 재미있어 하구요.
시험 결과도 꽤 괜찮고 방학 때 잠시 다니는 학원에서도 칭찬도 꽤 받다보니 초등 3학년까지는 문제집 한 권 풀어본 적 없이, 4학년 지난한 설득의 과정을 거쳐 5학년이라는 늦은 시기부터 3학년 문제집 한 장씩으로 시작한 수학공부인데도 중학생인 지금은 제법 잘 해나가고 있답니다.
신기할 정도로 말이죠.
어렸을 땐 국어 쪽에 소질이 있어보이던 아이였는데 암기 위주의 언어 쪽은 확실히 싫어하는 이과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듯합니다.
대표적인 암기과목이라고 여겨지는 역사과목 조차도 암기 한 번 안 하고 시험보는 아이이니 말 다했죠.
(에미 눈에는 암기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냥 공부 안 하는 것 같긴 합니다만......)
호기심의 궤적만을 훑다보니 요즘엔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폭발 수준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부터 원소 이야기, 비행기 속도와 시간 등등.. 과학에서 수학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큰 아이 질문의 수준과 예리함이 극 문과성향 에미로서는 이제는 너무도 버거워 얼버무리기 십상이지요.
(공부... 해야겠네요. 에미가요.)
그래서 남편님의 해외출장 기간,
든든한 육아 동반자인 남편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나 봅니다. 아흑....
난감한 질문에 대한 답은 못 해주지만 에미가 할 수 있는 역할에는 나름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매일 저녁 퇴근하고 나면 파김치 마냥 축 쳐진 상태이지만 저녁에는 야간 라이딩으로 아이들의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하구요.
하긴, 요즘엔 큰 아이가 라이딩보다 러닝을 즐기더라구요.
작은 아이와 에미인 제가 자전거로 달리면 큰 아이는 러닝으로 같은 거리를 주파합니다.
초등 시절 유능하셨던 담임쌤 덕분에 러닝 클럽에서 활동하면서 효율적인 러닝 방법을 익혀서 지금까지 잘 써먹고 있지요.
그래서 며칠 전에는 뜨거운 열기가 식고 다소 선선해진 저녁 시간을 이용해 7킬로미터 정도를 전속력으로 달렸답니다.
아토피가 있어 남들에 비해 땀이 거의 나지 않는 큰 아이 표현에 따르면
랍니다.
얼마나 뛰었는지 땀 없는 큰 아이 몸에서 땀이 비오듯 뚝뚝 떨어지고 옷도 그야말로 푹 젖어버린 거였죠.
저와 작은 아이는 먼저 자전거로 가버리는 바람에 막바지엔 핸드폰도 없고 돈도 없이 맨몸이었던 큰아이가 미처 교통수단을 이용하지도 못해 축 쳐져버린 몸을 이끌고 기어오다시피 했다는데도 말이죠.
그래도 땀을 푹 흘리고 난 후의 희열 때문인지 그 다음날에도 같은 거리를 또 도전하겠다는 큰 아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변곡점을 지나 5 킬로미터 가량을 뛰던 큰 아이가 도저히 못 뛰겠다며 헉헉댑니다.
아무래도 어제 여파로 아직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또 무리를 해서인 듯 한데요.
저와 작은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온 지라 자전거 반납은 해야하고, 아이는 도저히 못 가겠다고 하고.
어쩔 수 없이 두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옆에서 에미가 뛰기로 합니다.
자전거길을 슬로우모션으로 천천히 따라오는 두 아이 옆으로 뛰고 있는 제 모습을 보자니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납니다.
뛰다보니 큰 아이가 느꼈다던 희열이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하구요.
물론 밤 열 시를 넘긴 늦은 시간이라 땀에 절고, 숨이 차서 결국은 막 출장 갔다 귀국한 남편을 호출해 중간에 차로 바꿔 타고 오긴 했는데요.
큰 아이와 번갈아 뛰다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무언가 뜨거운 가족애가 뿜뿜하는 느낌이랄까요. 하하하.
남편은 모르는 우리 셋 만의 추억이 쌓인 것 같은 뿌듯함도 들었답니다.
그 다음날도 또 가자하니 다리가 후덜거려 힘들다는 큰 아이.
웬일로 오늘은 좀 쉬자며 숲으로 가자고 하네요.
(엥? 쉬려고 숲에 가나??)
낮 시간동안은 작은 아이가 연구한 카탄 도시와 기사 보드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큰 아이가 반죽하고 작은 아이가 성형하고, 다시 큰 아이가 후라이팬으로 구워내는 난과 커리로 저녁을 만들어 먹고는 선선한 저녁 시간을 이용해 숲으로 향합니다.
(밤인데도 30도가 넘어 바람이 불지 않으면 땀이 줄줄 나는 습한 날씨였어요.)
오늘은 숲 초반부터 장풍이 암컷들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한 마리,
또 한 마리.
결국 여섯 마리도 넘는 장풍이 암컷과 두 마리의 수컷 장풍이, 로드킬로 반죽어가는 애사슴벌레 수컷을 보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은 어둑한 수풀 속을 지나가는 장풍이 암컷을 작은 아이가 수풀의 미세한 흔들림만으로도 발견해냈을 땐 모두가 찬탄의 눈빛을 보냈는데요.
작은 아이 표현에 의하면
와.
예리하기 그지없는 초2의 관찰력에 모두가 감탄합니다.
어려서부터 자연을 탐험하며 자라나서인지 늘 주변의 미세한 변화까지도 관찰해내는 두 아이의 관찰력이 그저 신기할 뿐입니다.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밟힌 대벌레 시체들.
로드킬당해 뱃속에 품었던 알이 밖으로 튀어나온 안타까운 장풍이 암컷 시체도 눈에 띄었습니다.
요즘 유발 노아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있던 터라 더 미안해지더라구요.
(왜 그런지는 책을 읽으면 아실 듯합니다...)
최대한 곤충들을 밟지 않으려 애쓰며 내려오는 길.
동물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쓰고, 인간에 의해 피해를 입는 동물들을 안타까워하며 살리려 애쓰는 아이들의 마음이 참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그래서 지친 하루지만 꾸역꾸역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밖으로 나오는 거겠지요.
작은 생명 하나도 소중히 하려는 아이들의 고운 마음씨에 감사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