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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13. 2022

보드게임 이야기

가족 화합의 매개, 보드게임

작은 아이는 다섯 살이 되면서 승냥이처럼 형아의 놀잇감을 시시때때로 노리곤 했다. 놀지 않고 방치된 로봇 장난감, 거의 갖고 놀지 않아 새 것 같던 레고 블록들, 방과 후 교실에서 배웠던 골드버그, 도미노 등등...

코로나로 갈 수 있는 곳도 없는데 책에 매달리느라 놀잇감이라곤 전혀 사주지 않는 엄마, 키즈카페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 리 없는 작은 아이는 형아의 놀잇감만이 유일한 낙이었던 것이다. 이모에게서 물려받았지만 큰 아이는 갖고 놀지 않아 방치되었던 몰펀도, 칠교놀이도 소환되고, 드라이버로 조립해야 하는 로봇도, 사다리 게임, 메모리 게임 같은 보드게임도 소환되었다.


시큰둥했던 큰 아이는 작은 아이가 노는 것은 재미있어 보였던 듯하다. 심술 나는 날은 자기 거라며 뺏어서 자신이 놀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나에게 혼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책이 서서히 아이를 변화시킨 것일까, 시들었던 놀잇감에 작은아이가 온기를 한 번 불어넣으면 큰 아이가 이어받아 활활 불태우고, 그게 부러웠던 둘째가 다시 형아가 없을 때 무언가를 만들려고 시도하면 슬쩍 옆에 붙어서는 자기가 더 잘할 수 있다며 가르쳐주기도 했다. 아빠와 작은 아이가 우노 게임이나 원카드 게임을 하고 있으면 슬쩍 붙어서 자기도 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둘째는 져도 결과에 깨끗이 수긍하고 또 하는 아이인데 반해 첫째 아이는 지면 눈물까지 보이며 더 이상 안 하겠다며 씩씩대는 아이인지라 처음에는 같이 하겠다는 말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잘 놀던 둘째와의 놀이마저 깨뜨려버릴까 봐 염려해서였다. 하지만, 엄마가 놀아주지 않을 때마다 혼자 놀던 둘째 옆에 언젠가부터는 같이 하자며 붙더니 이제는 엄마에게는 하자는 얘기 한번 없이 자기들끼리도 신나게 깔깔대며 보드게임을 하게 되었다.


 물론 가끔 기분이 안 좋을 때면 누군가 한 명이 울며 끝나기도 했지만 코로나의 지속으로 같이 놀 사람은 결국 서로밖에 없다는 걸 안 탓일까. 지난번 나의 파업이 무서웠던 것일까. 어느덧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함께 놀이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작은 아이가 보드게임이 가능해지면서 우리는 어딜 가든 원카드와 우노를 꼭 가지고 갔다. 갯벌에 갔을 때 다른 곳에서는 부모가 아이들을 갯벌에 풀어놓고 스마트폰을 보거나, 아예 아이까지 온 가족이 텐트 안에서 각각 스마트폰을 보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여름방학 동안 숙제를 못해서 스마트폰 게임을 못하게 된 아이는 더 이상 게임을 하겠다고 보채지 않았고, 그 시간을 오롯이 가족 보드게임과 책 읽는 시간으로 메꾸어갔다. 큰 아이는 갯벌에서 게를 잡으며 뛰어놀다가도 더운 한낮에는 텐트로 돌아와 간단한 음식을 먹으며 책을 꺼내 들었고 작은 아이는 형아 옆에서 덩달아 책을 읽어달라며 성화였다.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보던 아빠도 이 시간만큼은 기꺼이 아이들과 원카드를 했고, 큰 아이 때문에 가족이 파탄날 것 같다며 늘 투덜거리곤 했던 나도 돌아오는 길에 큰 아이 덕에 오늘도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남편에게 말해주곤 했다.


보드게임, 아주 간단한 규칙과 작은 배려만으로도 가족이 화합할 수 있는 정말 훌륭한 매개체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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