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노인은 아마 치매에 걸렸을 거야

by Plum



아빠의 투병기간 중 가장 고생했던 건 역시나 엄마였다. 실은 엄마와 아빠의 결혼생활 전부를 통틀어 아빠를 가장 오래 보살피고 견뎌낸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엄마가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아빠를 외할아버지에게 보여줬을 때 외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단다.


야야, 순아
저 남자 병 있다.


​​


서른 남짓의 아빠는 이미 약한 사람이었다. 어디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게 원래도 몸이 약하게 태어났기에 그놈의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받지 말고를 잘했어야 하는 사람인데 그럴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엄마는 결혼생활 내내 아빠를 돌보느라 아빠 한정 준의사(準醫師)였다. 신혼부터 위염으로 시작해 위궤양까지 갔던 아빠의 위를 몇 년간 정상인의 범주에 들 수 있도록 간호했고 주기적으로 몸에 좋다는 보양식을 만들고 잦은 근육통을 호소하기에 안마에 부항까지 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빠가 쓰는 발진 연고과 매일 입는 속옷까지 엄마의 손이 안 닿는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태생이 꼼꼼하지 않아 집안일을 하는 내내 아빠의 잔소리를 들었다. 많은 것들을 아빠의 뜻에 따랐다.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가정이었다. 살면서 생긴 일들이야 백번 양보해 너무나 많은 이해관계라고 쳐도 나는 외할아버지의 말이 꽤나 놀라웠다. 겉보기에 멀쩡한 사람을 얼굴만 보고도 건강하지 않은 것을 알아보는 것이 연륜이라는 게 신기했고 그럼에도 허락을 한 것에 의아함이 들었다. 엄마에게 다시 물었다. 한눈에 보고 아빠가 아픈 사람인 걸 알았으면서 외할아버지는 왜 결혼을 허락했냐고 고생할 딸이 걱정되지 않았냐고



“ 지 짝은 지가 알아보는 거지. 자기가 이미 선택했는데 말린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 “


​​


이 한 문장으로 엄마가 살아온 환경과 엄마가 나에게 만들어 주었던 환경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는 “안돼”라는 말을 듣고 자라지 않았고 어린 엄마가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두고 친구들과 놀고 있어도 잔소리 없이 같이 놀아주는 아버지를 두었다. 겨울이 되면 아버지가 떠주는 스웨터를 입고 자랐다. 엄마의 엄마는 조금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는 고등학교 때부터 독립적인 생활을 했다. 후로 서울살이를 홀로 시작하며 독립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엄마는 태생이 밝고 낙천적인 사람이고 조금은 투박하다. 세심하다 차분하다 차곡차곡 이런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고 낙천적이다 활달하다 덤벙댄다 라는 단어와 더 어울린다. 사람을 만나야 에너지를 얻는 스타일이고 누군가의 말에 쉽게 동의한다. 이런 특징들은 정확히 아빠와 반대된다. 잘해도 못해도 타박을 듣는다는 소리다. 13살의 나는 부부싸움 후 식탁에 앉아있는 엄마의 앞에 앉아 그냥 제발 이혼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내 친구 엄마들은 다들 혼자 애 키우고 잘만 산다고 엄마는 울면서 너희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했고 나는 화를 내면서 나 때문이면 날 위해서 그러라고 했다.


​​

20대 후반이 되어도 내 생각은 여전했다. 다른 점이라면 13살의 나는 엄마를 안쓰러워했고 29살의 나는 둘 다 안쓰러워했다. 비율을 따지자면 여전히 엄마 쪽으로 기울었지만 말이다. 대체 이렇게 안 맞는 두 사람을 왜 인연이랍시고 붙여놓은 건지 월하노인이 누군가의 발목을 헷갈려 붉은 실을 잘못 묶었다고 생각했다.


​​




가난한 두 사람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만나 기를 쓰고 애를 써서 가정을 만들고 작은 집을 샀다. 낙천적인 아들과 예민한 딸을 낳았다. 그는 쉬는 날도 없이 일을 했고 그녀는 모든 집안일과 일을 병행했다. 최선을 다해서 돈을 벌어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켰다. 그들이 살면서 비행기를 타본 경험은 다섯 번이 채 안되고 그중 비행기가 유일하게 국경을 넘었던 건 중국을 갔을 때뿐이다. 그렇게 34년간의 결혼생활을 했고 허약했던 남편은 뇌종양에 걸려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생이었지만 그녀가 없었다면 그의 명은 훨씬 전에 마침표를 찍었을것이다.



그가 투병했던 1년 8개월 동안 운전을 못하는 그녀는 자가용도 없이 오른 다리가 불편해진 그를 데리고 병원 치료를 다녔고 복잡한 항암치료들을 헷갈리지 않기 위해 항상 수첩에 기록했다. 그의 병세가 짙어져 요양병원에 입원한 후로는 점심식사 때마다 찾아가 그의 식사를 챙기느라 자신의 끼니는 챙기지 못하고 일을 하러 갔다. 살이 내렸고 머릿결은 푸석해졌다. 항상 미소 지었던 눈이 생기를 잃어갔다. 자주 부르던 콧노래도 더 이상 부르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죽음과 싸우기 위해 한 달간 고열에 시달리며 가죽과 뼈밖에 남지 않은 팔 대신 목에 링거 바늘을 꽂아 생을 이어갈 때 마음이 모질지 못한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이제 더 이상 자신이 견디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의 치열한 싸움이 끝나고 생에서의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 그녀는 그의 귓가에 끝없이 속삭였다. 당신 너무 고생이 많았다고 너무 수고스러운 인생이었노라고 편하게 가시라고 그가 아직은 세상과 연(緣)이 있었던 어느 날, 그녀는 딸에게 말했다.



“나는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야”


​​

예민한 딸은 이런 게 사랑이고 결혼이라면 정말로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첫화보러가기


이전 05화쌍둥이가 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