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가 있으면 좋겠어

by Plum




아빠의 병환이 깊어져만 가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할 때였다. 이제 아빠를 만나러 집이 아닌 요양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 병원 침대에 누워 그 모진 세월을 다 잊은 사람처럼 아이같이 웃기 시작했을 때, 그때 즈음 내 안에 두려움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아빠와의 이별이 언제여도 이상하지 않아 졌다. 모든 감정들에게 물을 주지 않았는데도 두려움만은 스스로 잘도 자라났다. 나를 닮은 잡초 같았다. 두려움을 인식 하자 그의 친구인 외로움도 발아(發芽)를 준비했다. 외로움만은 자라나지 않도록 더 땅속 깊이 즈려밟고 외면했다. 바보 같았다. 두려움은 외로움의 땅에서 자라나는 거였는데, 내 모든 감정의 씨앗은 외로움이란 땅에서 자라나는 것이었는데, 특별히 외로운 그 씨앗만 외면하면 괜찮을 거라고 착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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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가 있으면 좋겠어



어느 날 머릿속에 저절로 쓰인 문장이었다. 쌍둥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나와 같은 버릇을 가진 그런 쌍둥이 말이다. 나는 많은 것을 아빠에게 물려받았다. 홑꺼풀의 눈도, 콧대는 낮고 끝이 높은 코도, 뼈가 두드러지는 체형도, 유연하지 못한 성격도,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도, 환절기가 되면 약한 발진이 생기는 피부도, 뭐가 참 많이도 닮았다. 어릴 때는 그게 싫었다. 자주 미워져 버리는 아빠를 닮은 내가 싫었다. 아빠는 무뚝뚝했고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만 우리는 마주 보았다. 항상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서로 밀어내는 같은 극의 자석 같았다.


말수가 적고 키가 빨리 커버렸던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어른들에게 이상한 '어른 취급'을 받았다. “너는 어른스러운 애니까” “ 딸이 이제 다 컸네” “ 너는 참 책임감이 강하구나” “ 쟤는 왜 이렇게 커?” 사실은 내성적이라 말보다 생각이 많았을 뿐인데 몸이 빨리 자랐을 뿐인데 시키는 것들을 잘했을 뿐인데 외모와 조용한 성격 탓에 ‘어른 같은 아이’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들의 말대로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나는 그 역할을 착실히 수행했다.

어리광을 부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도움을 청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어려움이 생기면 혼자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나는 어른 같은 아이니까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내가 애처럼 구는 모습을 보이면 돌아올 반응이 불편하고 두려웠다. 멋대로 어른을 시켜놓고 애처럼 굴면 “덩치만 컸지 어린애네”하는 식의 말들은 속상하고 무서웠다. 알아서 잘하면 칭찬을 받았다.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니 사실 관심이 더 필요한 아이였는데 그냥 그렇게 자의적 타의적으로 방치된 ‘어른 아이’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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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빠가 나를 낳았을 나이 즈음이 되니 깨닫게 되었다. 아빠도 ‘어른 아이’ 였다는 걸 어쩌면 나보다 더 지독하게 외로웠을 ‘어른 아이’. 말수가 적고 농담을 모르는 아빠가 참 싫었고 아빠의 방어기제가 나에게는 숨 막히는 통제로 느껴졌다. 항상 경직되어 있고 걱정을 화로 표현하는 아빠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닮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마음의 문제가 생겼을 때 입을 다물기보단 입을 여는 연습을 하고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게 이야기하는 법을 연습했다. 자주 웃으려고 노력하고 때론 휘어지는 방법도 알게 됐다. 덕분에 나는 웃는 게 예쁘다는 말을 서른이 다 되어서 듣게 될 수 있었고 친절하다 라는 말도 가끔 듣게 되었다. 너무 곧아 걱정이라는 아빠의 잔소리에 이제 부러지는 법을 모르겠다며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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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하면 변할수록 이상한 일들이 생겼다. 나의 나쁜 점들을 고치기 위해 단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아빠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그가 안쓰러워지기도 했다. ‘아, 이래서 아빠가 그런 말을 했구나’ ‘이래서 그런 행동을 했었네’ ‘아빠가 외로워서 그랬구나’ ‘그때 참 속상했겠다’ 같은 깨달음이 쌓여갈수록 나는 더 외로워졌다. 내가 그를 알게 되었듯 그도 나를 알았을 텐데 그래서 유독 나에게 우려가 담긴 잔소리를 더 했을 텐데, 말을 하지 않아도 같아서 알게 되는 것들을 알아줄 유일한 사람이 이제 곧 세상에서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이제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 두려워졌다. 아빠가 병원에 누워 있는데 남겨질 나를 걱정을 하는 내가 이기적인 것 같아 또 미워졌다.



“ 쌍둥이가 있으면 좋겠어, 엄마한테 하나 낳아달라고 할까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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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친구에게 농담을 한 방울 떨어트려 마음을 이야기했더니 친구는 웃는 듯 아닌 듯 미묘한 표정으로 “ 어휴, 나는 너 한 명도 벅차”라고 대꾸했다. 내가 유일하게 어리광을 부리는 친구다. 응당한 대답이었다. 나도 내가 벅차긴 하다며 친구와 함께 키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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