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처음 아팠을 때
증상이 어땠다고?
어느 날 갑자기 깨질듯한 두통과 울렁거림 그리고 땅이 갑자기 무너지는듯한 기분이 느꼈다. 누우면 더 어지러웠고 그렇다고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만 쥐어뜯으며 최대한 머리를 움직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눕지도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증상이었다. 속이 울렁거려 먹지도 못했고 억지로 먹어도 견디지 못해 게워내고 말았다. 마치 태어나 가장 지독한 숙취를 겪는 것 같았는데 억울하게도 나는 알코올에 취약하기 때문에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한쪽 눈을 찡그리고 인터넷에 검색을 했다. 어느 진료과목의 병원을 가야 할지 몰라 단서를 찾아야 했다. ‘두통’ ‘어지러움’ ‘울렁거림’ ‘바닥이 올라옴’ 등의 키워드를 검색했고 3가지의 진료과목을 용의 선상에 올렸다.
나와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병들은 ‘이석증’ ‘뇌종양’ 혹은 ‘뇌졸중’ 그리고 ‘정신이상’이었다. 병원마다 다니며 검사를 해서 병의 이름을 찾아나가야 했다. 오랜만에 겁이 났다. 그중에는 이석증이 그래도 치료가 용이하고 병의 심각성이 가장 낮아 보여 일단 이비인후과로 갔다. 차라리 이석증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안타깝지만 이석증이 아니었다. 남은 선택지는 뇌 문제와 정신의 문제였다. 둘 다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뇌종양이고 나는 아빠를 닮았다. 이쪽이 가능성이 꽤나 높아 보였고 더 절망적이었다. 정신과를 생각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오래된 우울증 이쪽도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싫은 것 중에 더 싫은 것을 고르는 것 같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혼자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엄마에게 전화했다.
“ 엄마, 아빠 병원 가기 전에 맨 처음에 증상이 어땠다고 했지? 자세히 다시 말해줘 봐. 아,, 음,. 어,, 나도 지금 좀 비슷한 거 같아서..”
증상을 이야기해주며 왜냐고 묻는 엄마에게 나도 그런 것 같다고 작게 이야기했다. 엄마는 아빠의 병을 처음 찾아냈던 병원을 당장 가자고 했다. 검사를 하기도 전에 벌써 미안해졌다. 병원에 도착해 이런저런 검사들을 하고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병명은 ‘메니에르 증후군’ 생전 처음 듣는 단어였다. 너무 생소한 이름에 우습게도 처음 몇 번은 ‘에르메스’라고 웬 명품 브랜드 이름과 헷갈려 말하기도 했다. 신경과에서 병을 찾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일이 맞는 건가 헷갈렸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히 아닌가 싫은 것 중 덜 싫은걸 고른 것도 같았다. 원인은 불명이지만 아주 희귀병도 아니고 완치는 어렵지만 관리하면 좋아질 수 있는 난치병이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생각보다 아주 까다로운 병이긴 했다. 두통과 어지러움도 날 지치게 했는데 초기에 가장 크게 나를 괴롭힌 건 이명이었다. 메니에르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인데 이게 사람 피곤하게 하는데 아주 재능이 있는 증상이었다. 귀안 쪽에 이물감과 찌르는듯한 고통이 함께 동반되었고 높은 주파수의 듣기 싫은 소리가 종일 따라다녔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인 사고는 어려워졌다. 이 병은 너무 외로운 병이었다.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증상들이 있었고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나는 항상 예민했다. 영화관을 가면 영화관 소리가 너무 커서 이어폰을 꽂고 영화를 봤고 언제 쇼크가 올지 몰라 외출이 꺼려졌다. 나만 들리는 소리가 하루 종일 머릿속에 울려 퍼져 하루 종일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작게 틀어놓고 생활했다.
일상을 모조리 빼앗긴 기분이었다. 언제까지 아픈 건지 나는 이제 여행도 갈 수 없는 건지 머리가 아프지 않은 상쾌한 아침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건지 자기혐오에 자주 빠지게 되었다. 침대에 머리를 붙잡고 누워있으면 귓속에 물이 들어간 듯 먹먹하게 아파왔다. 높고 낮은 이명들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혼자 주파수가 고장 난 고래 같았다. 아무리 소리쳐도 아무도 듣지 못해 바다 한가운데 지표도 없이 표류(漂流)했다.
나의 발병은 아빠가 요양병원에 있을 때였다. 나보다 더 아픈 가족이 있으니 나도 아프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가족들은 나의 병 이름을 아버지 장례식 이후에 알았고, 당시 친구들은 처음 듣는 병이 생소해 ‘밥 잘 먹고 약 잘 먹으면 낫는 병’이라고 자기들끼리 위로했다. 아무도 나의 병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는 주파수가 고장 난 고래가 살았고, 나는 마음의 문을 조금 더 닫아 놓고 조용히 소란스럽게 표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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