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현 Jun 10. 2022

내가 책에 밑줄을 긋는 이유

한 번만 읽지 않겠다는 각오

나는 31살의 늦은 나이에 독서의 재미를 알았다. 그 양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냐면 31년 동안 읽었던 책의 양보다 근 1년 간 읽은 책이 2배 이상 많다. 뒤늦게 재미를 느껴서인지 아니면 여태 읽지 않았던 시간이 아까워서인지 앞으로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하루 4시간씩 독서를 하고 있다. 습관이 6개월째 변치 않는 것을 보아하니 평생 이런 삶을 살 것 같다.


최근 삶에서 가장 격하게 느끼는 게 하나 있다. 피곤이라는 것이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침잠이 많은 편인데, 그래서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아침에 한두 시간 더 자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나 지났지만 좀처럼 아침마다 나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쉬워지지가 않는다. 내가 이때 잠을 이기는 최선의 전략이 하나 있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책 읽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보상이다.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면 왜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지 않는 걸까? 아침에 일어나, 굳이 커피를 참고 운동을 하고 점심을 먹은 뒤에서야 커피를 마셨을 때 그 쾌감이 훨씬 더 짜릿하기 때문이다. 이 쾌감은 쉽게 나를 침대에서 일으킨다.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운동을 못할 것이고 이후 커피를 마셔도 그만한 쾌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이란 참 신기하다. 아니 뇌가 신기한 것인가? 뭐 그것도 하나의 몸이니까.


서두가 길었다.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한 것은 이 메커니즘이 책에 밑줄을 긋는 가장 주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31살의 늦은 나이에 책 읽기에 재미를 느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밑줄 긋기다. 세상에 내가 모르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 삶의 질을 높이는 풍부한 이야기들이 도처에 널렸다. 책 속에는 온전히 내 것이 되었으면 하는 소중한 지식이 들어있다. 무수한 인간의 정수가 담긴 책들이 있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또 다른 인간이 그의 인생에 걸쳐 그 정수를 토대로 다시 쌓은 그만의 정수가 담겨있다. 절대 한 번만 읽어선 내 것이 될 수 없는 그러한 정수들이. 나는 밑줄을 그으며 언젠간 반드시 내 것이 되었으면 하고 표시를 해둔다. 마치 보물지도를 만드는 것처럼. 그 순수한 재미가 나를 매일 독서대 앞에 앉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나는 책을 그냥 눈으로 읽지 않고 꼭 밑줄을 그으며 읽는다. 그 밑줄에는 절대 한 번만 읽지 않겠다는 각오가 담겨있다.

작가의 이전글 눈치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