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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Feb 28. 2023

집을 통해 그들을 관찰하는 법

타지에 와서 살기 위해서, 아니 어느 곳에서든 살기 위해서 우리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의. 식. 주이다.  이 중 지난번에 도착하자마자 어려움을 겪었던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다룰 것이고, 오늘은 “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2021년 여름. 파리에서 우리의 신혼을 1년 살게 될 집은 인터넷으로 보고 고르게 되었다. 신랑의 의견은 집을 구하지 않고 가게 되면, 도착해서 집을 알아보는 데에만 한 달 이상 소요하게 되고, 파리에서 외국인들이 집을 구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그 고생을 하지 않으려면 한국에서 미리 외국인 대상의 agency를 통해 구해야 좋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나는 해외살이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던 터라, 신랑의 의견을 받아들여 인터넷으로 사진을 받아 보고 집을 골랐다. 여행으로도 가본 적 없던 도시였던 파리에 대한 두려움이 있던 나는 치안이 비교적 좋고, 부자 동네라고 하는 파리 5,6,7 구 (파리는 숫자로 18개의 구를 가운데서부터 달팽이 모양으로 나눈다) 중에 집을 고르기로 했다.


집을 고를 당시에만 해도 5,6,7 구에 살지 않으면 퍽치기라도 당할 줄 알았던 겁 많던 나였다. 하지만 실상 한인마트나 한식당은 15구에 많이 위치해 있고,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15 구고, 다른 구에 간다고 해서 퍽치기를 당하는 치안이 안 좋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나의 글을 보고 파리의 삶을 꿈꾸는 분들은 굳이 파리 5,6,7 구를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꼭 남기고 싶다. 하지만 회원 카드, 은행 계좌 등을 만들 때 7구에 거주한다고 하면 꽤나 반색하며, “너 7구에 살아?”라고 말하며 친절했던 파리 사람들의 반응에 1년간의 작은 월세방이었지만 조금은 동네로 인해 내 작은 허영심을 채워주기도 했었다.


파리에 도착했던 첫날. 한인택시 사장님이 7구에 산다고 하니, 아주 부자 동네에 좋은 곳에서 시작을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셨던 터라 꽤나 기대하며 도착했는데, 나는 아직도 그날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오래된 작은 중정이 있는 아파트였는데 처음에는 정말 귀곡산장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끼가 있는 작은 수돗가에 큰 나무 한그루를 넘어 안쪽에 1층 문을 열고 들어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작은 4층 계단을 올라가서야 우리 집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낑낑대며 30킬로의 이민가방을 들고 오르내리던 신랑은 첫날부터 병이 날듯 했다. 월 200만 원이 넘는 비싼 월세 탓에 난 파리의 청담동을 꿈꿨는데… 10여 평 남짓 되는 낡은 마룻바닥과 오래된 건물의 샷시까지.. 지금은 신혼의 추억이 가득 담겨 아름답게 미화된 곳이지만 도착 첫날 파리 신혼집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3년을 살집이니깐 꼭 직접 보고 고르기로 했다.  


신발을 사고 싶으면 남이 신은 신발은 무엇인가, 돌아다닐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신발을 신었나 관찰하는 것처럼, 나는 벨기에의 집에 대해 관찰하기 시작했다. 벨기에의 집들은 파리의 집들과는 정말 다른 느낌이다. 불과 기차를 타고는 파리에서 브뤼셀까지 1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지만 파리와 브뤼셀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그것은 아마도 건물들이 주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


파리의 특징이라면 오스만 양식의 파란 지붕에 하얀 건물이다. 그리고 파리 사람들이 선호하는 부자 동네는 이런 오스만 양식의 집이다. 나폴레옹 3세는 1800년대 오스만의 도시정비를 통해 파리를 지금과 같이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파리 사람들은 오스만 양식의 오래된 건물 외관을 선호한다. 그리고 이 오래된 건물을 잘 손보고 유지해서 내부 인테리어를 모던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파리 5,6,7 구에 있는 집들은 파란색 지붕에 하얀색 건물의 오스만 양식의 건물들이 예쁜 집으로 선호된다.


그런데 벨기에의 건물들은 모양이 많이 제각각이다. 창문틀의 철로 된 데코부터 해서, 건물의 벽돌색도 하나로 된 것이 아니라 주황색 하얀색 알록달록 하기도 하고, 지붕의 색도 정말 다양하다. 워낙 1년간의 파리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있던 터라, 아직은 벨기에의 이런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예뻐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파리의 아름다움을 그리워 하지만, 또 벨기에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집을 다양하게 지을까 싶기도 했다. 좀 더 살면서 관찰해 봐야겠지만, 사실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벨기에 사람들의 외향에서도 알록달록하고 다양한 느낌이 묻어난다. 톤앤톤을 즐겨 입는 파리 사람들보다는 좀 더 알록달록한 느낌의 옷차림이 느껴지기도 하고, 좀 더 화려한 스타일의 메이크업인 사람들도 가끔 발견한다. 아마도 다양성이 중시되는 네덜란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까? 그리고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3개 국과 맞닿아 있는 지형적인 이유인 탓도 있을 듯하다.


그래서 지난주 내가 임장(?)을 다녀온 벨기에 3곳의 집들도 모두 다른 스타일의 집이었다. 하나는 굉장히 모던한 외관의 3층 건물의 아파트 중 1층이었고, 새로 준공한 건물이라 내부도 매우 깔끔했다. 1층인 덕에 앞에 작은 마당도 있었는데 자연과 함께 하는 벨기에인 탓일까, 옆집과 함께 잔디를 공유하는 느낌에 작은 풀들로 각 집마다의 경계가 되어 있었다. 두 번째는 외곽의 리조트 같은 형태의 아파트 단지였는데 나무로 된 외관의 집에 내부는 역시 깔끔하고 모던했다. 세 번째는 좀 더 시내 쪽에 위치해 있었고 첫 번째 집처럼 발코니들이 맞닿아 있는 느낌의 집이었다. 파리에서의 내부가 리노베이트 되지 않은 집에 꽤나 큰 충격이 있던 우리는 3 집의 내부 컨디션에는 모두 만족했으나, 교통적인 것, 동네 치안 상태 등이 조금 아쉽다고 느껴 좀 더 찾아보기로 했다. 아직은 집이 결정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살집을 결정한다는 것은 꽤나 중요한 문제인 듯하다.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내 삶의 방식이 결정될 수 있는 문제이기에 그들이 사는 집을 통해 그들이 사는 방식을 관찰하는 건 꽤나 재밌는 일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느낌이 있는 주제라 어찌 나의 생각과 느낌들이 잘 전달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주 벨기에 임장기를 이렇게 정리해 보려 한다. 그립다. 예쁜 파리가.


하지만 내가 살아가야 할 이곳 벨기에에서의 아름다움을 찾아보려 한다. 그나마 조금 찾은 것은 지난 주말 차 타고 지나가며 발견한 나무가 쫙 펼쳐진 길 가운데를 지나간 것인데,  자연과 함께하는 벨기에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자연이 아름다운, 자연을 좀 더 즐길 수 있는, 벨기에의 자연을 느끼는 외곽에 집을 구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자차가 없는 뚜벅이 인생이라 가능할는지 모르겠다.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좋은 선택을 통해 내 3년간의 벨기에에서의 삶을 좀 더 풍성히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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