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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Feb 24. 2023

몸에 힘 빼기

신랑은 출근하고, 벨기에에서 맞는 나만의 고요한 아침 시간.

빵 두쪽을 버터에 굽고, 계란 프라이 하나 얹어 주스와 함께 먹는다.

너무나도 이국적인 유럽의 창밖 풍경과 함께, 한국에서는 가져볼 수가 없었던 나에게는 조금 과분한 여유로운 시간을 누려본다.


사실 여유라고 한다면 모두가 긍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올 테지만, 나에게는 익숙지 않은 과분한 시간이다.


이제 벨기에에 들어온 지 딱 1주일째다.

나오기 전 마지막까지 출근도 힘들게 하고, 이삿짐도 보내고, 조금은 미뤄두었던 소중한 사람들과의 약속까지..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느냐고 힘들었으니 조금은 쉬어도 좋을 만 한데,

난 이 할 일 없는 시간이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과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둬도 되는지… 하는 초조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요 며칠 나의 삶을 되돌아보니 난 경주마처럼 달려왔다.

항상 내 마음속에 목표가 있었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그에 수반되는 무언가의 활동들을 해왔다.

그 목표가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은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에도 꼬박 도시락을 싸서 동네 구립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고,

부자 남자를 만나려면 강남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서울의 북동쪽 끝 노원구에서 서초동에 있는 예술의 전당까지 주말마다 인문학 수업을 들으려도 다녔다.

취미 생활도 꾸준히 해왔는데 재테크 공부며, 와인, 차(tea), 피아노 등등 무언가를 배우고 몰두해 왔다.

심지어 취미를 하는 것에도 결과물이 없으니 헛헛함을 느껴, 피아노 연주회에 나가는 등, 퇴근 후 매일 2시간씩 연습하고 외우는 고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무언가 목표를 정하고 달려 나가는 인생을 살아왔던 것 같다.


물론 이 모든 과정들을 통해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도 많고, 때론 열정에 비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좌절한 적도 많다.

하지만 목표한 바는 아니지만,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수확하기도 했다.

외로웠던 때 음악과 미술을 접목한 인문학 수업을 들으며, 작품들이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해, 감동에 겨워 눈물을 훔치며

예술에 대한 감상의 평을 넓히게 되었고,

재테크에 능하진 않지만 사람들과 대화할 때 좀 더 많은 영역의 주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와인도 뛰어나진 않지만 종류들에 따른 특성 정도는 조금 알게 되었다.

차(tea)는 혼자 마시는 것을 넘어 소모임도 만들어 많은 회원들과 차 마시는 즐거움을 나누기도 한다.  


적다 보니 참 다채롭기도 한데, 순간순간 하고 싶은 것들에 목표를 세우고 그 어딘가에 꽂혀 있었다.

돌이켜 보니 나는 몰두되어 있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이런 내가 과연 이런 여유로운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을까? 견디는 게 아니라 조금은 즐길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이러한 성격의 나이기에 내 몸은 약간 경직되어 있다.

불룩한 승모근, 어딘가 로켓처럼 돌진하려고 튀어나와 있는 상체, 단단함을 넘어 타이트한 허벅지 근육.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 나의 몸은  경직되어 있구나,  힘쓰고 있구나를 생각하게 한다.

조금은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유연하고 탄력 있는 몸과 마음의 근육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PT 선생님이 하시는 “힘 빼세요!”라는 말이 오히려 어떤 동작을 하는 것 보다도, 참 쉽지 않았는데…

마음과 몸의 힘을 빼고 조금은 쉬어가야 하는 이 시간이 내게는 어려운 숙제이자, 또다시 해내야 할 목표인 듯하다.

갑자기 주어진 이런 과도한 여유의 시간은  괜찮은 건지, 이러다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난 평생 경주마처럼 달려 나가듯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게 나에겐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번을 계기로 좀 더 힘을 주고 빼고를 잘하는 어른으로 거듭나게 될 것인가? 싶기도 하다.


지나온 역사는 후대가 평가하게 된다고 하던데,

미래의 나는 현재의 이 과도한 여유의 시간을 어찌 평가하게 될까?

지금은 한치도 예측할 수 없는 잔잔하고도 미지의 벨기에에서 펼쳐질 나의 삶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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