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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난임 일기

벨기에에서의 2년 되돌아보기

by 지은이

2023년 2월. 나는 이곳, 벨기에에 왔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지난 2년간 우리의 계획과 달리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다.


3년간 이곳에 있을 줄 알았는데, 회사에서 준 동반자 휴직 2년 기간을 모두 소진하고, 돌아오는 곧 3월에는 돌아가야 할 처지이다. 2년간 노력했음에도 아기가 생기지 않자, 나는 시험관 시술을 하러 혼자 한국에 잠시 머물렀다. 주사도 씩씩하게 셀프로 맞고, 엄마 집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며, 푹 요양한다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있었다. 난자 채취 17개. 긍정적인 시그널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에 성공하는 건가? 나는 행복한 결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배아 유전자 검사 모두 실패. 결국 이식도 하지 못했다.



'괜찮아. 쉬면서 좀 더 노력해 보고 회사도 복귀해야지.'

'1년 정도 떨어져 지낼 수도 있지 뭐?'라고 생각했던 씩씩한 마음은 어디로 간 걸까...


갑자기 남은 두 달이라도 신랑과 더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반나절만에 계획했던 것을 모두 바꿨다.

급하게 비행기 표를 끊고, 하루가 꼬박 걸려 벨기에로 돌아왔다.



신랑 얼굴을 보니 너무나도 반가웠다. 두리둥실 곰돌이 같은 내 신랑이 기차역 앞에 기다리는데 너무 좋았다. 세상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래, 이곳이 아직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니 칙칙한 유럽의 겨울날씨마저 아름다웠다.

'그래!!! 이게 유럽이지!'

난 아직 이곳을 떠나 한국에 갈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다시 돌아온 이곳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남은 2개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2개월 후에는 내가 맘 편히 떠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이별이란 건 있는 것일까?' 오만가지 상상을 펼쳐보지만,


내가 이번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정말 사람 인생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사실.

계획해 봤자 필요 없다....


한국에 갈 때까지만 해도, 바로 아기가 잘 안 생긴다 하더라도 쉬면서 병원 다니면서 아기가 생기면 복직도 하고 이런 계획이었는데, 그동안 곰곰이 생각하고 내린 계획이 정말 단 몇 시간 만에 바꿔버릴 수 있는 마음이란 게... 내가 계획한다고 될 일이 아니구나... 싶은 것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2년 전 계획했던 이곳에서의 삶을 되돌아보기!

<벨기에에서의 나의 목표 3가지>

1. 불어나 영어 마스터

2. 골프 100타 이하

3. 한국어 교원 2급 자격증 + 한국어교육학과 학부 졸업


1. 불어 학원은 다니고 있으나... 마스터? 가능할까?라는 생각과 함께 벼락치기로 라도 공부해 보려고, 한국서 DELF B2책과 함께 벨기에로 왔다.. 그래도 이번에 niveau5까지 통과 좋았어!

영어... 그래 얜 과감히 포기. 그냥 둘 중 하나만 하자!

2. 골프... 100 타면 거의 선수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ㅋㅋㅋ 여전히 그냥 명랑골프 중... 골프 옷은 왜 그리 열심히 샀니..... 심지어 올해는 등록도 안 했네?

3. 그나마... 이건 사이버대학을 등록하면 해야 하니깐... 그래도 마지막 학기를 향해 달려가는 중. 그나마 이거 하나 남을 듯하네.


뭐 조금 어그러진 동그라미이지만 세모정도는 그린듯한, 나의 목표들.

남은 두 달 뭐라도 알차게 해 보자!

맘 같아선 3년이었음 다 이뤘을 법한 것들인데,라고 생각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매우 관대한 나 자신.....ㅎㅎㅎㅎ


그냥 적어두면 기록이 되니 끄적여 보았다.

이것도 나중에 보면 내가 이랬었구나 싶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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