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다가오면 시작되는 불안 증후군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어차피 2년간 안 생긴 아기니깐) 아기가 생길 거란 기대는 말고 그냥 즐기다 오자'
였다.
하지만 어찌 그 일 말의 희망을 놓을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한국에서 출발하던 그때의 쿨한 마음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날이 다가올수록 불안이 시작되었다.
생리 예정일 D-day
조금이라도 속옷이 젖은 거 같은 느낌이 들기만 하면 생리가 시작되었나 하고,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했다.
긴장했다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긴장하고 스트레스받았나 보다.
잘 못 먹은 게 없는데 배탈이 났다.
생리예정일 D+1
자다가도 속옷이 젖은 거 같은 느낌이 들면 화장실에 갔다.
아무런 낌새가 없다. 생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스멀스멀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새어 나왔다.
생리예정일 D+2
화장실에 뭐 맡겨놓은 사람처럼 혼자서 집에 있는 동안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을 들락 거렸다.
전혀 낌새가 없다. 하지만 이런 게 뭐 하루이틀째인가?
적어도 지난 1년간 한 두 번 임신의 착각의 늪에 빠진 게 아니다.
지어놓은 태명만 해도 수어개.
'아니야. 괜한 기대 하지 마.'
'아니, 혹시?'
두 개의 마음이 요동쳤다. 차라리 임테기(임신테스트기)를 내일 해보고 이 복잡한 마음을 다 잡자고 생각했다. 집에 있는 임테기를 찾아보지만, 하나도 남은 게 없다. 한국에서 그렇게 많이 공수해 왔었는데, 임테기의 노예는 이미 그를 다 소진해 버렸다.
생리예정일 D+3
아침 6시부터 눈이 떠졌다. '역시나 생리가 시작했겠지?' 하는 마음으로 화장실에 갔다.
전혀 낌새가 없다. 뭐지?
혹시나 하는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오늘 당장 임테기를 사러 가야겠다.
마음을 먹은 순간 한 시간을 뒤척이다 조금 더 잠을 청했다.
그리고 눈을 뜬 아침.
임테기의 노예는 약국을 향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번에 임신이라면 많이 필요하진 않겠지?'
하면서 임테기 3개를 집었다.
생리예정일이 지났으니 아무 때나 해도 되겠지.
혹시나 나도 두줄????
긴장되는 마음으로 테스트를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오늘도 빼박. 한 줄이다.
두줄이 있기나 한 걸까?
매번 생리예정일에 꼭 맞춰 생리하던 나인데,
이게 뭔 일이람. 완전 생리의 노예가 된 4일간의 대장정이었다.
그럼 그렇지.
아니었어. 역시나. 허탈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맘이다.
그냥 이렇게 될 거 커피라도 실컷 마실걸.
1년 동안 입에 대지 않았던 인스턴트 할리스 바닐라 라테를 꺼내서
진하게 한잔 마셔본다.
냄새부터 달콤하구나. 하. 힘든 인생이여. 아니 힘들지도 않아. 사실
허탈해? 이게 허탈한 맘일까
그냥 생리의 노예가 된 나 자신이 싫을 뿐. 좀 쿨해질 순 없니?
1년 정도 떨어져 살 수도 있는 거자나.라고 생각해 보지만, 나는 왜 쿨하지 못한 걸까
쿨하지 못한 내가 싫다.라고 쓰지만
나를 싫어하고 싶지는 않은 이상한 내 마음.
빼박 한 줄로 끝이난 생리 지연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한다.
매번 그랬듯이 오늘 저녁에 찾아오려나 보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