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3편 : 과장님은 이직 후 1년 동안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이전 글) 모니터를 보고 있는 내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2편)
(필자 주: 1편에 등장했던 과장님은 A 과장으로, 본 편에 등장하는 B 과장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3월에 이직을 하고 난 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채용되었던 직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시켰고, 이 문제로 직속 상사인 B 과장에게 2~3차례 면담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게 뭐 그리 큰 문제야?'라는 식의 심드렁한 태도와 '그 업무 나도 하고 싶다'는 대답만 반복하며, 내 면담 요청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도 의사결정권이 없다는 비겁한 소리만 늘어놓았다. 그것을 핑계로 팀장에게 보고하기를 회피하는 게 느껴졌다. 왜냐, 자신이 이 이야기를 팀장에게 전달하는 순간 자신도 피곤해지고, 부하 직원 하나 관리 똑바로 못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팀장에게 잘 보여야 자신도 이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보직이 바뀔 수도 있고 회사에서 지시하는 업무를 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불과 한 달 전 나를 경력직 채용을 할 때, 부동산 투자 업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해놓고, 들어와 보니 그 업무는 당분간 할 생각이 없단다. 성가시게 보고해야 하는 새로운 일(부동산) 최대한 하지 말자는 식으로 나에게 설득을 하는 것이다.
이건 명백한 채용 사기였다. 비유를 하자면, 공무원 사회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는, 상부에 보고하면 일이 커지고 귀찮아질 수 있으니 우리끼리 쉬쉬하고 우리 선에서 마무리 짓자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물 경력이 되기는 싫었다. 그리고 본인도 채용 사기임을 시인하는 듯한 B 과장님의 태도도 너무나 비겁해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이 조직에 살아남기 위해 비겁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그도 이 직장으로 이직을 온 지 이제 갓 1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사기를 당한 기분으로 출근을 하는 나날을 보냈다. 회사 출근 길이 너무도 싫었다. 오전 7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점도 체력적으로 한계였다. 정식 출근시간은 오전 7시 30분이고 팀장은 7시까지 출근을 하는데, 자신보다 늦게 오는 직원에 대해서는 기억해뒀다가 두고두고 괴롭혔다. 지옥 같은 출근길과 업무 시간 내내 고통스러운 그 심정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하루는 오후쯤 되었을 때 B 과장님이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1층으로 내려가 근처 카페에서 차 한 잔 하게 되었다. 나에게 괜찮냐며, 형식적인 위로를 건넸다. 안 하느니만도 못한 형식적인 위로. 그러면서 그가 말을 덧붙였다.
"사실, 나(B 과장) 정신과 약 먹고 있다. 이직 첫 달 때부터 지금까지 1년 동안."
적잖이 놀랐다. 그가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회사 근처 정신과를 추천해주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듣고 나니, B 과장이 측은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역시 팀장으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현재도 받고 있고, 그 팀장과 한 팀에 있는 한 계속 약을 복용할 것이다. 그런데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오는 곳이지, 돈 벌기 위해서 정신과 약까지 복용해야 하는 삶을 나는 원치 않았다.
자리로 돌아와 오후 4시가 되었다. 퇴근을 1시간 여 앞두고, 팀장에게 직접 면담 요청을 하기로 결심했다. 계속 질질 끌면서 고민만 하면, 나만 스트레스 쌓여 정신병 걸릴 것 같았고 차일피일 미룰 문제가 아니었다. 여태 충분히 고민했다.
시계는 오후 4시 20분을 가리켰다. 10분 간의 깊은 사색과 고민을 마치고, 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팀장 자리로 향했다.
"팀장님, 면담 요청드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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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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