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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Nov 18. 2022

어른을 위로하는 프리다의 여름일기

<프리다의 그해  여름> 리뷰



  카를라 시몬이 연출한 <프리다의 그해 여름>은 최근 상영된 <알카라스의 여름>의 밑그림과 같다. 스페인의 남부 카탈루나는 작열하는 태양빛에 빛나는 여름을 언급하지 않고는 설명 할 수 없다. 끝간데 없이 광활한 땅에서 자라는 푸르른 올리브 나무와 농익어 가는 과실나무들의  생명력과 느긋하게 오수를 즐기는 시에스타와 시끌거리는 사람들의 유괘한 웃음소리들 그리고 아무리 허름해 보이는 작은 식당에 들러도 깊은 토마토 풍미를 풍기던 스파게티의 맛은 지금도 혀끝에 감돈다.     


  그럼에도 세상에 완벽한 천국이 없듯이 그곳에도 죽음을 이해할 수 없는 6살 소녀의 상실과 슬픔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매력은 때묻지 않는 동심을 넘어 엄마의 죽음과 새로운 가족 안으로 들어가기 등 어느 하나도 쉽지 않은 아이의 혼란한 심상을 그려내는 배우들의 표정과 행동들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90년대 초 스페인은 에이즈로 2만여 명이 사망하고 30 퍼센트가 아이들에게 감염되어 유럽에서도 가장 에이즈의 피해가 컸다. 영화에서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언급되지만 프리다(라이아 아르티가스)의 엄마도 에이즈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자칫 연민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이 영화가 반짝이는 희망으로 남는 것은 영화적 서사와 더블어 사랑스러운 케미를 보여주며 실제 인물 자체로 빙의된 듯 빼어났던 어린 아역들의 연기이었다.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었던 만큼 무엇보다 현실적 이입이 중요했음은 능히 짐작이 되지만 아직 글자조차 익히지 못한 이 어린 배우들은 막상 촬영장에 들어서자 즉흥적인 대사와 행동으로 스텝들이 읊어주며 입력시켜 준 대사를 훌쩍 뛰어 넘어 아이들만의 세계를 눈부시게 그려 내었다.


  1993년 여름, 엄마를 잃은 프리다는 할머니와 이모와 지냈던 바르셀로나를 떠나 시골의 외삼촌집으로 가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골에서 자그마한 카페를 경영하는 외삼촌 에스테베(데이비드 베르다거)와 외숙모 마르가(브루나 쿠시)는 프리다를 따뜻하게 맞아주지만 프리다는 자꾸 서로 어긋나는 마음과 그 때문에  미운 오리 새끼가 되는 것 같아 힘이 든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귀여운 사촌 여동생 아나(파울라 로블레스)이다. 아나하고 춤도 추고 엄마와 딸의 역할 놀이를 하고 햇빛 찬란한 마당을 뛰노는 여름이 즐겁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왠지 외삼촌 부부가 아나만 예뻐하는 거 같아 자꾸 심술을 부리고 싶다. 차라리 아나가 없었으면 할 때도 있지만 그럴 일은 없으니 내가 여기를 떠나야 할 것 같아 늘 가족의 언저리를 돌기만 하는 슬픈 프리다이다.


  사실 프리다도 외삼촌과 외숙모가 좋다. 그러나 사랑받고 싶지만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외삼촌 가족 사이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아이가 필요한 건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익숙해 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일 것이다. 다들 쉬쉬하지만 프라다는 또래 친구들이 그리고 어른들이 자기를 경계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뭔가 아주 나쁜 병이 엄마를 떠나게 했음을... 그러나 숙모는 언제나 내 편이다. 엄마를 잃은 아이를 보듬키는 커녕 마음의 상처를 주는 그들에게 화를 내고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피가 흐르는 프리다의 무릎을 소독을 해주고 반창고를 붙여주는 사람도 그리고 몇 번의 피검사를 위해 병원에 나를 데리고 가는 사람도 외숙모이다. 결국 가려움으로 긁어 벌겋게 된 팔은 에이즈로 인한 것이 아니라 외숙모집의 고양이 털 알레르기 였다. 병원을 나온 후 내가 빨던 2개의 아이스바 중 하나를 숙모가 덥쩍 빼앗아 먹는 장면은 안도감과 함께 프리다와 외숙모가 진짜 엄마와 딸로 서로의 마음안으로 들어가는 감동적 장면이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듯 하나의 해결이 만사 고민의 끝이 아니며 또 다른 문제가 프리다의 마음을 흔든다. 자꾸 나만 외톨이인 것 같아 숲속에 놓여진 작은 성모 마리아상에게 가서 엄마에게 내 마음을 전해달라고 하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외숙모에게 괜시리 자기의 앞머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정하지만 외숙모가 곱게 빗어주는 손길도 싫고 건네준 머리빗도 미워 자동차 밖으로 휘익 던져버린다. 할머니가 사준 파란 잠옷은 아나의 분홍색 잠옷이 더 이쁜 거 같아 일부러 파란 잠옷에 우유잔을 엎어 버리고 스스로 맬 수 있는 운동화 끈을 못매는 척 어리광을 부리지만 외숙모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한다. 모처럼만에 드디어 나의 진가를 발휘할 때가 왔구나 싶은 외숙모의 심부름도 자폭이 되어버렸다. 외숙모가 뽑아 오라고 시켜 뽑아온 양상추는 양배추란다. 그곳에서 자란 아나가 냉큼 양상추를 뽑아 오지만 빼앗아 외숙모에게 내가 뽑은 것이라고 거짓말도 한다. 숲속으로 놀러 간 어느 날은 숲 속에 아나를 두고 돌아오지만 프리다의 눈에 들어온 건 숲에서 떨어져 한 팔에 깁스를 한 채 외숙모의 품에 안겨 온 아나이다. 어는 날은 수영을 못하는 아나가 언니를 흉내 내려다 물에 빠지자 놀라 딸을 건져낸 외삼촌이 아이를 죽일 뻔 했다고 프리다에게 화를 낸다.  사실 그럴 맘이 아니었는데... 어쩌면 나에게 그런 마음이 있었을 지도 모르고...종잡을 수 없는 마음과 미안함이 뒤섞인 프리다의 머쓱한 표정이 딱하게만 보인다.


  그렇지만 이 어린아이의 마음안에 서서히 들어와 있는 외숙모가 모를 리 없다. 다정하고 사려 깊은 외숙모에게 미안함과 사과의 뜻을 담은 장미꽃을 꺽어 작은 단지에 꽂아 가지만 그건 꺽지 않아야 할 남의 꽃이라고 오히려 숙모에게 훈계를 들었다. 이래도 저래도 난 이 집의 애물덩이 인 것 같아 가출을 감행한다. 모두 잠든 밤, 배낭 속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선물한 인형들을 넣고 과일 몇 알도 챙기고 삼촌집을 나설 채비를 할 때 아나가 주방에 나타난다. "어디가?". "집에 갈거아. 여긴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거든". "난 언니 사랑해“.     

 

  아이들도 자기만의 안경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프리다가 외삼촌 부부와 사촌 여동생의 사랑을 모를 리 없지만 낯선 가족의 울타리 가장자리에서 자기의 자리를 찾지 못해 머뭇거리는 프리다의 표정이 너무도 안스럽다. 굳게 마음을 먹고 외삼촌 집을 나서지만 생각보다 밤 숲길은 어둡고 무섭다. 다시 돌아가서 자기를 찾느라고 경황없는 외삼촌, 외숙모에게 미안하지만 겸연쩍음과 자존심이 솔직함을 누른다. "숲길은 너무 깜깜해. 내일 갈거야" 하고 방으로 들어가 잠 든 척하는 프리다를 숙모가 들어와 곁에 누워 말없이 가슴에 안고 머리에 뽀뽀를 한다. 관객은 프리다의 방황이 외숙모의 품 안에서 끝나가는 것 같은 안도감을 잠든 척하는 프리다의 표정에서 읽는다.   

  

  그토록 힘들었던 프리다의 새 가족 되기가 해피엔딩에 이르렀다. 프리다의 입학 하루 전. 공부를 가르치는 외숙모에게 엄마에 대해 처음으로 묻는다. 엄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엄마가 나에 대해 아무말도 안했는지 묻자 외숙모는 엄마는 널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에 슬프셨다고 대답한다. 엄마도 나를 사랑하셨구나. 이제 나는 미움을 받는 외톨이가 아니라 할머니 말처럼 엄마는 천국에서 그리고 이 예쁜 집에서는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아이라는 생각에 프리다는 그동안의 어색함과 외로움의 그늘을 벗는다. 그런데 외삼촌과 아나와 신나게 몸을 부딪치고 깔깔대며 침대 위에서 뛰고 놀았는데 왜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오는 걸까? 6살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웠던 부모의 빈 자리 그리고 억눌리고 참아온 그동안의 상실감, 외로움, 긴장이 커다란 울음으로 쏟아진다. 슬픔을 토해낸 자리에 사랑받는 6살 아이의 마음이 들어앉는다.      

  슬픈 프리다를 웃게 하고 세상에서 나는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은 프리다를 둘러싼 가족들이었다. 모두들 신나는데 자신만이 외톨이인거 같아 슬펐던  마을 축제가 다시 돌아왔다. 축제의 가면 행렬 앞에서 프리다는 높은 깃발을 신나게 흔들어 대면서 맑은 미소를 날린다. 지켜보고 있는 삼촌의 가족도 기쁨의 미소가 넘친다. 떠나온 바르셀로나의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도 좋지만 파란 나무들과 눈이 부시도록 밝은 햇빛이 빛나는 이 작은 시골과 외삼촌 외숙모 그리고 내 귀여운 동생 아나가 너무 좋다. 가끔 엄마가 그립겠지만 이곳에서 나의 시절은 태양처럼 빛나고 나무들처럼 푸르고 과실들처럼 붉게 영글어 가겠지. 그래서 먼 훗날 어른이 된 프리다(감독 카를로 시몬)가 그 빛나는 시절과 가족을

 <프리다의 그해 여름>에 담아낸다. 내가 설 자리를 찾지  못해 어딘가에서 서성이고 있는 어른들도 가족의 사랑이 있으니 괜찮아질 거라는 프리다의 위로도 함께 화면속에 담긴다.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의 힘은 내가 겪었던 경험의 기억에 비례하는 것이며 그래서  <프리다의 그해 여름>은 아팠던 아이의 치유의  성장기이자 지금 아프고 있는 어른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여름 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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