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chid Oct 12. 2023

길위의  집들: <노매드랜드>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가족도 버리고 황량한 사막이 펼쳐져 있는 네바다주 엠파이어에 들어와 살던 펀(프란시스 맥도먼드)은 불행히도 남편을 병으로 떠나보낸다. 남편이 없는 황량한 집을 지키고 있었지만 2011년 들이닥친 석고 보드 수요의 감소로 회사는 문을 닫고 마을은 우편번호마져 폐지될 정도로 유령마을이 된다. 오갈데 없이 된 펀은 추운 겨울, 짐들을 대충 창고에 넣어두고 밴 한 대를 사서 개조해 노매드 길을 나선다. 우연히 마을 잡화상에서 만난 친구의 딸이 펀에게 ’홈리스‘(homeless)’냐고 묻자 펀은 이렇게 대답한다.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 리스‘(houseless)라고. 비록 움직이는 집이지만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홈‘(home)이지 않을까. 

  낡고 비좁은 밴을 개조해 집을 나서지만 펀은 가까워오는 크리스마스의 캐롤을 흥얼거리며 어둠 속을 운전한다. 밴의 이름은 ’vanguard’(선구자)이다. 비록 주인공의 정신적 성장의 발판이 된다고는 했지만, 현대판 노매드는 미국 자본주의의 결과이다. 이 영화에는 펀 외에도 베트남 전쟁에 참전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사람 또는 퇴직 후 즐기기 위해  평생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산 요트를 마당에 놓고 퇴직 일주일 전 갑자기 죽은 친구를 보고 삶의 회의를 느낀 사람, 가족들과 캠핑카 여행을 계획했으나 갑자기 부모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힐링 여행을 시작한 사람, 금융 대공황으로 인한 곤궁한 삶이 힘들어 자살을 생각했던 사람, 자살한 아들에 대한 아픔을 가진 사람, 시한부 암을 앓고 있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우리의 삶은 ’내일‘로 미루기에는 늘 위태롭다.

  펀이 노매드 길을 떠나서 제일 처음 캠핑카를 멈춘 곳은 ’데저트 로즈‘ 캠핑장이다. ’사막의 장미‘라니... 아마도 척박한 환경이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그곳에 장미를 피우는 마음들을 가졌다는 뜻일까? 그곳 RTR에서 펀은 곧 75세가 되는 스웽키라는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뇌까지 전이된 폐암으로 인해

 남은 시간은 고작 7,8개월. 스웽키는 병원에서 시간 낭비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스웽키는 추억의 장소인 알래스카로 돌아갈 것이며 자신이 죽으면 친구들이 불가에 앉아 돌을 하나씩 던지며 자신을 기억해주면 행복하겠노라고 유언처럼 말한다. ’노매드‘의 삶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다.

 길 위의 긴 방랑 끝에 펀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 귀환은 정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자유로운 펀으로 다시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이다. 이별의 의식처럼 과거의 흔적을 모두 둘러본 펀은 진짜 자유로운 노매드가 되어 자신의 집 뒷마당을 나와 천천히 넓고 넓은 사막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영화는 세상을 떠도는 그들에게 인사를 자막에 남긴다. ”떠난이들을 기억하며“,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Dedicated to the ones who had to depart. See you down the road). 집을 떠나 집을 얻는 역설적 방랑의 길에서 만난 삶과 죽음들이 펀을 남편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기억하는 한 남편은 길 위의 집에서 함께 하는 것이므로....

이전 25화  그리움을 담은 밥의 풍경화: <밥정(밥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