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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Oct 06. 2021

"진실은 아마도 그 사이에 있겠지"

영화 <인 디 아일>(In The Aisles) 리뷰


왈츠처럼 춤추는 진실

  <인 디 아일>은 독일 통일 이후가 배경이다. 영화는 축제였던 통일의 그늘에서 서성이고 있는 외로운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렇지만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치유가 어디에 있을까를 찾는다. 비록 그 치유가 확실한 것이 아니라 서로 움직이는 ‘통로’들 사이에서 잠시 나누는 위로처럼 사소한 것에서 얻어질지라도 말이다. <인디 아일>(통로에서)는 기혼 여성과의 소박한 사랑, 어깨를 툭 치며 긴장한 신입의 마음에 보내는 동료들의 응원, 선임의 자상한 가르침, 넘쳐나서 쓰레기가 되는 음식들과 물건들로 즐기는 동료들과의 크리스마트 파티 등 그저 소소한 것들이 일상에 힘이 된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 반전은 가장 미덥고 따뜻했던 고참 브루노(피터 쿠츠)의 죽음이 다음을 이어오는 세대에게 살아갈 희망을 남긴다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자 정적과 어둠 속에 잠긴 창고형 대형 마트 매장을 카메라의 시선이 죽 훑는다. 작게 시작한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의 볼륨이 점점 커지면서 매장에 서서히 빛이 들어오고 마침내 힘찬 음악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매장의 활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크리스티안(프란츠 로고스키)은 오늘이 첫 출근날이다. 그리곤 하루의 일이 끝나는 시간 매장 자체 내 방송에선 ”밤의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마트 책임자 위르겐(마티아스 브레너)의 멘트와 함께 브라암스의 ’G선상의 아리아‘가 부드럽게 흘러나온다. 다시 어둠 속에 잠긴 마트, 방금 방송을 내보낸 부츠에선 위르겐이 홀로 어둠 속에 잠겨있다. 부산함이 끝난 후인지라 그의 모습은 더욱 고독해 보인다. <인 디 아일>은 개인의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래도 살아내는 사람들의 일상을 도닥인다.   

    

   일하는 모두의 삶이 일터 왈츠의 선율처럼 경쾌하고  밝을까? 그들의 밤은 브라암스의 음악처럼 편안한 안식의 시간이 될까? 어느 날 크리스티안에게 복잡한 매장의 배열과 정리, 지게차 운전을 가르치던 선임 브루노가 보이지 않는 옆  선반의 나이든 여성 직원과 허물없는 농담을 나누던 중, 선문답처럼 신참 크리스티안에게 이야기한다. “진실은 아마도 그 사이에 있을 것이다”라고. 그들의 삶은 수직과 수평의 공간, 통로와 통로 사이, 아침과 저녁, 과거와 현재, 캔디류 팀과 음료부 팀 사이의 신경전(모두 지게차가 필요하지만 한정된 지게차로 인해 서로 선점권을 주장한다), 일터와 집...사이에서 유영한다. 우리의 삶도 배경만 다를 뿐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어설픈 시작이 있었고 배움과 실수를 거쳐 ’통로‘ 사이를 유연하게 움직이며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운다. 그래서 느리고 담담한 듯하지만 이 영화는 삶의 보편성으로 확장되는 서사가 된다.     


일터의 통로 

  말이 없고 내성적인 성격의 신입 크리스티안은 낯선 환경에 긴장하지만 관록이 있는 선임 브루노가 따뜻하게 크리스티안에게 일을 가르친다. 특히 천정에 닿을 듯 높이 쌓여있는 병이 든 박스를 내리고 올리는 지게차 운전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은 배치받은 주류 담당팀의 필수 조건이다. 배경 음악조차 'easy'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이 장면에서 브루노는 연방 아슬아슬한 실수를 거듭하는 크리스티안을 다독거리면서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또한 브루노는 크리스티안의 손목이나 목 뒤의 문신을 보았음에도 꽤나 고단했을 그의 과거를 짐작하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매장의 책임자 위르겐도 문신이 그저 고객이 보지 않게 가리라는 충고만 할 정도로 선임들은 사려 깊은 마음들을 가졌다

  


  일터는 척박했던 크리스티안의 삶에 생기를 준다. 브루노의 도움과 동료들의 응원에 힘있어 크리스티안은 차츰 지게차 운전도 익숙해지며 친절한 식품부 여성 직원에게는 수십가지 종류의 파스타 이름을 배우기도 하는 성장의 공간이 된다. 더욱이 멀리서 보자마자 한 눈에 반한 캔디 담당팀 마리온(산드라 휠러)으로 인해 그에게 긴장의 연속이기만 했던 일터는 사랑의 공간이 된다. 크리스티안의 마음을 눈치챈 브루노는 마리온의 생일을 넌지시 크리스티안에게 가르쳐주었다. 크리스티안은 유효 기간이 지나면 폐기가 철저한 규칙인 그곳에서 버리는 쵸코파이 하나를 슬쩍 빼내서 그 위에 촛불을 하나를 꽂아 놓고 마리안의 생일을 축하한다. 게다가 그 작은 장소는 직원들의 휴게실인지 그곳에는 렌지, 스푼, 머그잔들, 접시와 그릇, 냄비, 식탁과 이국적 그림, 액자까지있어 이들의 사랑은 여늬 가정의 소박한 커플이 나누는 집안의 풍경이 된다. 각자의 마음안에는 말못한 고통이 있고 집조차 고독한 공간에 불과한 그들이 잠시 웃고 따뜻해지는 휴식의 통로가 되는  일터인 것이다.    

 

  마리온도 크리스티안을 사랑하지만 이미 결혼한 그녀는 자신이 크리스티안과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운 듯 병가를 내고 잠적한다. 사랑의 빛은 순간 절망으로 변하고 자포자기한 크리스티안은 이전 어두웠던 시절에 어울렸던 패거리들이 있는 클럽에 들러 진탕 술을 먹고 규칙이 중요한 일터에 한 시간이나 늦게 출근한다. 그렇지만 그의 심정을 이해하는 듯 위르겐와 브루노는 점잖게 타이르며 그가 다시 자기의 자리에서 일하도록 한다. 한 사람쯤은 예사로 자를 수 있는 사회의 규칙에서 사람을 살리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연륜은 그러한 품위를 갖고 있다.     


  멀어진 사랑에 침울한 채 일을 하던 어느 날, 브루노는 크리스티안을 데리고 생선류의 냉동고가 있는 방에 들어간다. 그곳에는 더러워진 물이 찬 수족관 안에서 수많은 생선들이 부족한 공간과 공기로 인해 바쁘게 입들을 뻐끔거리며 팔릴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브루노는 너른 바다를 유영하는 생선처럼 통일 이전 국영 트럭 회사에서 트럭을 몰며 자유롭게 길을 달리던 동독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그의 지금 처지는 수족관 안의 생선과 다를 바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져 있는듯 하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물건들이 쓰레기통에 처박히듯이 새로운 문화와 발전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유효기간도 그리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는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듯 밝은 불빛과 풍요롭게 진열된 물건들 새로운 사랑의 설레임, 지게차를 운전하게 된 성취감, 이제는 혼자가 아닌 것 같은 동료들과의 생활이 있는 일터의 뒤에는 나이듦과 산업화에 밀려 아날로그적인 평화로움과 넓은 세상을 달리던 자유로움을 잃은 선임의 상실감이 숨어있다. 심지어 그들이 휴식시간에 즐기는 담배를 피우는 공간은 철조망 안이다. 차들이 초속도로 달리고 있는 바깥 세상과 차단된 인간의 모습이다. 브루노를 그나마 위로하는 것은 지켜보고 있는 크리스티안의 성장과 휴식시간에 막간 동료와 두는 체스나 담배이다.     


 크리스티안의 집   

  퇴근 후, 대부분 자신의 차나 자전거로 집으로 돌아가지만 크리스티안은 추운 겨울 밤, 어두운 정류장에 홀로 앉아 쓸쓸하게 버스를 기다린다. 마리안이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집 앞에서 버스를 내리지 않은 채 마냥 타고 가기도 한다. 집에 돌아가 보아야 자신을 기다리는 것은 칙칙하게 어두운 작은 공간뿐이기 때문이다. 설혹 마리온과의 사랑이 계속되더라도 외로움은 마찬가지이다. 일이 끝나면 마리온은 집으로 돌아가야하고 크리스티안은 우연히 주운 마리안의 머리밴드만을 만지작거리며 다음날 매장이 열리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브루노의 집

  어느 날 홀로 버스를 기다리는 크리스티안을 본 브루노는 그를 자신의 집에 데리고 가서 함께 술을 마신다. 브르노의 집은 낡았고 여기저기 술병이 어지러이 쌓인 실내는 집이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술을 마시거나 대충 잠만 자는 공간임이 그대로 드러난다.  브루노의 집을 나와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크리스티안의 건너편으로는 줄지어 대오를 이룬 트럭들이 크리스티안의 방향과는 반대로 고속도로의 밤길을 달린다. 크리스티안의 삶도 브루노를 닮겠지만 단단히 걷는 그의 걸음에는 뭔가는 브루노와는 다르리라는 힘이 느껴진다.


 그런 브루노가 자살한다. 자신의 집에 들렀던 크리스티안에게 잠자는 아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며 아내가 있는 척 하였던 것도 거짓이었음이 브루노가 자살한 이후 밝혀진다. 크리스티안에게 마트일을 가르쳐주던 브루노가 병 박스를 묶었던 단단한 노끈을 “언젠가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챙기던 이유를 이제야 크리스티안은 뼈아프게 깨닫는다. 그와 친하던 일터의 친구도 그가 향수와 외로움에 힘들어 하며 살고 있는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모두가 침통한 가운데  ”사람도 참 말이라도 하지“라고 누군가 말하지만 외로움은 각자의 몫이고 그것을 견디거나 혹은 견디지 못해 삶을 마감하는 것도 각자의 몫이다. 갑작스러운 브루노의 죽음은 크리스티안의 홀로서기를 의미한다.    

  

마리온의 집

 이들의 어두운 집과는 다르게 마리온의 집은 밝은 햇빛과 잘 어울리는 아담한 이층 하얀집이다. 병가를 냈으니 일터에서 볼 수 없는 마리온을 크리스티안이 몰래 찾아온다. 중산층인 마리온의 환경은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고 심지어 안락해 보인다. 그렇지만 마리온은 사람 좋은 브루노조차 ”쓰레기 같은 자식“이라고 욕할 정도로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폭력조차 가하는 남편으로 인해 힘들어 하고 있다. 일터에서 그토록 명랑하던 마리온도 힘든 가정생활을 남몰래 견디고 있었고 자신에게 따뜻함을 건내는 크리스티안을 사랑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크리스티안은 자신이 가져온 작은 꽃다발을 몰래 탁자 위에 놓은 채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나온다.     


브루노가 남긴 통로

  소심하기 그지 없었던 크리스티안이지만  자상한 브루노의 도움과 동료들의 작은 응원으로 지게차 숙련자로 인정받고 브루노의 자리를 대신 이어받아 승진까지 하게 된다. 능숙한 지게차 운전, 동료들과의 교감, 돌아온 마리안과의 사랑 등 브루노가 크리스티안에게 남긴 선물이다. 

     

  

  동료가 ”어쩌겠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하듯이 떠난 사람에 대한 슬픔도 시간이 흐르면 옅어지고 우리의 삶은 일상으로 돌아온다. 마트의 직원들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분주하게 상품 정리를 한다. 그때 마리온이 크리스티안이  능숙하게 운전하고 있는 지게차 한 코너에 올라탄다. 그리고 크리스니안에게 부탁한다. 지게차의  포크를 최대한 매장의 높은 천장끝까지 올려달라고. 브루노가 자신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 하면서. 포크를 최대한 올리자 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포크를 내려달라고  한다. 포크가 내려오면서 벨트와 부딪치며 내는 마찰음이 파도 소리를 닮았다고 브루노가 말했었다고. 크리스티안도 집중해서 천천히 내려오는 포크의 소리를 들으니 정말 ‘쏴아’하는 파도 소리가 들린다. 


  브루노는 견딜 수 없도록 답답한 대형마트의 공간 안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자유를 지게차에서 찾았지만 상상력이 아내조차 잃은 그의 외로움과 소외감을 치유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 마리온이 임시로 일하고 있는 냉동제품류의 창고로 크리스티안을 데리고 갔었다. 단단히 방한복을 챙겨입고 마리안을 도와 냉동식품을 들어내던 크리스티안이 마리안에게 에스키모식의 인사를 가르쳐준다. 코와 코를 맞대는 온기와 미소가 그들에게 번진다. 비록 불안하기는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얼어붙을 듯한 냉기도 녹이는 연금술적인 마법의 힘을 갖는다. 기계와 인간이 함께하며 사랑에 온기를 준다.


통로 사이에서 유영하기

  그렇다고 이 영화가 해피엔드라고 섣불리 안도할 수는 없다. 홀로 자신의 일로 돌아와 병이든 박스를 풀어 정리하고 있던 크리스티안도 남의 눈에 띠지 않게 박스를 묶었던 노끈을 말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는다. 행복이 주는 위로는 순간이며 다시 밀고 들어오는 현실의 벽을 그가 얼마나 극복해 나갈지는 질문으로 남는다. 그나마 크리스티안에게 위안은 마리안과의 사랑과 크리스티안이 일터에서 당당할 수 있도록 브루노가 물려준 지게차의 기술과 자신감, 동료들의 응원이다.    

  


  

  영화의 종반부, 높은 고공에서 카메라가 롱쇼트로 밝은 마트의 통로 사이를 유영하듯 훑는다.  영화가 시작했던 시점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일상은 그렇게 반복의 과정이니까. 사각의 방과 통로 사이를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는 풍경이 한 눈에 잡힌다. 그리고 카메라는 전면에서 지게차를 타고 크리스티안이 일하는 장면을 근접샷으로 잡는다. 브루노가 지게차에 매달았던 낡은 토끼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흐르던 스트라우스의 왈츠 대신 흑인 가수 ’손 하우스‘(Son House)가 부르는 ’grinnin in your face’라는 리듬감이 경쾌한 블루스를 들려준다. 정확한 3박자, 스트라우스의 정통 왈츠를 흑인 블루스의 자유로운 리듬감이 대신하듯이 브루노는 기계적 시스템, 산업화 속에서 질식하지 않는 자유로움이라는 선물을 뒤이어 오는 크리스티안에게 남긴 것이다. 그렇게 브루노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통로가 되었고 ‘진실’은 통로에 선 남은 자들이 찾아 나갈 숙제로 남는다. 진실은 아마도 그 사이에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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