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유튜브를 즐겨보진 않는다. 1년 전까진 앱도 없었고 이후엔 간혹 필요할 때를 위해 앱은 깔아 놓은 정도 였다.
먹방은 요즘 많이들 보나보다 생각했지 찾아 본적은 없었다. 내가 유튜브 먹방에 관심이 생긴 건 A 때문이다.
A는 성실히 일해서 단란한 가정을 이룬 50대 가장이었다. 가족은 그리 넉넉하진 않았지만 화목했고 서로를 위했다. 깡마른 체격이지만 큰 눈 때문에 유순하고 선한 인상인 A는 오랫동안 어깨와 허리가 아팠다고 했다. 담 결린 것으로 여기고 진통제와 파스로 통증을 달래다가 극심한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마주한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자세한 검사가 필요하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난생처음 찾은 큰 병원에는 엄청나게 많고 복잡하며 다양한 검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내시경을 하고 난 후 드디어 결과를 듣는 날이 되었다. 그날 이후 A는 위암 4기 환자가 되었다.
A의 PET-CT 영상을 모니터에 띄우자 전신 뼈 전부가 뚜렷하게 들어났다. 과학실에 있는 인체 뼈 모형을 보는 듯 했다. 깊은 한숨만 나왔다. 대부분의 뼈에 전이가 된 것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어떻게 이 고통을 견뎠을까..
A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뼈 뿐만 아니라 간, 림프절 전이도 있었고 복막 전이*도 있었다.
상태를 설명드리고 항암치료를 시작 했다. 특히 통증이 심한 뼈전이 부분은 방사선치료도 받았다. 다행히 항암치료에 반응이 좋았고 통증도 줄어서 잘 지냈지만 6개월이 지나자 병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약제를 변경하여 치료를 진행했지만 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화가 안되고 가스가 차는 복막전이 증상이 생겼다. 갈수록 음식먹기는 더 힘들어졌다. 결국 구토가 반복되고 거의 먹지 못하게 되어 입원을 하게 되었다.
회진을 가면 A는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죽 반컵을 먹고 다 토했다면서 나를 보며 웃었다. 이 상황에서도 그의 선한 큰 눈에는 나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이 가득했다. 힘들다고 화라도 내고 하소연이라도 했으면 덜 안타까웠을까?
그맘때 였던 것 같다. 병실에 가면 A는 항상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A의 핸드폰엔 부글부글 끓고 있는 곱창 전골이 보인다. 얼큰해 보이는 벌건 국물엔 각종 채소와 탱글탱글한 곱창이 함께 끓고 있다. 그와 함께 영상을 보고 있자니 침이 고인다. 다음날 A의 핸드폰에 돼지고기 두루치기가 돌판 위에 익어가고 있다. 소리까지 맛나다. 그다음 날엔 부대찌개, 그다음 날엔 다시 곱창전골 ...
나는 그렇게 매일 잠깐씩 그와 먹방을 봤다. 먹지 못하는 A는 먹방을 보며 잠깐 현실을 잊을 수 있었을까?
그러던 어느날 A가 먹방을 보지 않았다. 야윈 손은 핸드폰을 들 힘도 없어 보였다. 나를 보는 눈에 생기가 없었다. 평소처럼 싱긋 웃으려는 입꼬리가 떨렸다. 얼마 후 그는 떠났다.
그가 떠난 후, 곱창 전골이 생각나면 유튜브를 본다. 부글부글 끓는 화면을 보며 상상해본다.
A와 마주 앉아, 조금은 어색한 듯 싱긋 웃는 그와 얼큰하고 뜨끈한 국물을 먹고 소주도 한잔하며 공기밥 추가를 외쳐보고 싶다.
*복막이란 복강내 장기를 감싸고 있는 얇은 막이다. 복막 전이란 복막에 전이가 된 것을 뜻하는데 파종성으로 나타난다. 쉽게 말해 씨앗같은 암세포가 씨뿌리듯 배 안에 뿌려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가루가 뿌려져서 증상이 없지만 이 병변들이 커지면 매끈해야 할 장이 거칠거칠해져서 장이 움질일 때마다 턱턱 걸린다. 그러면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되고 잘 안 내려가는 것 같고 배에 가스가 차다가 대변을 보면 괜찮아지는 증상이 반복된다. 그러다 병이 더 진행되면 장과 장이 들러붙어 버린다. 그때는 음식을 먹으면 장이 움직여 보려고 애를 쓰니 배는 아프지만 음식은 내려가지 않고 쌓여 있다가 구토를 하게 되고 가스도 나오지 않아 먹고 배설하는 것이 어려워지게 된다. 또한 암성 복수까지 발생하게 된다. 결국 먹지 못해 서서히 말라 가는 지독한 전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