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inner courage Sep 12. 2023
오전 외래에 예약된 환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지난 주에 상황을 확인하고 조절을 부탁했지만 예약된 일정을 변경하기가 쉽지 않았나보다. 컴퓨터 창에 촘촘히 나열된 이름이 한페이지를 넘어 거의 두페이지이다. 인사만 하더라도 시간내 진료는 불가능했다. 평소에도 오전 외래를 점심시간까지 볼때가 많았는데 오늘은 점심시간을 지나 오후가 되어 끝날 듯 했다.
서둘러 외래 진료를 시작하고 빠르게 보고자 노력했지만 여러가지 일로 인해 진행이 느려졌다. 예기치 못한 합병증이 생기고, 암이 진행되고, 처음 암을 진단받고 온 환자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고 진료 시간은 길어졌다. 이미 점심시간을 한참 넘겨 시계바늘은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쯤 진료실에 들어 온 A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죄송해요. 오늘따라 환자분이 너무 많네요." 죄송한 마음에 먼저 사과를 드렸지만 3시간을 넘게 기다렸기에 화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게 뭐하는 거요? 없던 병도 생기겠소! 도대체 병원이 왜 이모양이야!" 대장암 4기인 A는 수년전부터 치료 중인 오랜 환자인데 연세가 있으신데도 힘든 치료를 잘 버티고 있으며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은 분이다. 약해진 몸으로 딱딱한 의자에 앉아 전광판만 바라보며 기다렸을 것을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지만 나도 아침부터 쉴 틈이 없이 달렸기에 좀 지치고 힘이 빠졌다. 다시 한번 사과를 드리고 항암치료 처방을 하고 남은 환자 진료를 보고 나니 드디어 2시 반쯤 오전 외래가 끝났다.
진이 빠져 잠시 엎드려 있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A환자였다. 배낭에서 부스럭부스럭 뭔가를 꺼내 책상 위에 얹어 놓고는 무심히 뒤돌아 나가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뭐라도 먹고 해야지. 삐쩍 말라가지고." 멍하니 있다가 책상 위를 보니 슈퍼에 파는 달모양 빵이었다. 급하게 문을 열고 벌써 저만치 가버린 A의 뒷통수에 큰소리로 외쳤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잘 먹을께요. 사실 엄청 배고팠어요" 뒤돌아보지도 않고 손만 슬쩍 흔드는 A의 쿨함에 웃음이 났다.
학생때 이후 처음 먹어 본 보름달 빵은 엄청나게 맛있었고 내마음에도 보름달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