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환자

by inner courage

B는 나의 '기적의 환자'이다.

모든 종양내과의사는 저마다 '기적의 환자'가 있다. 기대 수명을 훌쩍 뛰어넘어 장기 생존을 하는,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런 환자가 있다.


위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된 4기 위암 환자의 경우, 열심히 항암치료를 받아도 평균 생존 기간이 1년 남짓이다. 치료를 받지 않고 그대로 지켜 볼 경우에는 대부분 6개월이내에 사망한다. 어떻게든 버텨보려 발버둥쳐도 1년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최근 새로운 약제의 개발로 생존기간은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1년 반을 넘기지 못했다. 물론 그 안에는 2-3년을 버티는 분도 계시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B는 2015년에 속쓰림이 지속되고 가끔씩 음식을 토하곤 해서 근처 병원을 찾았고 내시경 후 위암을 진단받았다.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넘어가는 관문인 유문부에 암이 침투하여 많이 좁아져 있었는데 이 때문에 음식을 많이 먹으면 구토가 반복되었다. 병기 확인을 위해 찍은 CT에는 안타깝게도 림프절과 복막, 폐에 전이가 발견되었다.


B는 무던한 성격에 과묵한 50대 가장이었다. 열심히 회사를 다니던 평범한 가장이 하루 아침에 위암 4기 환자가 된 것이다. "부드럽고 소화 잘 되는 음식으로 조금씩 나눠서 드세요" 라고 말씀드렸지만 유난히 고기를 좋아하던 그는 참지 못하고 가끔씩 고기를 먹었고 그럴 때마다 토하고 후회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던 그가 "어제 오리 고기를 원없이 먹었는데 하나도 안 토했어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항암치료에 반응이 좋았던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그가 웃을 때 온몸으로 웃는 유쾌한 사람인 걸 알게 되었다.


6개월이 지나자 병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고 약제를 바꿔서 1년 5개월을 더 버텼다. 또 다시 병은 커졌다. 많이 먹으면 음식을 토하기 시작했고 가끔은 피를 토하기도 했다. 오랜 항암치료로 몸도 쇠약해졌다. 하지만 그는 긍정적인 사람이었고 새로운 약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급여가 안되는 고가의 약이었지만 다행히 실비보험이 있었고 7개월을 더 버틸 수 있었다.


이제 포기해야 할지를 고민할 무렵, 신약이 나왔다.

그와 둘이서 마주 앉았다. 우리는 오랜세월 함께 했다. 그가 암과 싸울 때 그의 옆엔 내가 있었다. 우리는 이제 눈빛만 보아도 서로를 이해했다.

"새로운 약이 있어요. 면역치료제인데 이제 위암에서도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10프로미만이에요."

" 해봐야지요. 알고 있어요. 덕분에 고기도 많이 먹었고 다시 먹을 수 있으면 좋고 못먹어도 후회는 없어요. 괜찮아요. 너무 걱정마세요. 다 알고 있어요."

어제도 피를 토했던 그가 나를 위로했다.


그렇게 시작한 마지막 전투에서 그는 살아남았다.

이제 그의 병은 CT에서 보이지 않는다. 내시경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이 전투가 끝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폭풍의 전야인지, 이미 승리한 것인지, 긴 휴전 상태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이지만 그는 지금 살아있다.


회사에 복직했던 그는 은퇴 후 농부로 새 삶을 시작했다.

그의 새로운 시작을 마음 속 깊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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