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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물일곱 Dec 20. 2021

미사원, 꽃무덤


적당히 사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영원히   없는 


그녀는 자주 멍을 때렸다. 멍을 때리면 어느새 홍천의 미사원 언덕에 서있곤 했다. 그녀는 그리운 사람을 기다릴 때도, 마음속에 비가 오는 날에도, 스스로 벌을 줄 때도 들르곤 했다.

그녀는 행복이 투명하다고 생각한다. 슬픔은 비에 젖은 마냥 흔적을 뚝뚝 남기고 가는데 행복은 공기처럼 왔다가 연기처럼 기화되곤 했다. 자주 행복을 느끼려면 항상 곤두서야 했고 그렇게 날 선 촉수에는 항상 슬픔부터 걸려 넘어지곤 했다.

그녀는 미사원의 언덕에 발을 붙이고 서있다. 하지만 발을 떼지는 않는다. 조금만 걸으면 나오는 아름다운 정원이 그리 궁금하지 않다. 고개 옆으로 까치발을 들면 창고로 쓰기엔 아까운 예쁜   채와 커다란 놀이터가 있었지만 그것도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  그녀는 누군가만 기다렸다.

언덕 위에는 발목만 나란히 놓여있었다.

오랜만에 언덕에 오면 그녀의 발목은 부서져있었다.  어느 날은 한 번도 깨져본 적이 없듯이 건재했으며, 어느 날은 형체도 없이 낙엽처럼 바스러져있었다. 

발목은 기다림에 대한 대가였다. 타자도 화자도 없이 고요한 언덕에서 그녀는 어떤 발목으로든 꽃무덤까지 걸어갈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양갈래를 한 어린 소녀가 어디선가 깡총하며 나타났다. 넓은 돌비석을 아슬하게 춤을 추며 아가는 그녀를 안내했다.

꽃이 가득한 돌무덤.  고대 신전에   같았다.​

꽃무덤에는 흙이 없었다. 하늘과 땅을 나누고 풍경을 가르는 건 거대한  비석뿐이었다.  

깨끗하고 풍채가 있는 거대한  사이엔 꽃이 지저분하게 가득 피어있었다. 꽃들은 모두 활짝 피었는데 이상하리만큼 무채색에 가까웠다. 유일하게 연한 노란색이 가장 따뜻하게 빛났다.  돌무덤. 꽃무덤. 햇빛이 노란색만 비추었던  같기도 하다.

다시 돌아와 언덕에 서서, 그녀는  하염없이 기다렸다. 기다림의 상대는 항상 바뀌었지만 이름을 붙일  없었다. 이름이 없었으니까. 이름을 붙일  없어서.  함부로 명명할  없었다. 이건 가능성이었고, 불투명이었고, 동시에 외면이자 사랑이었다. 함부로 쳐다볼  없어서 자세히 파헤칠 용기가 안 났던 그 정도의 마음. 사람이었다가, 시간이었다가, 공간이었다가.

너무 많은 것들을 미워한 그녀는 사실 알고 있었다. 너무 많은 것들을 사랑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적당히 사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 그녀는 더 이상 미사원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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