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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드릭 Sep 24. 2021

프롤로그

남들이 보는 나는,

대한민국 스승상 대통령 훈장을 받은 존경받는 선생님이자,

날카로운 지적 매력을 가진 예술가 남편을 가진 아내이자,

학원 한 번 안 가고 학교 공부만으로 아들을 괜찮은 대학을 보낸 엄마이자,

대한민국에 유례없이 사이가 아주 좋은 가족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보는 나는,

쏟아지는 업무와 수업 준비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하루 종일 파도에 휘둘리며 오늘 하루만 살자 다짐하는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교사이자, 

전시 오픈 후 펄펄 끓는 고열과 몸살로 뻗어버린 남편에게서 구멍 난 양말을 벗기면서 72시간 계속 서 있으면 새 양말의 엄지가 뻥 뚫릴 수 있다는 사실과 큐레이터가 막노동보다 고된 일이구나 깨닫는 아내이자, 

게임폐인, 아토피 환자 아들이 대학가겠다고 인문계고 진학을 선언했을 때, 풍전등화처럼 이어질 3년의 고등학교 시절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고심하고 아들의 결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목숨을 건 지극히 평범한 한국 엄마이자,

6년 열애로 결혼했지만, 우리 사랑의 한계를 인정하기에 샤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 결혼처럼 서로 집착하지 않는 관계로 ‘사랑’하는 동안만 부부로서 함께 하기로 묵언의 약속이 되어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핑크 렌즈가 아직은 벗겨지지 않은 생물학적으로 대단히 비정상적인 부부와 태어날 때부터 인격적 존중과 민주적 결정으로 키워 진짜 친구 같은 아들로 이루어진, 이 우주에서 잠시 가족이라는 인연으로 만나서 서로를 세상에 던져진 가여운 존재로 바라보는 가족이다.


처절하게 슬픈 음악, Adagio Albinoni와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밤바다 소리로 마음의 위안을 얻는 치열하게 속이 시끄러운 한 인간일 뿐이다.     

남들은 이런 내 이야기를 많이 궁금해한다.

특히, 대한민국 스승상과 아들 입시에 대해서.     

그 궁금증에 대한 답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다짐했던 나였는데, 바람 불던 날 그녀와 커피가 이 글의 시작이 되었다.

“그날도 이렇게 바람 불었는데. 야자 끝난 수종이 납치해서 동해로 달렸어. 그 밤에 갑자기 함박눈이 날리는 거야. 4월인데. 가까이 보니 벚꽃이었어. 선루프 활짝 열고 날리는 벚꽃을 차 안 가득 안고 달렸었지. 속초로.”     

나에게 저 세상 텐션이 어쩌고 하면서 자신처럼 젊은 선생님들을 위해서 꼭 책으로 내달라고 부탁한 귀염 뽀짝 해숙샘. 고마워요.     

내 이야기가 대한민국의 현재를 사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자책이나 좌절감이 되지 않기를.

보잘것없는 몸부림에 신이 내려주신 작은 은총 정도로 봐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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