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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드릭 Sep 24. 2021

의아한 부부

나를 아는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20년 넘은 부부가 어떻게 저렇게 사이가 좋을 수 있는지. 내 운세에도 부부금슬이 좋아 오행을 일으킬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이 나와서 티 내지 않도록 노력하고 조심하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의아하다.
사이가 안 좋은데 어떻게 계속 부부를 하는지.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개인적 정의와 기대가 다 다르겠지만, 나는 싫으면 하루도 같이 살 수 없다. 어릴 적부터 한국의 결혼과 가족, 친족 간의 남다른 유대가 빚어내는 복잡한 결혼문화가 나와 맞지 않는다 생각하여 독신을 선언했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라면 평생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사람이 나타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기준은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 다른 사람들은 교육 정도, 재산, 직장과 같은 객관적 지표들을 미리 따지고 만남을 시작하는데 우리는 대학 시절 이름 외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만나 서로의 입맛, 패션 스타일, 예술과 영화 취향, 운동, 가치관을 나누면서 서로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밤새워 초상화를 그려주고, 스케치를 다니고, 홍대에서 경희대까지 매일 저녁 바려다주고, 히드로 공항 출구 게이트 가장 높은 곳에서 손 흔들어 맞이해주고, 뱃속의 아들 발바닥을 간지럽히고, 탯줄을 자르면서 뽀뽀해주었던 추억들이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삶의 계단마다 서로에 대한 진실함, 애틋함을 더 돈독하게 했다.


아들이 4살 때 크게 싸운 적이 있다.

우리 둘 다 너무 화가 난 상태였는데 내가 먼저 옷을 걸치고 나가버렸다. 어딘가 가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는데 너무 졸려서 주차장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30분쯤 지났을까? ‘설마, 원석이 혼자 있는 건 아니겠지?’ 걱정이 스쳐 집으로 달려들어 갔는데 온 집안 여기저기에 원석이 옷이 널려져 있고 아들은 급한 마음으로 바지를 빨리 입으려고 진땀을 빼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엄마, 아빠가 싸우고 나가버린 집에서 자기도 옷을 입고 얼른 따라 나가려고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다가 잘 안돼서 다른 옷을 꺼내고 이 옷, 저 옷 꺼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떨리고 무서웠을까... 나는 엄마의 자격이 없었다.

아들을 꼭 껴안고 미안하다고 했다.

“바지 입고 나가려고 했는데... 다리가 잘 안 들어가서...”

“괜찮아. 혼자 두고 나가지 않을게. 엄마랑 같이 입으면 되니까 괜찮아.”


그때 이후 아이 앞에서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자격 없는 부모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싶지 않았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슈퍼히어로를 넘어서는 존재이고 이 세상 전부이며 우주와 같다. 그런 존재가 싸우는 모습은 전쟁보다 더 공포스럽고 무서운 경험이 될 것이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곳이 집인데 전쟁터처럼 무서운 현장을 만드는 것은 부모로서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다.

내용이 좋지 않은 말을 할 때도 부정적 영향을 걱정하여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로 대화하는데 하물며 싸움이라니, 절대 안 될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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