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잔소리 없는 엄마다.
첫째 이유는, 잔소리 싫어하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잔소리 듣는 것, 하는 것 둘 다 몹시 싫어한다. 잔소리 천국 한국에서 잔소리는 그만하면 됐고 우리 공간에서만이라도 잔소리는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다. 얼굴 보는 그 짧은 시간을 잔소리로 채우기보다 가족의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엄마다. 목숨이 오가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잔소리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편이다.
둘째 이유는, 아들이 잔소리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아들이 초등 4학년 때 <잔소리 없는 날>을 읽더니 한 달에 한 번, 잔소리 없는 날을 만들자고 했다. 우리 집은 잔소리 없는 집인데 잔소리 없는 날이 필요하겠냐고 물었더니 ‘어떤 것을 해도 놔두는 날’이라고 해서 크게 웃은 적이 있다. 아들이 읽은 책 제목에서, 어떤 것이든 맘대로 하고 싶은 마음에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아들은 잔소리와 간섭을 싫어한다.
셋째 이유는, 잔소리는 부모와 아이의 소통을 단절시키는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잔소리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엉켜있는 말로 진심 어린 걱정을 표현하는 조언과 다르다. 어떤 때는 꾸지람이나 협박에 가까울 때가 많다. 부모 입장에서 내뱉는 꾸지람과 협박의 빈도가 많아질수록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게 되고 부모와 소통을 접게 된다. 초등학교 시절에 아들은 엄마의 말이 잔소리라고 판단될 때 “끼~익, 철컥!”하면서 ‘마음의 문 닫는 소리’를 내서 표현했다. 서로의 말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될 때 이런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것은 건강한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넷째 이유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관찰해본 결과, 남학생의 경우는 여학생과 다르게 스트레스와 압박에 즉각적인 반응이 없지만, 한계치가 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여학생은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자신의 스트레스 원인을 정확하게 알고 신경질을 내거나 울거나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면서 해소가 되는 반면, 남학생은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것 자체를 잘 인지하지 못하고 내부에 차곡차곡 쌓아놨다가 생존의 위협이 될 만큼 한계에 다다랐을 때 펑! 하고 폭발하는 것이다. 잔소리처럼 듣기 싫은 소리로 들들 볶는 행위는 남학생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한 두 번 할 때는 괜찮아 보이지만 계속 해대면 폭탄 심지에 불을 붙이는 것과 같은 행위다. 곧 감당 못 할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
마지막 이유는, 남고생을 15년간 가르치면서 남자에겐 청각정보보다 시각정보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눈에 약하고 여자는 귀에 약하다'는 말처럼, 남학생은 말을 하면 한쪽 귀로 들어가서 반대쪽 귀로 나가는 시스템이다. “옆반 수행평가 중 조금만 조용히!”라고 말로 하면 한 반에서 5명만 알아듣지만 칠판에 ‘옆반 수행평가 중 조금만 조용히!’라고 쓰면 전원이 알아듣는다. 잔소리는 청각정보다. 따라서 아들에게는 시각정보로 바꾸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서 말보다 쪽지로 건네는 편이다. 꼭 해야 할 말만, 짧게. 아들을 격려할 때 또는 경계선에서 너무 멀리 갔다고 판단될 때는 글로 표현한다. 1년에 1-2번 정도.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잔소리가 없다. 우리 집은 잔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