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으로 이사 가요, 선생님.
집안 사정으로 고3 때 학교 근처 고시원에 살게 된 지혁과 민규.
고2 때 담임을 맡았던 제자 2명이 가정 사정으로 집이 멀리 이사를 가게 되어 고3 때 학교 근처 고시원에서 살게 되었는데 고3 중간고사 직전 영어 질문이 있다고 해서 봐주려고 방문했었다. 5월 초인데도 등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바람이 통하지 않는 비좁고 협소한 고시원 방 곳곳에 옷가지, 수건이 널려있고 이부자리, 책, 세면도구로 꽉 찬 바닥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건 마치 판자촌 쪽방이었다. 복도식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쪽방이 10개 남짓 있고 공용화장실과 공용 샤워실이 있었다. 이렇게 열악한 곳에서 대학공부가 될 리 없다. 당시 우리 집에 남는 방 큰 게 하나 있었고 남편은 서울 직장과 출장으로 집에 못 들어오는 날이 많아서 우리 집에서 기거해도 크게 방해가 되지 않을 거 같았다. 부모님께 당장 연락드려서 집으로 들어와서 1년간 같이 살도록 했다. 고시원비 50만 원을 낭비할 필요도 없고 아들과 단둘이 썰렁했었는데 사람 사는 집 같고 좋았다. 매일 아침식사, 야자 후 저녁 간식 및 수능 날과 체대 실기 날 도시락을 챙기고 매일 늦은 시간까지 함께 공부하여 격려하고 동해안으로 여행을 함께하여 학업 스트레스를 떨치도록 사기 진작을 하고 체대 실기 준비 중 부상을 당했을 때 병원 진료를 함께 가고 약을 챙기고 재활을 돕는 것 외에도 좋은 책 추천하여 함께 토론하고 언제든 편하게 고민상담과 학업상담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진학에 매진하기 위한 제반사항을 만들었다. 부모님들께서 나를 평생 부모로 모셔야 한다고 인정해주시고 학생과 학부모 모두 지금까지 명절, 스승의 날 수시로 연락을 주신다.
사실, 밥상에 숟가락 2개만 더 얹으면 되겠거니 하는 현실성 없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아침식사 준비를 위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다. 요리를 못 하는 데다 한창 크는 성장기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요리 잘하는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날은 아침 식사를 다 해주었다. 빨래는 어머니께 도움을 요청했다. 현관 비번 알려드리고 내 집이다 생각하시고 편하게 가전제품 쓰시고, 간식도 드시고 수시로 다녀가시라고 말씀드렸다. 아침마다 녹초가 돼서 선생님이 깨우는데도 바로 못 일어났는데 고시원에 있었다면 과연 출석이나 제대로 했을지 모르겠다. 지혁이는 국립대 공대 입학 후 3 사관학교로 옮겨 현재 대한민군 군인이 되었고 민규는 체교과로 진학하여 현재 중등임용고시를 준비 중이다.
지혁이와 민규가 짐 빼는 날, 지혁이 어머니께서 생판 남의 아들을 한 집에 데리고 공부까지 시켜주셔서 이 은혜를 어떻게 갚냐고 머리를 조아리셨다. “선생님이랑 한 집에서 불편했을 텐데 애들이 고생 많았죠. 집이 휑~해서 저희 아들이 무서워서 저녁만 되면 저를 졸졸졸 쫓아다녔었는데 지혁이, 민규 들어오고는 하나도 안 무서워했어요. 집에 형들 있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저도 남편 없이 잘 때면 도둑 들까 봐 머리맡에 골프채 놓고 핸드폰 112로 바로 연결되게 하고 앞집으로 보낼 도둑 알림 문자를 미리 저장해놨는데 둘이 들어온 후로는 현관문도 안 잠그고 잠든 걸 다음 날 출근하다가 알게 된 날도 많았어요. 얼마나 맘 편하게 지냈는데요. 제가 고맙습니다.”
-학생 이름은 가명을 사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