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담임을 맡은 우리 반 농사
내가 맡은 우리 반 아이들은 1년 동안 키우는 나의 자식들이다. 1년 농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연말 추수가 달려있다. 내가 맡은 아이들 전체의 방과 후 스케줄, 독서실, 경제적 사정을 파악하여 질문과 상담을 보내올 때는 언제든, 어디든 달려갔다. 밤늦은 시간이든, 독서실이든.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아이들의 학업을 격려하기 위해 손수 만든 간식(해물떡볶이, 스파게티, 호떡 등등)을 학생 집이나 독서실로 배달 가서 얘기를 나눴다.
체육시간마다 간식과 음료수를 책상에 놓고(김영란법 적용 전까지) 칠판에 좋은 글귀와 편지를 써서 열심히 뛰는 아이들의 모습을 칭찬하여 반 학생들과 유대감을 형성했고 우리 반 아이들이 참가하는 교외 체육대회는 빠짐없이 응원 가서 직접 만든 복분자 주스(아이들은 ‘레드 포션’이라고 불렀다), 바나나, 포카리스** 등 간식을 제공하고 경기 사진과 격려 글을 SNS에 올려서 감격의 순간들을 기념했다. 교내 최강 운동반이 되었고 시대회, 도대회에서 수상의 쾌거를 이루었다. 겨울 방학 때 반 아이들 전체와 학부모 대표 아버님과 함께 청평의 펜션으로 겨울 기차여행을 기획, 진행하여 축구, 족구, 배드민턴, 스케이트 놀이, 눈싸움, 바비큐 파티를 하며 한 해를 반성하고 친구들과 추억을 쌓는 뜻깊은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
단합 최고인 우리 반이 행복하다고 보답하고 싶은 마음으로 한 학생이 EBS 라디오 ‘간식을 쏜다’ 프로그램에 학급 사연을 보내 당선되어 우리 학급은 매스컴을 타고 학교에서 유명해졌다. 학부모님이 자신이 만든 김장으로 학급의 어려운 학생을 돕는데 함께 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모든 아이들과 학부모가 단합되는 반이었다. 모든 반이 편안한 투어 코스로 수학여행을 선택할 때 학급회의를 통해 울릉도-독도 탐방을 통해 국토사랑을 체험하고 독도사랑 캠페인 하기로 결정하여 장시간 죽음의 뱃멀미를 견뎌가며 울릉도와 독도를 직접 밟고 국토사랑을 체험했고 다양한 독도사랑 배너를 준비하여 사진을 SNS에 올려 독도사랑 캠페인을 진행했다.
중학교 재직 시절 담임반 학생 개개인의 <꿈과 철학 노트>를 매일 피드백해주고 좋은 글귀, 경험담 등으로 상담을 하고 중1 때 맡았던 아이들이 중3 졸업할 때까지 맡아서 진로와 인성지도를 꾸준히 하고 조회시간 30분을 이용하여 학력신장을 위한 고입 기출문제풀이를 1년간 진행하여 전교에서 독보적인 1등반(2등반과 전과목 평균 10점 이상의 차이)을 만들고 반 아이들 전원이 자신이 희망하는 학교로 진학했다.
만남은 교육에 우선 한다
부버의 말처럼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교사는 자신의 교과 전문가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학생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이루어내야 교육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학생을 마주하는 모든 순간, 교사가 아닌 ‘참된 스승’의 모습이었는지 고민한다. 사실, ‘참된 스승’이라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닌 듯하다. 배고플 때 빵 하나 건네주고, 화났는데 들키고 싶지 않을 때 모른 척해주고, 서먹해서 혼자 침묵할 때 말 건네주는, 그냥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는 사람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를 헤아려준다고 느끼면 아이들은 금세 밝고 활기차게 변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꿈을 찾아 나선다.
요즘처럼 ‘스승’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때에도 진심이 통하는지 내가 담임을 맡아 1년 동안 키운 나의 자식들이 나를 엄마라고 불러준다. 후배들에게 좋은 얘기 해주러 오너라 부르면 당장 달려오고, 대학교 시험 결과 부모님보다 먼저 알려드린다고 연락하고, 공군 훈련 점수 잘 받아서 관제 분야 발령받았다고 훈련소 나오는 날 전화하고, 결혼 소식 가장 먼저 알리러 찾아뵙겠다고 하고, 선생님 가르침대로 문제아 진학시키고 그 동생도 맡아서 지도한다고 하고, 수시로 학교로 찾아오는 그런 아이들이 내게는 가장 큰 재산이고 그런 기준으로 나는 얼마나 부자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