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오패스 사용설명서 25화

오영오

by 주원

주원의 외조부는 국회의원이었고 외조모는 꽤 많은 자산을 상속받은 부유한 사람이었다. 주원의 엄마는 공부머리가 뛰어나지는 않지만 과외와 노력으로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대학교를 졸업했다. 집안도 그렇고 본인의 학업도 좋은 편이니 좋은 선자리가 많이 들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운이 없게도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선자리를 알아보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20년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유학도 다녀오고 대학도 졸업할 정도로 공부에 관심이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가장 열심히 공부한 부분이 샤머니즘 (사주)이었다. 어떻게 점을 친건진 모르겠다만, 엄마의 배우자가 훌륭할수록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외삼촌의 사주가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하며 여러 재벌집 선자리를 마다하고 고르고 고른 모지리가 우리 아빠였다고 한다. 아빠는 다른 건 다 못했지만 공부는 잘했고 할아버지도 재력이 좋은 편이어서 스펙상으로는 괜찮았을 텐데 다른걸 다 무시하고 사주만으로 덜떨어진 인간을 고른 것을 보면 동양 통계학의 정확도가 어느 정도 신빙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영오도 결정사를 통해 결혼했는데, 부인과는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아직도 영오를 회상할 때마다 그분에 대한 연민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결혼은 남녀노소를 불문한 중대사라고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여자의 인생에 훨씬 중요한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부부는 인생의 동반자라고 하지만 그건 성별의 메커니즘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거나 어쩔 수 없는 도태남과 결혼한 여자가 본인을 다독이기 위해 하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같이 사는 여자에게 본인이 마주하고 있는 힘든 이야기를 말해서 서로 득이 될 게 없다. 결혼 한 순간부터 남자는 홀로 사회에서 싸우며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가 있을 뿐이며, 여자는 집에서 애를 보며 노닥거리도록 살도록 설계된 게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작가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만 가끔 힘에 부칠 때가 있다. 출근하기 전 바지를 스타일러에 넣고 샤워했는데 물부족으로 작동이 안 된걸 뒤늦게 알았을 때, 아침에 마시면서 출근하려고 한 커피를 와이프가 전날 마셨을 때, 집담보 대출로 산 주식이 떨어졌을 때 등등 어디다가 하소연을 하고 싶을 때가 문득 생기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냥 거울 속에 있는 나를 바라보고 "아이 씨 x!!"이라고 외치며 털어내곤 한다.


독자들도 알 수 있듯이, 영오와의 항소심과 상고심도 허무하게 100:0으로 승리하였다. 또한, 항소심과 상고심도 동일하게 변호사 비용을 영오가 변제해야 했고, 그 금액이 정확히 1000만 원이었다. 4500만 원 때문에 시작한 소송이었는데, 영오의 입장에선 1500만 원을 나의 변호사 비용으로 추가적으로 지불하게 되었으며, 본인의 변호사 비용 또한 불필요하게 지출하였을 테고, 이자비용만 하더라도 천만 원이 넘게 책정되었었다.


상고심까지 모두 이긴 후, 영오는 당연히 돈을 갚지 않아서 영오의 계좌를 조회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은행별로 만원인가 오만 원의 수수료를 내야 했다. 나는 모든 은행의 조회를 신청하려 했는데, 선생님은 돈이 아까우니 5대 은행만 하자고 제안하셔서 5대 은행 + 카카오뱅크, 부산은행을 추가하여 조회하였다. 이때 처음 알았지만 한국의 은행은 총 50 군대 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우와 재석이의 이야기 중 까먹고 집필을 누락한 사건이 있다. 아무래도 뜨문뜨문 글을 작성하다 보니 작성한 줄 알고 까먹었었는데, 나름 흥미로운 에피소드다. 나는 영오를 사기꾼으로 인지하고 재석이는 아직도 영오에 대한 믿음이 투철할 때, 어느 날처럼 내가 영오의 욕을 하자 재석이가 영오와의 카카오톡 대화를 캡처한 것을 보내줬다. 캡처사진은 중매사가 보내준 여자의 사진과 스펙이 적혀있었는데, 드라마 속에서나 볼법한 스펙만 즐비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면서 재석이가 영오는 이런 사람들을 소개받는 사람이다라며, 해당 결정사는 남자는 천억이상 여자는 200억 이상만 가입할 수 있는 결정사고, 결혼이 성사되면 5억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나는 캡처된 내용을 대충 훑어보며, 재석이의 말을 믿지 않고 무시로 일갈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에피소드는 내 마음속 깊은곳에 계속 찜찜한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영오와 중매사의 카카오톡이 거짓말이려면

1. 영오가 카카오톡으로 2인 1역을 했거나, 2. 실제로 저런 결정사는 존재하지만 영오한테 속아서 영오가 가입됐다는 것이다.


독자들이라면 몇 번을 선택하겠는가? 일단 주원은 1번 옵션을 배제했다. 왜냐하면 내가 분석한 영오는 귀찮은 걸 싫어하고 상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저런 조작 카톡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2번인데, 나는 실제로 영오가 결정사를 거짓말로 속여 가입했지만, 성사시 5억을 준다는 조건은 믿지 않았고, 결정사 자체가 사람 검증을 철저하게 하지 않는 사기 단체라고 생각했다.


재석이는 영오가 저 결정사에서 이어준 사람과 결혼을 했는데 결혼 사실을 비밀로 해서 5억을 내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두가지 핵폭탄이 자기한테 있다고 했는데, 한가지는 여태껏 나와의 일을 영오 부인의 장인어른 (중견기업 대표이사)한테 이메일로 제보하는 게 있고, 나머지 하나는 저 결정사에 전화해서 결혼한 사실을 폭로한다는 것이었다.


재석이는 실제로 내가 형사고소를 패소했을 때 두가지 다 실행하려고 했고, 나는 그걸 막느라 진땀을 뺐던 기억이 있다. 일단 2번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서 실행하건 말건 관심 없었지만, 영오의 장인에게 메일을 보내 영오의 가정을 파탄내고 싶진 않았다. 싸울 때 그 사람의 과거 행적을 폭로하는 건 소인배 혹은 여자나 하는 행동이다. (여자가 소인배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민사마저 패소하면 저런 치졸한 폭로전을 할바에는 차라리 사무실로 쳐들어가 폭행을 선사할 심정이었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 7개의 계좌를 조회하고 압류를 걸었는데, 이미 일곱 개의 계좌가 모두 다수의 사람에게 기 압류당한 상태인걸 확인했다. 예상과 다르지 않은 일이라 크게 당황하지 않고, 17화쯤 영오가 주변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며 구매한 주택또한 압류를 신청했는데, 주택에 관련된 서류를 보고 기절할 뻔했다. 예전에 재석이가 말한 결정사에서 영오의 주택을 압류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금액도 정확히 5억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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