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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an 10. 2023

손뼉

빈손을 마주치기 전에도 소리가 있을까

두 손을 마주쳐 손뼉을 친다. 짝!

그는 팔을 벌려 다시 한번 손뼉을 친다. 짝!


- 이 소리는 어디서 왔을까?

= 자기가 손뼉을 쳐놓곤 어디서 왔냐고요? 오고 가고 가 있나요? 그냥 두 손바닥이 부딪쳤으니 소리가 나죠.

- 그렇지. 손바닥이 서로 만나기 전에는 소리가 없지. 그런데 서로 마주치면 소리가 나. 이게 묘해. 분명하거든.

= 당연한 거 아닌가요. 조건이 딱 맞아떨어지니 반응하듯이 짝 소리가 나고.

- 그 당연함이 굉장한 거야. 소리가 나는 것도 그렇지만, 어떻게 그런 짝하는 소리가 나는 건지 그것도 신기하고, 그 소리를 알아채는 것도 오묘하지. 배울 필요조차 없고 누구나 그 소리를 알아듣거든. 그렇게 알아차리면 돼.

그는 다시 손뼉을 친다. 짝! 이 이상도 이하도 없단다.


=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무슨 의도가 있을 것 같은데요.

- 저 겨울나무들 보게. 저 나무에서 어떤 모양의 꽃이 피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 향기는 또 어떻고? 도저히 모르겠어. 그런데 봄이 되면 알아서 스스로 꽃을 피워.

= 작년을 경험해보면 어떤 꽃이 피는지 알잖아요. 식물도감을 봐도 되고.

- 그런 기억이나 지식 말고. 그냥 보라고. 그리고 어떤 모양 어떤 색의 꽃이 필지 몰라. 나무 막대기 같이 생긴 그 속에서 전혀 새로운 뭔가가 나타나. 온갖 식물들이 다 그래. 다육이는 더 신기하지. 도저히 어떤 꽃이 필지 몰라.


= 말 돌리지 말고요, 손뼉을 치면 누구나 짝하고 소리 낼 수 있고, 또 그걸 듣는 게 이상한가요? 그걸 신기해하는 게 더 이상한데.

- 물론 우린 소리를 듣고, 소리를 인식하지. 그런데 소리가 나기 전에 두 손의 마주침 이전의 소리를 몰라. 하지만 소리가 나면 바로 알아채. 어떤 소리일 거라는 예상을 하든 말든. 즉각적으로 그 소리를 알아.

= 그 소리를 듣는 귀가 있어서 듣는 것 아닌가요. 또 알면 아는 거지 알아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 그냥 알고 있고 또 원래 그런 거 아닌가요? 인식을 하든 말든.

- 훌륭한 말이야. 원래 있던 거지. 소리든 모양이든 감각이든 느낄 수 없다면 존재를 알 수가 없고, 표현할 수 없으면 전달할 수 없어. 그런데 그 알아채는 그 무엇이 원래 있던 거지. 배우기도 전에 있었고, 느끼기 전에도 있었어. 늘 있었는 데 있는 줄 몰라.


= 모른다고 없는 것인가요?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내가 모르는 많은 것들이 실제는 존재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 대단해. 넌 정말 타고난 것 같아. 만약 늘 갖고 있는데 모른다면 그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알 수가 없는 걸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 있을 거야라고 한다면 추측이나 상상이지. 그건 생각이야.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증명하거나 보여줄 수가 없어. 그런데 분명히 있는데, 있는 줄 모른다면 없다고 하는 게 맞지. 그러다 나중에 알게 되면 없어도 있다고 확신하지. 몰랐다고.


-. 지금 나랑 얘기할 땐 모르지만, 내가 지금 '발가락'하고 말하면, 발가락의 존재를 바로 알게 돼. 내가 말하기 전과 후에 없던 게 새로 생긴 게 아닌데, 몰랐다가 바로 알아차리는 발가락은 뭘까? 발가락이 없던 게 나타난 게 아니지만, 있어도 없는 것 같지 않았어?


인식과 존재. 그 상관관계는 내가 오랫동안 궁금했던 바다. 존재하는데 내가 인식 못하는 경우에 그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내가 있다고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는 없는 경우는 또 어떤가? 꿈이 그렇고 상상이 그렇지 않은가. 시간은 또 어떤가? 시간을 존재한다고 말하긴 뭣하지만, 우린 시간을 정하여 약속을 잡고, 어느 때 뭘 했었지라는 것으로 기억을 한다.


= 어제 만난 친구를 지금 떠올릴 수 있고,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는데 그렇다고 그가 없나요? 이렇게 기억에 선명한데.

- 그게 어제의 일들이 너의 생각에서 뚜렷하다고 지금 인식하고 있는 거지. 조건에 따라 금방 손뼉 소리가 났지만, 그 소리는 지금 없어. 날아가버렸지.


- 그를 만났기에 지금 기억으로 인식을 하는 거지. 만약 어제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너에겐 그가 있는 걸까?

= 그전에 만났던 그를 기억하겠지요.

- 만약 처음부터 그를 만난 적이 없다면? 그라는 존재가 너에게 있을 수  있을까?

= 그를 모르니 그를 떠올릴 수조차 없겠지요.

- 그러니 그런 만남이라는 조건으로 인해 그를 기억하고, 그의 이미지를 그려내지만, 그런 모든 게 조건이나 상황의 과정을 거쳐 나타나는 것일 뿐이야. 그러 그건 생각 아닌가? 생각이나 상상, 이미지, 느낌 등 자기가 아는 방식으로 받아들인 것들이지.

감정이나 사고 생각 말고, 지금 바로 여기에 있고, 지금 여기서 느끼는 것들에 대한 얘기야.


- 기억이나 생각은 편집되어 받아들인다는 것이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혹 왜곡되기도 하고.

= 누구나 다 그렇게 자기 방식으로 사고하고 받아들이지 않나요?

- 맞아. 기억이 그렇고 감각도 그래. 느낌이나 생각도 그렇고.

= 우리가 그런 오감을 통한 외부 인식 말고 또 다른 게 있을 수가 없잖아요.

- 빙고. 우린 우리의 눈코입으로 받아들이고 그걸 바로 알지.


- 우리의 인식은 대상이나 상대가 있음으로 인해서 생기는 것들이지. 그런 상대성은 '나'라는 존재가 먼저 전제가 되어야 하는 식이지. 내가 있어야 상대가 있고, 상대가 있음은 내가 이미 있음이야. 그러니 상대와 나는 구분하는 방편이지, 원래는 나와 남은 분리 불가능이야.

= 그래도 나와 나 아닌 타인은 분명 있는데 왜 이걸 부정하는 건가요? 분명 있는데.

- 그걸 부정하는 게 아냐. 단지 그렇게 구분하는 방식을 고정불으로 하지 마라는 거지.


= 어떻게요?

- 만약 세상에 혼자라면 나라는 존재를 인식할까? 내가 나 혼자 살고 있다는 생각도 못 해. 그냥 살아가는 한 동물이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그런데 다른 사람을 만났어. 그를 만나고 나서부터 그가 아닌 나를 인식하게 돼. 내가 나인줄 몰랐다가 그를 통해 내가 생겨. 나라는 인식은 상대가 나타나면서 발생하지. 그야말로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라는 가사처럼.


- 이건 어때? 세상에는 남자 또는 여자가 있어. 만약 남자가 없고 여자만 있다면, 여자라는 단어도 없겠지. 그럼 여자도 없어. 그냥 사람?이지. 주관과 객관의 관계도 같아. 세상을 주객으로 분리해서 그렇게 말해지는 거지, 주객은 한 덩어리야. 관점이 바뀌면 언제든 주객전도가 일어나기도 하고.


=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뭐예요?

- 배경이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바닥이 있어야 건물을 짓듯이, 우리의 삶도 세상이라는 공간이 주어져야 우리가 살 수가 있어. 손뼉을 치기 전에 몰랐다가 짝하는 소리를 듣고 알아채는 그것. 있지만 자극이 가해져야 알아채는 그것. 본바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것.


- 모든 변화들은 조건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하지. 변하지 않을 수가 없어. 그런 변화가 일어나게 하고 변하게 끔 하는 허용. 그걸 불변이니 초월이니 영원처럼 얘기하면 사기꾼의 말에 걸려들어. 그냥 허공처럼 그 자체이거든. 우린 변화의 연속 속에 살면서 변화와 같이 변하지만 그 변화에 얽매이지 말고 살았으면 해. 그 대자유를.


그는 뭔 말을 하려다 침을 삼키고 다시 손뼉을 친다.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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