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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an 19. 2023

두 가지 길

넓이와 깊이

영업이 체질인 친구가 있다. 나는 그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물건을 들고 사업체를 찾아 설명을 하다 보면 거절이 되는 건 당연하고, 낯선 이를 만나 설득하고 거래를 트기까지 그 과정이 쉽지 않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면서도 그는 그 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일단 출근 방식부터 나와는 달랐다. 친구는 집에서 회사까지 출근하는 길을 평소처럼 일정하게 다니지만, 새로 난 길이 있으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릴지라도 시도를 한다고 한다. 매번은 아니지만, 어떤 땐 샛길로 들어서다 방향을 잃고 헤매거나, 막힌 길이어서 돌아 나와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다 보면 멋진 길을 알게 되기도 한다고.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게 재밌단다. 그 낯설지만 다양함을 좋아하는 게 직장 생활로 적응한 성격이기도 하지만 그의 체질도 한 몫했으리라.


그와 달리 나는 늘 같은 길을 왕복한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거리가 짧아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떤 사소한 변화에도 금방 알아차린다. 물론 그 길이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렇게 익숙한 길을 오가다 보면 그 길만의 맛이 있다. 늘 보던 길인데도 조금씩 바뀐다. 무슨 풀이 이만큼 자라고, 나무에서 꽃이 피고, 어느 가게 간판도 바뀌고, 담장 페인트가 다시 칠해진다. 그 거리에 자주 만나는 낯 모르는 이의 익숙한 변화도 그렇다. 그런 점이 내겐 새롭다.


누구나 상대의 장점이 부러워 나도 그랬으면 하고 기대를 하지만, 그건 부각된 단면일 뿐이다. 회사원이 상사 눈치 볼 일 없는 자영업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하고, 자영업자는 매달 시간만 지나면 월급이 나오는 회사원을 부러워하듯이.


친구는 몇 평안되는 공간에서 어떻게 하루종일 있을 수 있느냐며 나를 신기해한다. 갑갑하지 않으냐 묻는다. 그건 나도 그에게 느끼는 다름이다. 어떻게 그렇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지 참 다르다. 


친구는 틈틈이 맛집을 찾아다니고, 시간 날 때마다 새로운 동네를 가본다. 멀리 넓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친구. 그는 가능한 여러 루트를 통해 다양하게 가보고,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만져봐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변화 무상한 세상과 그 속도에 그는 무던히도 따라가려고 노력한다. 그런 그가 나를 보면 참 답답하다고 느끼겠다 싶었다. 


앉아서 기다리느냐, 찾아가서 만나느냐에서 차이가 시작되어 나뉜다. 


다양성의 새로움도 좋지만, 밥처럼 계속 곱씹어 나는 맛이 나름 괜찮고 색다르다고 말해도 그는 그래봤자 매일 먹는 밥 아니냐고 한다. 나는 그런가 하고 웃었다.

나중 늙어 관절 아프고 다리 힘없어 못 돌아다니면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그는 지금껏 돌아다닌 추억으로 지내련다면서 웃는다.


옛날의 어떤 얘기가 기억난다. 홀어미를 모시고 사는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모친이 고질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기한은 1년. 다행히 그 병을 고치는데 필요한 약재가 있단다. 다만 그 약재는 구하기 힘들어 어떤 지방에서만 겨우 자란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동네까지 갔다 오려면 1년이 필요하단다. 그러나 막상 그 동네에 가더라도 그 약재를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또 한 방법은 그 약재의 씨앗을 심어 1년 동안 키우면 약효가 날 정도로 자란다고 한다. 다만 재배하기가 까다로워 정성껏 키워야 하고, 자칫 가뭄으로 시들거나 병충해로 잘 자라지 못해 약재가 약효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씨를 뿌려놓고 나서 얼른 그 동네까지 갔다 오기가 좋을까? 동쪽 서쪽으로 달아난 두 마리 토끼다. 양다리 걸치기가 가장 현명할 것 같지만 그건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는 자충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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