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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Mar 14. 2023

마치고 기다린다

부끄럽지 않으려

갑자기 '묵언'이란 문자가 왔다. 복기를 해보면 몇 달 동안 나를 지켜보곤 더 이상 나의 발전적 행보가 없어 보인 탓이리라. 무달형님은 미리 어떤 언질도 없이 더 이상 나와의 만남이 의미가 없다고 본 것이다. 시간을 축내느니 본인의 길을 갈 테니 스스로 문을 닫아 당분간 만남도 대화도 그만두자는 뜻이었다. 


어느 정도 공부가 되어도 그게 푹 익으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약간의 알음알이가 생겨 이젠 됐다는 생각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나를 눈치챈 모양이다. 그렇게 어긋난 건 아닐 텐데 그는 선을 긋는다. 십여 일을 생각하다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의 부족함을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만, 그에게 꼭 묻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그저 열심히 꾸준히 잘 하라라고 하는 정도에선 부족한, 뭔가 선명한 한 꼭지를 알고 싶었다.


'묵언을 입으로 하는 건 아닐 테고. 

묵언이라 함은 말없음이 아니라, 말을 해도 말 한 바가 없다는 뜻이요, 말 자체를 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잡생각 없앰의 방편인 아닐까요?'


한 참 후 그에게서 만나자는 문자가 왔다. 다시 만났을 때 사변적인 얘기를 하다 잠시  서로의 침묵이 뜸을 들이는 사이에 정말 묻고 싶은 것을 꺼냈다. 진료를 하다 보면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자기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더라. 심지어는 쉽지 않은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진찰할 때 무달형님은 어떻게 그토록 흔들리지 않고 치료하는지 그 비결이 궁금했다. 그런 경우엔 치료 기간도 꽤 길어질 수밖에 없지만, 스스로를 믿고 치료를 계속 밀고 갈 수 있는 그 배경이 궁금했다.


나도 정답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순 없지. 나도 몰라. 다만 점검하고 또 점검하며, 나를 돌아볼 뿐. 


그의 답변이다. 치료를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가다가 어떤 시점에서는 치료를 해도 효과가 없을 때가 있을 테고, 주 증상 이외의 예상과는 다른 증상들이 나타날 때도 있고, 정말 그 병이 낫긴 낫느냐는 환자와 보호자의 의심과 불안을 품은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떻게 흔들리니 않고 나아가느냐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물론 본인도 사람인지라 이 길이 맞는지 헷갈리고, 정작 어디까지 언제까지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고 한다. 심하게 흔들리면 새벽잠을 설치다 한 밤중에 운동장을 뛰기도 하고, 중압감을 벗기 위해 다른 곳에 시선을 흩으려 컴퓨터 게임을 하기도 한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지나가는 과정일 뿐, 결국은 반성과 반추의 방법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으리라.


환자의 증상을 듣고, 처방을 한다. 처방을 수십 차례 뜯어보고 환자를 떠올려 증상과 맞는지 확인한다. 처방 구성에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남음은 없는지 책을 통해 확인하면서. 더불어 진단을 하는 내가 맑음을 유지하는지 돌이켜 살펴본다.  그러고 나서, 이쯤이면 충분하다거나, 더 이상 다른 방향은 없다거나, 긴 과정에서 지금 시점에 가장 적합한지 여부를 따져 처방을 확인하는 방법뿐이라.


새벽에 일어나 찬 물에 세수를 하고, 30분 책을 읽고 뜻을 되새기며 나의 진도를 확인한다. 어떤 땐 꽉 막혀 전혀 나아감이 없다고 느껴지더라도 그 과정엔 변함이 없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넘어선 새로운 해석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지. 그리고 운동을 하러 나간다. 매일.


몇 년 전부터는 늘 하던 일을 그대로 하면서 취침 전 스트레칭과 코어근육을 단련 중이란다. 당연히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다 보면, 처음엔 힘들다가, 차츰 적응의 과정을 거쳐, 익숙해질 때쯤 며칠에 한 번씩은 정말 귀찮아지기도 하단다. 그럴 때마다 본인의 마음을 다잡는단다. 


어떻게 내가 흔들리지 않느냐고? 그렇게 나를 다잡고, 내가 고요한지 여부에 '그렇다'라고 대답하고, 처방을 돌이켜 확인하고 나면 그다음은 기다리는 거지. 운을 맡기듯. 다만 내가 전한 뜻을 환자가 얼마나 실천할지는 그의 몫이라 완벽이란 말은 남기지 않는다. 나를 믿고, 내가 믿을 만하다면.


정말 할 만큼 다 했다, 시간이 더 주어진다고 해도 이보다 더 이상 잘 하긴 힘들다는 느낌이 들 때 우린 힘을 빼고 기다린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든 이미 그 결과에 승복하게 된다.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그걸로 충분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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