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뚜렷한데 이걸 모른다니.'
현인은 노처사의 반응이 답답하다. 매일 그렇게 얘기하고 설명하고 알아듣게 말해서 보여줘도 감을 잡지 못하니 난감해한다.
'저도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어찌 배워서 알겠어요. 그냥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거지요. 그런데 뭔가 특별하다거나 어떤 확실한 느낌이 오질 않아요. 뭐가 있기는 한지 잘 모르겠어요. '
어쩌면 노처사가 이곳을 온 이유는 깨달음에 대한 환상을 가졌거나 색다른 체험을 원했던가 보다.
현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안다는 노처사의 말에 현인은 그건 그런 생각이 아니라고 거듭 말한다. 유추하고 추론하여 생각을 굴려서 아 이것이구나 하고 아는 것들이 아니란다. 물론 우리 모두는 느낌이나 생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느낌과 생각을 떠나 또 다른 뭔가가 있을 수가 없다. 단지 그 느낌과 생각을 일으키고, 그 느낌과 생각을 아는 그 무엇.
'특이하거나 특별한 어떤 대상을 찾는다면 그건 환상입니다. 형태가 있는 모든 것은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면서 결국 사라져요. 그렇지 않은 게 있을까요? 그래서 깨달음은 형상을 떠나 있다고 하는 건데 우린 자꾸 뭘 봐야 믿는 경향이 있어요. 그건 그런 모양이 아니라고요. 눈으로 볼 수 있고,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변해요.'
현인은 본성은 바탕과 같아서 모든 사물이 드러나도록 하는 배경이라며 마치 영화관의 스크린이요 그림의 하얀 도화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활동사진이 펼쳐지고, 그림이 아름다워도 그 영화가 펼쳐지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끔 하는 그 밑바탕은 변하지 않듯이 본바탕은 어디에 물들지도 않고 변하는 것도 아니라고. 뭐가 있어야 변하지.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닌, 세상 모든 게 드러나도록 하지만 그 자체는 드러나지 않는, 드러낼 수도 없는 그 바탕. 그래서 허공 같다느니 말할 뿐이지만 혹 허공이라는 또 다른 상을 만들까 저어하게 된다고.
'느낌도 마찬가지죠. 그 어떤 느낌이나 감각도 대상이 있을 땐 느껴지다가 대상이 사라지면 느낌도 사라져요. 누구나 그렇지 않나요? 그렇다고 그 느낌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에요. 그런 느낌이 없다면 그건 무감각한 거지요. 그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는 그 무엇.'
말의 한계를 실감하면서 현인은 이 뜻을 전할 방법은 스스로 알아차림 밖에 없음을 어찌하랴 한다. 설명을 하려면 말을 해야 하는데, 말로 설명하려니 그 합당한 적당한 단어가 없다. 단어가 없으니 말을 할 수도 없고, 또 말을 안 하고서는 뜻을 전달할 수도 없음이랴. 그래서 말을 떠나 있는 그 무엇을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전달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노처사의 답답함도 마찬가지다. 두 눈으로 물건을 분명히 보고 있고, 그 물건이 뭔지를 알고, 두드려 소리를 들어보고, 만져서 촉각으로 이것이 뭔지 확실히 아는 물건을 따로 뭘 어찌하라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현인은 다시 입을 뗀다. ' 그렇게 눈으로 형태를 보고 아는, 소리를 듣고 무슨 소리인지 아는, 만져보고 맛보고 그게 뭔지를 아는 알아채는 그 놈이에요. 형태든 소리든 차갑고 딱딱하든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를 우리 몸의 눈코입귀 등의 감각기관을 통해 우리가 그 대상을 인식하여 아는 그것. 그 모든 걸 아는 그것이 뭔가 하나 있죠? 그거예요.'
깨달음은 거창하고 대단한 어떤 느낌을 느끼거나 특이한 체험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 현인은 거듭 말한다. 그런 걸 구하는 마음에서 우린 환상을 꿈꾸고, 자칫 속임수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그러면서 그러한 평범함이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 말고 또 뭔가가 있을 수 있을까? 누구나 가지고 있고, 누구나 늘 쓰면서도 모르는 게 안타깝다고 현인은 말한다.
너무나 소중하고 고귀한 것들은 세상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감추려야 감출 수도 없다. 그렇기에 감춰져 있는 것 같다. 누구나 늘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직 눈 뜬 자에게만 주어지는. 그러한 자각을 통해 우린 너무나 현실 같은 이 무상함이 허상임을 알수록 얽매이고 집착함에서 벗어난 자유를 향유하리라.
그들의 대화에서 나는 뭔가 알쏭달쏭함에 빠진다. 알듯 말듯하다. '그 무엇'이라는 형태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그것은 우리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아니 반대로 우린 그 배경 없이 있을 수도 없다. 어쩌면 일상 그대로 道라는 말인데 그래서 '平常心是道'라는 뜻이 그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