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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Apr 01. 2023

드러난 비밀

일상 그대로 일상

'이렇게 뚜렷한데 이걸 모른다니.'

현인은 노처사의 반응이 답답하다. 매일 그렇게 얘기하고 설명하고 알아듣게 말해서 보여줘도 감을 잡지 못하니 난감해한다.


'저도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어찌 배워서 알겠어요. 그냥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거지요. 그런데 뭔가 특별하다거나 어떤 확실한 느낌이 오질 않아요. 뭐가 있기는 한지 잘 모르겠어요. '

어쩌면 노처사가 이곳을 온 이유는 깨달음에 대한 환상을 가졌거나 색다른 체험을 원했던가 보다.


현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안다는 노처사의 말에 현인은 그건 그런 생각이 아니라고 거듭 말한다. 유추하고 추론하여 생각을 굴려서 아 이것이구나 하고 아는 것들이 아니란다. 물론 우리 모두는 느낌이나 생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느낌과 생각을 떠나 또 다른 뭔가가 있을 수가 없다. 단지 그 느낌과 생각을 일으키고, 그 느낌과 생각을 아는 그 무엇.


'특이하거나 특별한 어떤 대상을 찾는다면 그건 환상입니다. 형태가 있는 모든 것은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면서 결국 사라져요. 그렇지 않은 게 있을까요? 그래서 깨달음은 형상을 떠나 있다고 하는 건데 우린 자꾸 뭘 봐야 믿는 경향이 있어요. 그건 그런 모양이 아니라요. 눈으로 볼 수 있고,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변해요.'


현인은 본성은 바탕과 같아서 모든 사물이 드러나도록 하는 배경이라며 마치 영화관의 스크린이요 그림의 하얀 도화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활동사진이 펼쳐지고, 그림이 아름다워도 그 영화가 펼쳐지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끔 하는 그 밑바탕은 변하지 않듯이 본바탕은 어디에 물들지도 않고 변하는 것도 아니라고. 뭐가 있어야 변하지.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닌, 세상 모든 게 드러나도록 하지만 그 자체는 드러나지 않는, 드러낼 수도 없는 그 바탕. 그래서 허공 같다느니 말할 뿐이지만 혹 허공이라는 또 다른 상을 만들까 저어하게 된다고.


'느낌도 마찬가지죠. 그 어떤 느낌이나 감각도 대상이 있을 땐 느껴지다가 대상이 사라지면 느낌도 사라져요. 누구나 그렇지 않나요? 그렇다고 그 느낌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에요. 그런 느낌이 없다면 그건 무감각한 거지요. 그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는 그 무엇.'


말의 한계를 실감하면서 현인은 이 뜻을 전할 방법은 스스로 알아차림 밖에 없음을 어찌하랴 한다. 설명을 하려면 말을 해야 하는데, 말로 설명하려니 그 합당한 적당한 단어가 없다. 단어가 없으니 말을 할 수도 없고, 또 말을 안 하고서는 뜻을 전달할 수도 없음이랴. 그래서 말을 떠나 있는 그 무엇을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전달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노처사의 답답함도 마찬가지다. 두 눈으로 건을 분명히 보고 있고, 그 물건이 뭔지를 알고, 두드려 소리를 들어보고, 만져서 촉각으로 이것이 뭔지 확실히 아는 물건을 따로 뭘 어찌하라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현인은 다시 입을 뗀다. ' 그렇게 눈으로 형태를 보고 아는, 소리를 듣고 무슨 소리인지 아는, 만져보고 맛보고 그게 뭔지를 아는 알아채는 그 놈이에요. 형태든 소리든 차갑고 딱딱하든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를 우리 몸의 눈코입귀 등의 감각기관을 통해 우리가 그 대상을 인식하여 아는 그것. 그 모든 걸 아는 그것이 뭔가 하나 있죠? 그거예요.'


깨달음은 거창하고 대단한 어떤 느낌을 느끼거나 특이한 체험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 현인은 거듭 말한다. 그런 걸 구하는 마음에서 우린 환상을 꿈꾸고, 자칫 속임수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그러면서 그러한 평범함이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 말고 또 뭔가가 있을 수 있을까? 누구나 가지고 있고, 누구나 늘 쓰면서도 모르는 게 안타깝다고 현인은 말한다.


너무나 소중하고 고귀한 것들은 세상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감추려야 감출 수도 없다. 그렇기에 감춰져 있는 것 같다. 누구나 늘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직 눈 뜬 자에게만 주어지는. 그러한 자각을 통해 우린 너무나 현실 같은 이 무상함이 허상임을 알수록 얽매이고 집착함에서 벗어난 자유를 향유하리라.


그들의 대화에서 나는 뭔가 알쏭달쏭함에 빠진다. 알듯 말듯하다. '그 무엇'이라는 형태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그것은 우리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아니 반대로 우린 그 배경 없이 있을 수도 없다. 어쩌면 일상 그대로 道라는 말인데 그래서 '平常心是道'라는 뜻이 그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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