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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an 18. 2024

일 없습니다

때가 되어 그러한

20년 가까이 한 곳에 살다 보니 이런저런 손 볼 일들이 생긴다. 1년에 한두 가지야 늘 수리를 해야 할 상황들이 생기지만, 한 번씩은 한꺼번에 일이 벌어진다. 이번이 그랬다. 그런 때에는 당황도 하고 어디서 손을 봐야 할지 정신을 차리기 쉽지가 않고, 마음처럼 일의 진척이 안되면 허둥지둥 바쁘고, 짜증도 많이 났다.


누수가 생기고, 탕비실 전등이 먹통이고, 누군가 뒤처리를 제대도 하지 않아 변기가 막히고, 세면대 배수구에 물이 새어 바닥에 물이 흐르면서 쌓아둔 물건이 젖었다. 무슨 이런 일이 이삼일 새에 갑자기 터져 나오는지. 때도 잘 맞춰 2년 전에 치통으로 발치하고 심은 임플란트가 흔들거리면서 잇몸이 붓고 음식을 씹을 수가 없는 불편함이 같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 모든 게 그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씩 풀어가는 수밖에 없기도 하지 않은가. 업체에 전화하고, 철물점 가서 부품을 사서 교체하고, 변기 뚫어펑 세제와 펌프질을 하고, 치과에 간다. 물론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다시 물어보기도 하고, 다른 방법을 써보기도 한다. 정 안되면 지출을 각오하면 된다.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


방향을 정해놓고 조금씩 야금야금. 하루를 그렇게 살아간다. 좋든 싫든 하루를 건너뛰거나 같은 하루를 더 연장할 수도 없다. 문제를 문제 삼으니 문제다. 원래 문제는 없다. 문제라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변수가 잠시 나타난 거다. 그 변수라는 것도 그걸 변수라고 하는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별 것 아니겠지라는 좁은 희망이었다. 마치 싼 물건을 사놓고 망가지지 않고 오래 사용하리라 생각하듯이. 내구성이 강한 소재로 만든 물건이 그렇게 저렴할까. 그러니 이런 일들은 생각지 못한 변수로 보고 당황하기 쉽다. 변화의 여지를 넓게 두면 비록 내가 몰랐지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상수가 된다.


오래되면 탈이 나는 것은 물건뿐만 아니다. 갑자기 어딘가 아프다는 사람들이나, 자고 일어났더니 움직이지 못하겠다는 경우가 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 하지만 어느 날 그렇게 아무런 이유 없이 탈이 날 가능성은 드물다. 즉 몰랐던 거다. 니면 무시했거나.


몸은 조금씩 신호를 보낸다. 처음엔 그 신호에 놀라고 의아해하며 지켜본다. 그러한 신호는 저절로 없어지거나 약간의 치료만으로도 이내 사라진다. 별 것 아니구나, 금방 증상이 사라졌네라며 다행이라고 느낀다. 좋아진 게 아닌데 괜찮다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신호는 잊을만하면 다시 한 번씩 나타난다. 그러면 늘 그래왔듯이 조만간 괜찮아지겠거니 믿는다. 그렇게 몇 번의 신호를 보내고 몇 번을 반복하다 한계에 다다라 몸에서 균형이 깨지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강도의 큰 통증이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났다고 느낀다. 왜 이러지? 그런 통증은 지금껏 무시한 시간만큼 지속된다. 금방 나았고 그러다 괜찮아졌다는 생각에 이번에도 그렇겠지로 가볍게 여기지만, 약을 복용해도 쉬 진정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병이 묵은 거다. 묵혔을 수도 있고.


몸은 정직하다. 기억력도 정말 좋다. 불균형이나 부조화에 회복력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복원력을 발휘한다. 그러다 제대로 회복을 못하면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가 잦은데 너무 흘려보내면 나중 곤란해진다.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지만 마냥 외면하는 것도 좀 그렇다. 뒤돌아봐야 한다. 그렇게 변수를 줄이고, 하루의 상수 속에 포함시킨다. 하루하루를 무난하게 살며 이런저런 사건들이 발생하지만 별일 없다.


'무난하다'는 말은 어려움이 없음이라. 쉽다는 말이 아니다. 별 탈이 없음이라. 별 일 없이 무난하고 무탈하면 그걸로 충분하고 감사할 따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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