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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l 07. 2024

방명록

누구나 그러한가 보다

일상의 반복에 점점 지쳐가지만 지친 줄도 모르면서 지내다 어느 순간 몸이 베베 꼬이고 자꾸 기지개를 켠다. 뭔가 잃어버린 것이 있는 것 같은데 뭘 찾는지 모르면서도 자꾸 주변을 살핀다. 허둥되고 안정이 안된다. 이때는 일시 정지를 버턴을 누르고 자리를 떠나 사라지고 싶다. 맞물려 돌아가던 바퀴가 헛돌고 다시금 왜 사냐는 질문에 빠지면 하던 일들이 무의미해진다. 시간을 멈추고 나를 격리를 하는 공간이동이 필요해진다. 떠나고 싶다.


도심에 멀지 않은 호젓하고 조용한 곳을 찾는다. 바람소리, 새소리에 힐링이 되는 게스트하우스. 호스트와 나누는 대화에서 기분이 나아지기도 하고, 방황하는 삶에 어렴풋 방향을 찾게 되기도, 기분 환기로 인해 기운을 차리게 되기도 한다는 후문. 장서만 만권이 넘는다고 하니 가 집이 아니라 작은 도서관 같은 느낌이면서 아무 간섭 없이 무슨 책이든 펼쳐볼 수 있는 편안한 곳이라고. 만권의 책을 읽고 만 킬로미터를 다녀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나도 하룻밤을 보내고자 디엠 보내고, 문자 받고, 날짜에 간다. 가방하나 달랑 메고 간다. 비 오는 늦은 저녁에 도착한 게스트하우스는 이미 도착한 손님들이 있고, 책을 보는 이도 있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이들도 있다. 둘러보니 가히 책으로 인테리어를 했구나 싶다. 


지정 숙소에는 침대와 화장실과 책상 그리고 책꽂이의 책들. 작고 단순하고 조용하다. 샤워하고 혼자 커피를 한잔 마신다. 창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열어둔 창으로 두두둑 빗방울이 잎에 떨어진다. 데워진 몸이라 습한 바람도 시원하다. 졸다 일어나 빗소리에 깬다. 


책 제목을 훑어본다. 주인장은 어떤 취향일까. 시, 소설, 여행, 정치, 역사 등등의 책들이 책장에 가득이다. 일단 의자에 앉아 스탠드등을 켠다. 오른쪽 딱 알맞은 위치의 책상 위에 같은 표지의 책이 세 권 쌓여있고 펜이 놓여있다. 방명록. 이미 이 방을 거쳐간 이들이 하루를 보내면서 감회를 적어놓고 그림을 그려놓기도 하면서 또 다른 숙박자의 자취를 들춰보기도 했겠다. 


어떻게 이방에 머물게 됐는지, 최근 일상이 어뗐는지, 누구랑 왔는지, 헤어진 슬픔을 달래려, 떠난 이가 그리워, 방황하는 자신을 돌아보려 각자 여러 사연을 안고 이 방을 거쳐가노라 써놓는다. 날짜와 이름까지 써놨어도 읽는 이에겐 익명이다. 


만권의 책은 아름다운 벽의 장식이고, 읽기는 방명록만 줄창 읽고 있다. 이 많은 책들보다 더 생생하고 재밌게 방명록은 살아있다. 현재를 사는 주변의 누군가가 누구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일기처럼 써놓은 솔직함들. 그래 맞아 나도 그렇거든.


일상이 갑갑해서 여기까지 와서, 누군가 갑갑하다고 쓴 예기에 동감하고, 나 또한 갑갑하다 써놓고 후련해하고, 다들 나처럼 갑갑해하는구나에 위로받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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