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한 일상이 익숙해진
주어진 많은 것들엔 이미 선택이 배제되어 있다.
매인체 안정이라고 자위하든지, 무책임하게 자유롭든지.
계절이 그렇고, 날씨가 그렇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렇고, 집안 형편이 그렇다. 그걸 바꿀 수는 없지만, 모든 상황을 숙명으로 받아들여 스스로 선을 그어 한계 짓는 것도 좀 뭣하다. 자획自劃한 그 선을 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윤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노라고 정한다. 선 밖의 사람이나 그 선 자체가 없는 이에겐 그렇게 얽매일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할지 몰라도 당사자에겐 절대적일 수 있다.
어머니는 나이 들어 어렵게 노산으로 그를 얻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친이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그에게 어머니는 남아있는 혈육이요 유일자였다. 홀어머니의 고생을 보면서 커온 아들은 그의 삶에서 어머니를 따로 떼놓을 수가 없다. 얼마나 힘들게 살아오셨는지, 얼마나 본인을 위해 희생했는지, 밤새 앓고도 내색 없이 살아낸 엄마를 빼고서 그의 성장기는 무의미했다. 그러면서 항상 예의 바르고, 어른을 공경하라는 모친의 당부는 평생 그의 삶의 기준이요, 타인을 판단하는 기본이 되었다.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직 살아계셔도 그에겐 눈물이 났다.
키가 백팔십이 넘고, 축구며 달리기며 운동에 능숙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준수하게 생긴 외모를 주변에선 부러워하기도 하고 그런 몸매를 이용한 직업을 권하기도 했었다. 그런 말이 들릴 때마다 그건 타인들의 기준일 뿐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모친이었으니 그의 선택에는 언제나 모친을 떠난 멀리에서의 학업이나 직장은 제외되었다. 피치 못할 필요에 의해 모친을 모시고 딴 도시를 간다는 것도 모친의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의 시달림이 맘에 들지 않아 그럴 경우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직장도 여러 번 옮길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주변에 이동 가능한 위치의 적당한 범위에서 직장을 구한다. 스스로 급을 낮춘 것인지 모친과의 친밀함 때문인지 모르지만, 세속적 욕구가 없진 않았을 텐데 그의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는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며 만족한다고 말하곤 했다.
결혼쯤에도 그에겐 모친을 모신다는 전제가 있었던가 보다. 신혼집을 따로 구하지 않고 바로 본가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으니, 그의 부인도 요즘 보기 드문 효부였던가 보다. 쉽지 않았을 선택에 부인은 어쩔 수 없지요, 남편의 어머니니 또한 저의 어머니 아니겠어요, 나쁜 분도 아니고 고생도 많이 하셔서 이젠 경제 활동도 하기도 힘드신데 상황을 받아들여야지요. 그렇게 부부는 아들 하나와 딸 둘의 삼 남매를 키우며 여섯 가족이 같이 지낸다.
건설 관련 업종의 직장을 다니면서 그는 결국 사회생활은 학벌과 경제력이 진급과 급여, 생활여유를 결정함을 톡톡히 깨닫는다. 그러다 큰 교통사고가 나기도 하고 사내 낙상 사고가 있기도 했다. 한 번은 설치된 비계의 안전장치 허술로 십여 미터의 높이에서 추락하여 다발성 늑골 골절로 몇 달을 병원에서 지내고 잠시의 재활치료 후 다시 회사에 다니면서 힘든 생활을 보낸다.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이라고들 말하지만, 점점 삶의 염증이 그를 괴롭힌다. 무엇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 다른 이의 조언에는 '그래서 어떡하라고'라는 말이 대답처럼 나온다.
그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몰라도 중학생이던 아들에게 수학을 가르친 적 있었고, 일 년 넘게 지속되던 수업은 누가 그만두자고 했는지 모르게 멈췄다. 그런 아들에게 꼭 그게 이유는 아니었겠지만, 시험 때만 되면 손발에 땀과 과민성 장증상을 일으켰고, 더 성장해서는 안면홍조와 흉중 번열증과 머리 쪽의 다한증을 호소했다. 너무 잘하려고, 또는 잘못될까 봐 초조해하지 말라는 말이 그의 귀에 들리긴 했을까?
그에게 사춘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물은 적이 있다. 질문의 의도를 몰라 눈을 두리번거리더니 '그럼, 나도 중학교, 고등학교를 보냈거든'이라고 하길래, 아니 반항기가 있었냐고 다시 물었더니 '갈등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답변을 한다. 대화는 거기서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자존심을 자꾸 내세운다.
치매 진단을 받은 모친을 이 년 넘게 집에서 돌보다 결국 요양병원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그 결정을 하기까지 그의 고민이 깊었을 것 같다. 한 번씩 맑은 날에 대한 기대가 이 년을 버티게 했다. 나중엔 거동이 불편한 시모를 뒤에서 안아 일으키려던 부인이 같이 넘어지면서 압박골절이 있은 후로는 그도 더 이상 집에서의 안정을 고집할 수 없었던가 보다.
여섯 가닥의 줄이 팽팽하다. 대치 상황이 길면 조금씩 조금씩 익숙하게 무너진다. 사방의 보이지 않는 활시위가 긴장의 연속인데 일상 같다. 잡고 있던 힘을 놓치고 방심하는 순간 툭하고 다 함께 쏜 살같이 무너진다. 효의 문제일까?